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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브러시: 동시대를 반영하는 매체로서 의미]

by 김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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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킹 테이프와 단짝을 이루며 동시대 미술에서 두드러진 존재감을 보이는 에어브러시는 많은 작가들이 애용하는 매체다. 그만큼 장점도 분명하지만, 명확한 단점도 함께 지니고 있으며, 단순한 도구를 넘어 회화라는 장르 안에서 어떤 지위를 갖는지, 또 현대 사회의 시각적 감각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살펴볼까 한다.


에어브러시의 가장 큰 특징은 색을 '칠하는' 방식이 아니라 '덮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붓질이나 나이프로 표면에 물감의 물성을 쌓아가는 전통적 회화와 달리, 에어브러시는 안료를 공기를 통해 미세하게 분사하여 표면을 매끄럽게 코팅한다. 이로 인해 깊이 있는 질감이나 마티에르가 생기지 않으며, 회화 특유의 물성감보다는 얇고 균일한 표면, 즉 일종의 '랩핑(wrapping)'된 이미지가 생성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에어브러시는 때때로 회화인가 아니면 표면을 포장하는 시각적 랩핑인가라는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덮는 방식은 동시대 시각문화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디지털 이미지, 인쇄물, 스크린 기반의 시각 환경은 깊이보다는 즉각적인 시각 정보의 전달을 요구한다. 에어브러시는 이와 같은 감각에 특화된 도구로, 붓의 물성을 생략한 채 시각적 완결성을 빠르게 구현한다. 이로써 회화의 본질을 탐구하는 대신, 이미지를 빠르게 생산하고 소비하는 현대인의 시각적 리듬과 호흡을 반영한다. 에어브러시의 빠른 건조 속도와 높은 작업 효율성은 이러한 즉각성의 요구에 적합하며, 특히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자 하는 현대 미술의 조건과 맞물린다.


또한, 에어브러시의 표면적 특성은 내부와 외부, 혹은 내면과 외피라는 개념을 새롭게 제시한다. 전통적인 붓질이 물리적 흔적을 남기며 작가의 개입과 시간, 감정의 흐름을 드러냈다면, 에어브러시는 이 모든 흔적을 지우고 매끄럽게 감춘다. 이로 인해 중심과 주변, 본질과 표면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내면보다 외관이 우선되는 현대적 이미지의 특성과 자연스럽게 맞닿는다.


물론 결과물의 특성상 깊이감이 부족해 보일 수 있고, 시간이 축적된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화나 전통적 재료에 비해 감정적 밀도나 물리적 존재감은 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동시대 회화가 전통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성을 찾아가는 과정일 수 있다.


디지털 감각에 익숙하고 빠르게 반응하고 넘어가는 현대인의 감성 속에서 에어브러시는 새로운 회화적 언어로 확실히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회화의 대체재가 아니라, 표면 중심의 시대에 걸맞은 회화의 확장판으로서, 그것이 회화인가 랩핑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유예하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감각을 제안한다.


#에어브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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