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몇 작품만 시대의 얼굴이 되고, 나머지는 일기처럼 사라지는가
개념미술과 NFT는 서로 다른 시대에 등장했지만 매우 유사한 구조적 성질을 갖는다. 둘 다 물성이 없는 예술이며, 개념이나 기술이라는 비물질적 조건을 핵심으로 한다. 물리적 형태가 남지 않는다는 점뿐 아니라, 그 작품이 존재하기 위해 특정한 시대의 문맥이 필요하다는 점에서도 깊은 공통점을 가진다. 그래서 개념미술도 NFT도 모든 작품이 역사를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작품만 시대의 상징으로 남고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소멸하도록 설계된 구조 속에 놓여 있다.
역사는 언제나 어떤 개념을 남기고 어떤 개념을 버릴 것인가를 선택해왔다. 혁명적 사고를 열어젖힌 작품만이 생존한다. 뒤샹의 변기처럼 기존의 미술 체계를 전복했던 작품, 솔 르윗처럼 개념의 지시문을 예술로 승인하게 만든 사례, 혹은 새로운 언어적 가능성을 보여준 설치 미술이 그 기준에 해당한다. NFT 역시 같은 논리로 움직인다. 크립토펑크나 비플, 초기 제너러티브 아트는 기술-예술 결합의 새로운 문을 연 작품으로 기록되지만, 그 외의 수많은 프로젝트는 순간의 유행에 그친 채 사라졌다. 남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 기술이 열어준 세계에 대한 서사였다.
대부분의 NFT가 기록되지 않고 사라지는 이유는 개념미술이 겪어온 운명과 동일하다. 새로운 미학적 충격을 만들지 못한 시도는 시대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기술이라는 문맥이 사라지는 순간 작품의 존재 이유 또한 흐려진다. 단기적 수익 구조에 기대어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더 깊은 의미 없이 사라졌고, 이는 초창기 개념미술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던 현상이다. 개념은 시대를 이길 만큼 강하지 않을 때 쉽게 소멸한다.
NFT가 개념미술의 디지털적 계보로 이해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형태가 없는 개념일수록 시대 의존성이 강해지고, 시대가 지나면 감정과 의미가 함께 증발한다. 단단한 물성을 지닌 회화나 조각은 감각적 즐거움을 통해 생존하지만, 개념은 맥락이 사라지면 남을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래서 개념미술도 NFT도 극히 일부만이 미래 세대에게 전해지고, 나머지는 한 개인의 메모나 시대의 부유물처럼 흩어진다. 이 휘발성은 결함이 아니라 개념 기반 예술이 가진 본질 속에 포함된 조건이다.
결국 개념미술과 NFT 모두 패러다임을 열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같은 운명을 지닌다. 기술은 도구이고, 기록은 순간에 불과하며, 남는 것은 의미뿐이다. 시대를 대표할 만한 서사와 충격을 남긴 작품만이 역사에 남고, 나머지는 일기처럼 사라진다. 이것이 물질이 없는 예술이 지닌 필연이자, 개념이 예술이 되는 방식의 가장 근본적인 구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