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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빛노을 Aug 18. 2021

비가 오면 옛 기억이 떠올라

비는 내게 늘 "괜찮아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비가 내린다. 더위를 식혀 주는 단비가 내린다. 비를 보며 잊고 지낸 옛 기억이 문득 스치고 지나간다.



나보다 10살 많은 남자를 27세에 만나, 사업하면서 승승장구하며 잘 살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인해 망해버렸다. 남편은 외국에 가서 다시 재기하고 싶어 했다. 기죽이고 싶지 않았다. 지인의 돈을 힘들게 빌려  보냈다.


타국에서 고생할 남편을 생각하며 아들 셋과 씩씩하게 버티며 살았다. 몇 개월이 지난 후 남편이 불쑥 나타났다. 바이어를 만나기 위해 왔고 자금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당시 나는 아이들과 사는 집 집세도 제대로 못 내서 주인을 피해 다니고 있었다. 나여기저기 부탁하면서 남편의 사업금을 구하러 사방팔방으로 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그는 일이 있다고 2박 3일 다녀온다고 지인 차를 빌려 떠났다. 나는 왠지 모르게 불안생각이 자꾸 들었다. 돌아온 남편이 피곤하다고 잠든 사이 남편의 시티폰을 몰래 가지고 나왔다.



음성 메시지가 몇 통 와있었다. 비밀번호를 눌렀다. 몇 번 실패하 고나서야 드디어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자기야, 조금 전에 헤어졌는데 또 보고 싶어 차에 수첩을 놔두고 왔는데 누가 보기 전에 챙겨줘요" 


숙한 아가씨 목소리다.

귀를 의심했고 다시 들었다. 내가 아는 그 애가 맞다. 살이 떨리고 심장이 쿵쿵거다.


'총 맞으면 이렇게 아플까?'


애써 마음을 진정하고 자는 남편을 깨웠다.

피곤하다고 짜증을 낸다. 스피커폰으로 음성을 들려줬다. 시퍼렇게 질려 벌떡 일어난다.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 앞에 넋 놓고 나를 본다. 그전까지 살면서 한 번도 그에게 반말해본 적이 없다.



나도 모르게 "그 애한테 전화해!"라고 하니까, 일단 자기 말 들어 보라고 버벅거린다. 다시 한번 단호하게 "전화해!!"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한다. 반가운 전화라 그런지 "자기야~" 하는 소리를 낸다.


전화기를 빼앗아 "여보세요!" 하니까 내 목소리에 놀라 헉하는 숨소리가 들린다.  지금 같이 집 앞으로 갈 테니까 나와,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남편을 향해 "운전해!"라고 하고 차에 먼저 탔다. 가는 내내 내가 그 애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변명을 늘어놓는다.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가면서 계속 의문이 생겼다. 그 아가씨는 남편이 외국 가기 얼마 전 관광지에서 차를 태워 알게 된 사인데 어떻게 된 걸까. 생각에 잠긴 사이 차는 그 애 집 앞에 도착했다. 바닷가 부근이라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았다.



연신 미안하다며 운다. 난 흥분도 안한채 사연을 물었다. 그 애 말로는 우리를 알게 된 후 남편과 따로 계속 만났다고 한다. 영문과를 나와 영어를 잘하고 외국 가서 살아 보고 싶다고 했단다. 남편이 외국 가서 사업하겠다고 내게 말한 게 그 때문인 것 같이 들렸다. 



나만 모른 채 둘이 떠났고 외국에서 사업의 진이 없는 채로 크게 싸워 그 애가 한국으로 왔단다. 남편은 뒤따라 귀국해 그 애를 설득하려고 강원도 2박 3일 여행을 다녀왔단다. 듣고 있자니 어이가 없었다.



그 애에게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 그사랑한다고 하며 울기만 한다.

희한한 건 먹구름이 낀 듯 답답했 내 시야가 갑자기 밝아지듯 명쾌한 답이 나왔다.


"그러면 둘이 살아."


아이 셋은 내가 책임질 테니까 둘이서 외국을 가든 한국에 살든 알아서 해라고 했다.

그 애는 울부짖어며 결혼은 안 할 거라고 가버린다. 남편은 그 애가 어찌 될까 봐 바로 뒤따라 간다.



11월의 바다는 차갑고 을씨년스럽다.

영혼이 나간 사람처럼 앞만 보고 는데 그 애를 태운 남편의 차가 나를 스치고 지나간다.



자정이 다돼가는 바닷가 부근엔 택시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걸어 택시를 타고 집으로 왔다. 아이 셋은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지금까지 사업자금은 늘 내가 융통했고 무리하게 일을 벌이는 탓에 난 진짜 지쳐있었다. 차라리 애들 셋 하고만 살면 예측 가능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더더욱 미련이 없었든 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부터 넌 내가 버린다, 는 생각을 하고

38세에 이혼했고, 난 지금 아들 셋과 잘 살고 있다.



어찌 보면 이러한 아픔으로 인해 인생을 더 맛깔나게 살 수 있었다. 60이후의 내 삶은 아픔에 꺾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온 내 이야기를 브런치와 함께 녹여내고 싶다. 이런 생각들이 드는 이 순간도 비가 내린다. 울고 싶을 때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르게 하는 비라서 비 내리는 날이면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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