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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폐업을 준비하는 올바른 자세]

여는 것보다 닫는 것이 더 중요한 신뢰의 마무리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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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의 여파로, 국내외를 막론하고 갤러리 폐업 소식이 잦아지고 있다. 특히 중소 갤러리들은 별다른 예고 없이 문을 닫는 사례가 늘어나며, 예술 생태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남기고 있다. 하지만 갤러리는 단순한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작가와 컬렉터, 그리고 직원들과 쌓아온 ‘신뢰’를 기반으로 한 관계의 집합체이기에, 마무리 또한 그 무게에 걸맞은 책임과 배려가 필요하다.


사실 갤러리는 다른 사업에 비해서 인테리어와 공간 외에는 고정 자산이 많지 않다. 인원 구성도 비교적 작고, 시설 대비 진입 장벽이 낮기 때문에 쉽게 생기고 쉽게 정리되는 구조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만큼 ‘정리’에 대한 책임 의식은 더 중요해진다. 단순한 철수나 폐업 통보로 끝내기보다는, 신중하고 배려 깊은 ‘전환’의 과정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몇몇 갤러리는 책임 있는 폐업의 사례를 보여주었다. 샌프란시스코의 Altman Siegel은 폐업을 발표하며 관계자들을 초청한 작별 파티를 열고, 작가와 직원, 단골 고객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단지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작가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자 하는 진심을 표현한 셈이다. Kasmin은 35년의 운영을 마무리하며 새로운 이름의 갤러리 ‘Olney Gleason Gallery’로 전환했고, Tilton Gallery는 전시 프로그램을 종료한 뒤에도 큐레이팅과 아트 어드바이징을 통해 작가 지원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폐업은 누구에게나 정서적으로 큰 충격일 수 있다. 실제 한 작가는 갤러리 대표에게 전화를 받고 “얼굴이 멍해졌다”고 표현했으며, 작가 입장에서는 제3의 갤러리로 옮기는 제안을 받아도 그것이 자신의 의지와 맞지 않는다는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그렇기에 폐업은 단순히 비즈니스의 종료가 아니라, 함께했던 관계에 대한 ‘정리’로 접근해야 한다.


책임 있는 폐업을 위해선 몇 가지 원칙이 제안된다. 우선, 폐업 사실은 내부 직원에게 먼저, 이후 작가와 외부로 순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불필요한 루머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가능한 한 직접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에게는 미수금 정산, 작품 반환, 해외 작가일 경우에는 운송 지원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직원에 대해서도 단순 해고가 아니라 이후 재취업이나 추천서 제공 등 실질적인 배려가 요구된다.


또한, 폐업이 반드시 사업 종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시 공간은 닫더라도 컨설팅, 기획, 아트 어드바이징 등으로 전환하는 ‘변형 모델’도 고려할 수 있다. 이는 브랜드 자산을 살리면서도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된다. 이때, 웹사이트나 SNS 채널은 정리보다는 보존과 전환의 메시지로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갤러리 폐업의 절차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법적·재정 정리를 포함해 세금·계약·임대·보험 등의 사항을 마무리하고, 보관 중인 작가 작품의 반환 및 정산, 운송을 처리해야 한다. 내부적으로는 직원 관련 사항 정리와 함께 각종 문서 및 아카이브를 정돈하고, 외부에는 작가와 VIP 고객, 대중의 순서로 소식을 전달한다. 마지막으로, 브랜드 자산은 유지하거나 향후 활용 가능성을 열어두는 방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좋다.


갤러리 폐업은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의미 있는 정리’이며, 관계의 단절이 아닌 다음을 준비하는 전환의 과정이다. 신중하고 책임 있게, 그리고 마지막까지 품격 있게. 그것이 갤러리다운 마지막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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