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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고래 Apr 03. 2023

관계를 짓는다는 건

불투명한 핑크와 그린의 어우러짐 







가위를 들고 웃자란 올리브나무의 꼭대기 줄기에서 한참을 망설이다가 “내일 다시 보자” 혼잣말을 하며 가위를 내려놓았다. 겨우내 움츠려있던 가지 위로 쑥쑥 자라나는 새순을 잘라내는 마음이 영 편치가 않아서 보름째 같은 짓을 하고 있다. 잔가지를 잘라주면 줄기가 더 튼튼해지고 수형도 예쁘게 만들 수 있지만 작고 여린 잎들이 강한 생명력으로 자라고 있는 줄기 끝을 잘라내기가 계속 망설여졌다. 나 보기 좋으라고 작은 나무줄기 하나를 잘라내는 데도 이렇게 오랫동안 마음을 주며 망설이는데 하물며 사람과의 관계는 오죽할까?     


관계라는 것은 서로 연관 지어져 있다는 것인데 힘겹게 생각할 때가 있다. 혹은 그것 때문에 삶이 훈훈해질 때가 있다. 마치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공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쩌다 문뜩 느껴지는 타인에 대한 거리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터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내며 상대의 마음속으로 훅 들어갔을 때 친화력은 배가 된다. 그러나 아직 나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을 상태에서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할 수 있는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반대로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내놓지 못하고 생각을 곱씹고 앉아 망설일 때나 혹은 자신의 말에 맞장구쳐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는 사이에 관계의 밀도는 흐릿하게 방향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는 고무줄 같은 탄성이 있어서 서로 자기 쪽으로 너무 당기다 보면 끊어질 듯 불안하게 팽팽해지고 반대로 줄을 너무 풀다 보면 헐렁해져서 고무줄 본래의 기능을 상실해 버린다. 적당한 강도의 팽팽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만큼의 노력을 하며 살고 있는지 자문해 보았다.      


적당한 거리감이 건강한 관계라는 말이 있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집착이 되는 것처럼 보여서 상대가 불편할 수 있고 너무 멀어지면 내가 불안해질 때가 있다.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며 만나게 되는 사람들 앞에서 나는 관계의 속도와 밀도에 따라 적당히 드러내고 감추고의 강도를 조절하게 된다. 나는 이런 관계 속에서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 노력하는 것이 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상식 수준의 예의만큼은 지켜져야 한다는 것, 어려움에 찾아오면 따뜻하게 맞아주며 달래 보내고, 즐거움에 다가오면 고맙다 마음 내어 함께 나누며 살아야 사람 사는 곳이지 싶다. 너는 너대로 맞고 나는 나대로 맞다. 단지 이해의 폭이 서로 달라서 누가 옳고 그름에 대한 답을 찾지 않고 서로를 인정해 주면 좋겠다. 


이것이 관계의 기본으로 설정된다면 사회가 조금은 편안해지지 않을까? 미세먼지, 코로나 19 때문에 답답한 마스크를 쓰고 숨 쉬는 것처럼 찝찝한 느낌이 아니라 청량하게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실 때의 기분 좋은 상쾌함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 섞인 바람이다. 자르려고 들여다본 화분에 다시 물을 주며 마음 끝을 따라가 본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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