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무렵 짝사랑하는 S오빠가 다니는 산악회에 가입했다. 동네 친구 옥이와 숙이와 한 달에 한 번씩 산에 갔다. 배낭을 메고 산에 오르면서 S오빠를 볼 수 있어 산행은 늘 설렘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S오빠를 좋아하는걸 다 안다.
스무 살의 기억은 온통 S오빠가 전부였다. 오빠가 보고 싶어, 오빠가 퇴근하고 들리는 내 친구 옥이네 구멍가게에 저녁엔 꼭 놀러 갔다. 오빠도 동네 친구랑 평상에서 술을 마시고 때론 기타를 치며 노래도 불렀다.
180센티미터 키에 장동건 보다 더 잘생긴 외모에 기타 치고 노래도 잘 부르는 S오빠는 내 이상형이었다. 오빠를 바라보는 내 가슴은 늘 활활 타올랐다.
저녁이면 옥이네 구멍가게 가서, 오빠 얼굴 보고 나야 잠을 잘 수 있었다. 어쩌다 오빠가 안 오는 날 이면, 별생각을 다하며 잠을 설쳤다.
오빠는 내 마음을 아는지, 구멍가게 평상에서동성동본은 결혼할 수 없다고 우회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말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마음은 더 간절했다. 옥이한테도 나는 오빠한테 꼭 시집갈 거라고 얘기하면서 친구들은 이루어질 수 없는 내 사랑을 같이 아파하고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온 시월의 마지막 밤, 옥이는 날 보자고 했다. 구멍가게 평상에서 옥이는 내게 내년 2월에 결혼한다고 한다. 그냥 웃었다. 그동안 친구인 네게 남자 친구에 대해서 한마디도 한 적이 없는 옥이가 시집간다니까 장난치는 줄 알았다. 옥이는 한참을 망 썰이다가 S오빠랑 결혼한다고 한다.
난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누구?? S오빠!! 충격받으면 왜 기절하는 줄 그때 알았다. 그냥 힘이 쭉 빠지고 나도 모르게 평상에 잠시 쓰러졌다. 옥이는 놀라서 날 흔든다. 꿈인가? 알 수 없는 혼란이 찾아왔다.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동안 날 깜쪽같이 속인 거야?? 옥이는 많이 괴로워했다. 내 마음을 아는 옥이는 나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했다. 오빠가 나하고는 동성동본이라 안된다고 했기 때문에. 자신도 오빠를 좋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닌 오빠다. 나의 일방적 짝사랑이다. 내가 먼저 좋아했다고 옥이가 좋아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래도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그 길로 숙이 집에 가서 울면서 하소연했다. 의리파인 숙이는 옥이를 천하에 나쁜 년이라고, 나보다 더 충격에 빠졌다. 그 후로 옥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친구 애인 뺏은 몹쓸 년이 되어 왕따를 당했다. 그땐 내 아픔이 너무 커서 옥이의 아픔을 보지 못했다.
그해 시월의 마지막 밤에
좋아하는 오빠와 단짝 옥이를 동시에 잃었다.
사는 게 재미가 없었고 우울했다.
옥이 신혼집은, 하필 옥이 집에서 새살림을 차렸다. 옥이가 무남독녀고 엄마 혼자 살아서 오빠가 처가 살이 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난 더 힘들었다.
옥이 집을 지나야 우리 집이라서 늘 윗길로 둘러 다녔다. 지나가는 레코드 가게에서 들려오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내 얘기인 듯 날 더 우울하게 만들었고, 내 얘기가 친구들 간에 화젯거리라서 친구들도 자주 못 만났다.
지독한 짝사랑의 아픔을 겪고 서로가 서로의 소식을 풍문으로만 듣고 살았다.
아들 셋과 빚만 안고 이혼했어도, 첫사랑만큼 아프지는 않았다.
이십 대에 치른 사랑의 홍역으로 면역이 생겨,
살아야 하는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
오빠도 보고 싶고, 옥이도 보고 싶다. 내가 먼저 좋아했다고 말한 것 때문에, 오빠를 좋아해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힘들었을 옥이가 보고 싶다.
내 친구인데 사랑이 뭐라고 친구와 만나지도 못하고, 세월을 보내버렸는지
나이가 들면서, 옛 친구가 그리울 때가 있다.
찾아보려고 해도소식을 전혀 모른다. 친구들도 모른다고 한다.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산 옥이한테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 정도로 세월이 흘러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