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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나 Aug 04. 2021

병아리 음악학도의 자기고백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을 읽고

   몇 주 동안 쓸 글이 없었다. 뭔갈 쓰고는 싶었는데 쓰다 보면 '논문을 읽고 쓴 글이 맞나?' 싶을 정도로 수준이 낮아서 몇 문단만 찔끔찔끔 쓰다 포기하고 했던 것이다. 쓰다 막히고, 쓰다 막히고... 무엇에 대해 써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한 채 거의 3주 동안 글 쓰기를 미뤄 두고 있었다.

   그러다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3권(이하 '난처한 클래식')'을 읽게 된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내가 써야 할 글이 무엇인지, 또 내가 어떤 태도로 텍스트를 대해 왔는지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초심을 잃은 적도 없고 매우 겸손하게 전공을 대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어쩌면 오산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고, 그에 대한 이유들을 하나하나 톺아보며 자기반성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엘리티즘에 대해


   지인들이 이를 본다면 꽤나 충격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상당히 엘리트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있던(어쩌면 현재 시제로 써야 할지도 모른다) 사람이다. 언젠가 책에서, '야구를 이해할 수 있도록 룰을 공부하듯 클래식 음악을 더 즐기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이 말에 굉장히 공감하고, 나 역시도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위해 공부를 이어가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위해서는'을 '클래식 음악을 독점하기 위해서는'으로 바꾸어 생각했던 것 같다. '즐기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엘리티즘에 빠졌던 것이다. 비교적 음악에 대한 지식을 접하기가 쉬울 수밖에 없는 음악학도는 음악을 즐기기 위한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음 하나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분석과 공부를 이어가는 입장으로서 노력조차 하지 않고 가져가려는 것만 같았다. 어쩌면 이 모든 태도는 '내 영역'이라는 언어와 '내 영역을 공부할 수 있는 위치'에 심취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클래식 음악을 독점하려 들었다. 최소한이라는 선을 그은 채, '이 이상 공부하지 않으면 향유할 수 없는 음악'이라 말하며 철저히 내 것으로만 만들었다. 그러나 '난처한 클래식'을 읽고 난 뒤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가?


텍스트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당장 내가 읽던 책을 돌아봤다. 99%가 음악, 예술 관련한 책이었고, 클래식 음악 교양서는 거의 읽지 않았다. 전공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갈구했던 염원도 있었지만, 타자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내 욕심만 채우기 급급했던 것이다. '난처한 클래식'은 '클래식을 즐기고 싶지만 몰라서 난처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어쨌든 타인에게 읽힐 글을 쓴다면 타인에게는 어떻게 읽혀야 하는지도 공부해야 했는데, 그것은 공부하지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전공 교수님께서 늘상 하시던 말씀인 '뭐든 닥치는 대로 읽어야 해'라는 말씀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난처한 클래식'은 주제에 맞추어 바흐의 전기, 주변 역사 및 음악사, 바흐가 살던 시대인 바로크 시대의 음악 양식, 심지어 화성학까지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바흐'라는 주제에서 음악의 다양한 분야로 뻗어나갈 수 있던 것은 저자의 세심한 고려와 배려, 그가 읽었을 다양한 텍스트 덕분이다. 사람은 언어에 굉장한 영향을 받는데, 논문선집과 전공서적에 익숙한 사람들은 당연히 어려운 전공용어에 익숙해지고, 그를 모르는 비전공자를 고려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교양서'다. 내가 아는 내용이 들어 있을지라도 그것을 풀어 낸 저자의 능력까지 볼 수 있고, 내가 미처 몰랐던 내용까지 쉽게 알고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다. 공부를 1년밖에 안 한 병아리가 다 아는 양 엘리트주의에 빠져 교양서를 무시하다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한 시대에만 갇혀 있지 않도록


   더불어,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를 이끌어내는 저자의 능력도 놀라웠다. 본문은 바흐에 대해 설명하다 보면 빠질 수 없는 것이 교회음악인데, 교회음악과 모든 음악의 시초인 중세 시대 음악을 자연스럽게 등장시키며 바흐라는 인물은 이 음악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도 설명한다. 그러나 이 모든 내용은 결코 어렵지 않다. 문답 형식으로 작성된 이 책은, 어려운 요소가 나오면 질문을 던져 해설하고 또 해설한다. 인물이 활동했던 장소, 인물의 일화까지 더해져 말 그대로 '생동감 있는' 수업을 진행한다.

   이렇게 상세한 내용을 다루는 클래식 교양서는 정말 찾기 드물 것이다. 두꺼운 책의 두께에 걸맞게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화성학까지 설명하는 것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화음의 자리바꿈, 간단한 화성진행, 증6화음이나 네아폴리탄 6화음의 효과까지. 바흐와 그가 살았던 바로크 시대에만 갇힌 것이 아니라 음악의 전반적인 부분을 설명하며 음악 속의 바흐와 바로크 시대를 설명한 책이 바로 '난처한 클래식'이다. 

   개인적으로 19세기, 그중에서도 낭만주의자 슈만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 시대를 공부하다 보면 본인이 공부하는 시기에만 갇히기 쉬운 실수를 한다. 그러나 슈만은 바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음악가다. 즉, 슈만이 살았던 19세기와 바흐가 살았던 18세기 초반을 함께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슈만이 작곡한 음악 양식을 집중해 보면 중세, 르네상스까지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다행히도 나는 이 두 시기를 연관지어 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기 때문에 항상 한 시대에만 갇히려는 사고를 경계하는 편이다. 그러나 모든 음악은 여러 논의를 거쳐 그라데이션처럼 이어져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되었다.


   음악학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이 책을 답으로 제시할 것이다. 음악을 연구해 대중이 음악에 가까워지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연구하는 영역은 연주로, 학문으로, 작곡으로 이어진다. 음악을 더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더 감성적으로 탐구하는 모든 작업이 음악계로 이어져 사람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해 줄 것이다. 무엇을 탐구하든 그 모든 연구는 결국 사람에게 이어지고, 사람에게 이어지는 연구를 해야 할 것을 잊지 말자는 다짐까지 하게 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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