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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과 소장의 충돌]

물질이 없는 예술을 왜 사람들은 여전히 소유하려 하는가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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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미술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소장이라는 개념과 충돌하는 영역에 있었다. 물성을 거부하고, 판매 가능한 오브제를 만들어내지 않으며, 아이디어 그 자체가 작품이라는 태도는 유물론적 소장론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형태가 없고, 보존되지 않으며, 물건으로서의 필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만 놓고 보면 개념미술은 소유할 이유가 없는 예술처럼 보인다. 실제로 초기 개념미술가들은 예술이 시장의 논리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고, 기록물이나 지시문조차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태도를 유지했다. 개념미술과 시장이 충돌했던 지점이 바로 이 소장론이었다.


그러나 현대 미술 시장에서 개념미술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소유된다. 개념미술의 소유는 물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만든 개념을 실행할 권리를 소유하는 구조다. 솔 르윗의 벽 드로잉처럼 실제 이미지가 사라져도 상관없고, 오노 요코의 지시문처럼 종이 한 장에 적힌 조건이 작품이 되기도 한다. 이때 소유자는 어떤 실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재현할 수 있는 권리, 즉 작가가 부여한 정당한 실행 가능성을 소유하는 것이다. 물질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며, 이 비물질적 구조가 개념미술의 시장을 성립시킨다.


그렇다면 형태가 없고 곧 사라지는 개념에 왜 사람들은 소유 욕구를 느끼는가. 개념미술은 전통적인 미적 욕망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욕망을 자극한다. 첫 번째는 지적 소유의 욕망이다. 개념미술은 이해의 깊이를 요구하며, 그 이해는 일종의 지적 정체성으로 작동한다. 작품을 소유한다는 것은 개념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과 그 개념의 권리를 가졌다는 의미가 되고, 이는 미적 충동이 아닌 정신적 우월감에 가까운 욕망을 만든다. 두 번째는 서사를 소유하는 욕망이다. 관람자의 참여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개념미술은 감상 경험 자체가 하나의 서사가 되고, 사람들은 그 서사를 기억으로 남기기 위해 작품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개념미술은 또한 완전한 형태가 아닌 가능성을 소유하는 예술이다. 개념은 언제든 새로운 상황에서 다시 실행될 수 있고, 매번 다른 형태를 만들어낸다. 이 불완전성은 오히려 회화나 조각보다 더 강한 희소성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개념은 예술사적 가치를 가진다. 물질이 아닌 아이디어가 역사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소장은 단순한 작품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대의 사유와 태도를 소유하는 행위가 된다.


유물론적 관점에서는 개념미술은 소장할 필요가 없는 예술이라는 결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대 미술 시장은 물성 중심의 시장이 아니라 상징 자본과 의미의 시장으로 움직인다. 아름다움이나 영속성이 아닌 의미와 해석, 작가의 세계관이 가치의 기준이 된다. 개념미술이 소유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사람들은 사라지는 개념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 개념에 부여된 권리와 서사, 그리고 세계관을 소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개념미술과 소장의 충돌은 물질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소장론과 의미 중심의 현대적 가치 구조가 부딪힌 결과다. 개념은 남지 않지만, 권리와 해석은 남는다. 남지 않는 것을 소유하는 이 역설은 현대 미술 시장이 물성이 아닌 의미를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다시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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