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할 수 없게 만들어 예술이 된다” 기능의 거부를 통한 도자의 전복
1948년, 전통 도자문화의 중심지인 교토 고조자카에서 출범한 소데이샤는 도예사를 뒤흔든 전위 집단이었다. ‘진흙 위를 기어가는 모임’이라는 뜻을 지닌 이 이름처럼, 그들은 기존의 관습과 미학을 기어오르며 극복하고자 했다. 당시 일본 도예계는 민예운동을 기반으로 한 생활 공예, 그리고 차도 문화와 연결된 비젠·시노 스타일의 전통 양식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었다. 소데이샤의 가장 중요한 명제는 "도자기는 그릇이 아니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일본뿐 아니라 국제적인 현대 도예의 흐름을 바꾼 핵심적인 발상입니다.소데이샤는 이러한 전통 중심 체계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도예를 ‘그릇’이 아닌 ‘조각 오브제’로 확장시켰다.
야기 카즈오, 스즈키 오사무, 야마다 히카루 등 창립 멤버들은 도자의 본질에서 기능성을 지워버렸다.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도자 오브제는 입구가 막히거나 형태 자체가 실용성을 거부하는 구조로 되어 있어, 더 이상 화병도 다완도 아니었다. ‘도자 = 용기’라는 등식을 깨뜨리고, ‘도자 = 흙으로 만든 추상 조각’이라는 새로운 정의를 세운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오브제 도예라는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켰으며, 이후 아키야마 요 등에게로 이어져 일본 현대 도예의 국제적 흐름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기반이 되었다.
소데이샤의 작품은 생물의 장기나 구조를 연상시키는 유기적인 형상을 지니며, 기울어진 원통, 비대칭적 링, 기하학적 박스 등 ‘조각처럼 보이는 도자’라는 평을 받는다. 주로 슬랩빌트(slab-built) 기법을 활용해 흙판을 잘라 붙이고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형태를 만들었으며, 표면은 회백색 슬립과 철분점, 드로잉 같은 문양을 통해 절제된 색조를 유지한다. 이러한 조형 언어는 파울 클레나 호안 미로 같은 유럽의 추상 회화, 혹은 브랑쿠시, 헨리 무어, 이사무 노구치의 조각적 양식과도 긴밀히 연결되며, 도예가 단순한 공예가 아닌 현대미술의 한 갈래로 진입하는 통로가 되었다.
소데이샤는 용도를 박탈함으로써 오히려 도예에 독립된 조형적 주체성을 부여했다. 전통 도자기의 윤리적 용도에서 벗어난 이들은, “더 이상 쓸 수 없기에 예술이 된다”는 역설을 실현하며, 흙이라는 재료를 통해 당대 추상 조각의 세계적 흐름과 맞닿았다. 약 50년간 지속된 이 집단은 지금까지도 가장 영향력 있는 도예 그룹으로 기억되며, 일본 도예를 다시 정의한 역사적 이정표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