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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메리 Mar 03. 2022

오늘 언니의 백혈병 치료가 중단됐다

의사는 이미 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 한 방울이 미간 사이로 주르륵 흘렀다. 나는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7개월 전 아빠의 폐암 재발을 말했던 그 야속한 의사의 분위기와 지금이 뭔가 비슷하다. 손등으로 땀을 훔친 의사는 한차례 크게 숨을 내쉰 후에야 입을 뗐다. 어젯밤 혈액 검사에서 백혈병 암세포가 나와버렸어요. 재발이 된 거예요. 재발이라는 단어가 들리자 엄마와 나는 동시에 들숨을 멈췄다. 이건 두 번째 재발이다. 10일 전에 골수이식도 무사히 마쳤다. 그러나 이식한 말초 세포가 생착되기도 전에 다시 암세포가 재발됐다. 그리고 재발 직후 거의 동시에 발병된 것으로 보이는 간정맥 폐쇄성이라는 합병증 또한 발병됐다. 이 두 재앙은 백혈병 환자 가운데서도 1% 이내 확률로 발생한다고 의사가 다시금 땀을 훔치며 말했다.


어....어... 그럼...

말이 잘 안 나왔다. 월요일에 이 사람은 내게 일주일만 버티면 된다고 했었다. 화요일엔 간수치가 나아졌으니 앞으로도 계속 버틸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오늘이 수요일이다. 어젯밤 늦게 혈액검사 결과에 나온 암세포를 발견한 거였다. 암세포가 다시 나올 것이라고는 의사도 차마 예상하지 못했다고, 10일 전 고용량 항암제를 투여했기 때문에 최소 골수이식 생착 후 1주 후에 재발된 경우는 봤어도 이렇게 이른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갈 곳 잃은 내 눈동자를 똑바로 주시한 채 의사가 차분히 말했다. 즉, 언니가 이제 건강하게 완치되어 이 병원을 나갈 수 있는 경우는 불가능한 상황인 거예요.


언니는 이 상황을 알고 있나요?

아뇨. 말 못 했어요 아직. 그런데 몸 상태로는 느끼고 있을 거예요.


아마 언니는 차가운 기계와 주삿바늘만이 가득한 무균실이라는 최고 수준 격리실에 혼자 갇혀 본인의 몸상태를 오롯이 감당하고 있을 거였다.

 

언니는 현재는 혈소판 수치가 너무 낮아 무균실에 있지만, 외로이 혼자 한 달 넘게 있던 언니를 위해 의사는 코로나 상황에도 불구하고 1인실 일반병동을 주겠다고 했다. 언니와 남은 시간을 가족들이 함께 보낼 수 있도록 격리실에서 빼내 주는 것이다. 이는 또한 언니의 백혈병 치료를 중단하고, 앞으로의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유지 조치만을 하겠다는 결정이기도 했다. 무균실과 역격리실을 오갔던 언니에게 일반병동은 7개월 만이다. 그러나 곧이어 의사는 격리실에서 나오는 것조차 지금은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혈소판 수치가 올라가야 일반병동도 가능하다. 수치를 올리려면 혈소판 수혈을 상당히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의사와 면담이 끝난 후 나는 바로 주변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여 혈소판 지정헌혈을 부탁했다. 작년 첫 백혈병 진단을 받았던 시기에 미리 부탁을 해놓은 덕에 다들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는 답이 왔다. 이 잔인한 세상이 아닌, 이 사람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면담이 끝나고 엄마와 건너편 휴게실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이 나오는 티비를 끄고 둘이서 한참을 멍하니 울었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는 이유 없이 화를 냈고, 내가 차를 가지러 가는 사이에 혼자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집에서 혼자 공부하는 나를 배려해서 숙소를 따로 잡은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화가 난 듯싶다. 누군 안 슬퍼? 이럴수록 마음을 같이해서 기도해야는거 아니야?와 같은 이해할 수 없다는 문자를 엄마에게 보냈지만, 실은 자식을 잃을 수도 있다는 슬픔을 내가 감히 어떻게 가늠할 수 있겠는가.하는 마음에 숨이 턱 하고 막힐 뿐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사라지고 혼자 병원에 남았다. 피하려고 해도 피해지지 않는 죽음의 끈질긴 잔인함으로부터 슬픔이 아닌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그 공포를 이제 아빠와 둘째언니 그리고 큰언니의 아들인 나의 조카에게 퍼트려야 했다. 우선은 목포에 있는 둘째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조카와 함께 전주에 올라오라고 했다. 둘째 언니는 듣자마자 통곡을 했다. 같이 또 울었다. 그렇게 수십 분 통화가 끝나고 이젠 아빠 차례였다. 아빠는 폐암으로 언니와 같은 병원에 입원 중이다. 아빠도 작년 7월 폐암 재발 이후 암이 심장에까지 전이가 된 상태라 아주 위독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피를 토하는 아빠에게 언니의 이러한 상황을 알린다는 건 내가 짊어질 수 있는 최고 레벨 스트레스에 해당한다. 술이라도 마시고 싶었다. 그러나 꾹 참고 아빠가 있는 호흡기 병동으로 가서 담담하게 말했다. 아빠는 멍하게 듣고 있었고 나는 혼자 숙소로 가버린 엄마가 걱정된다며 후다닥 병실을 나왔다. 비겁하지만 어쩔 수 없다. 2년 전 아빠가 아프고 1년 전 큰언니가 아픈 이후 스스로가 어떤 인간인지 확실하게 깨우쳤기에 나 자신에게 더는 실망하지 않는다. 물론 기대도 안 한다.


엄마가 있는 숙소로 가서 엄마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엄마는 나오자마자  화를 냈고 결국  혼자 다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서 멍하니 가만히 계속 있었다. 그리곤 저녁이 되었고  9 즈음 아빠가 있는 병동에 다시 갔다. 아무래도 아빠의 울음마저 듣는  속이 편할  같아 갔다. 역시나 아빠는  보자 울었고 나도 같이 울었다.  시간 정도 아빠와 있고 집에 돌아왔다. 아빠가 그래도 공부를 하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시험을  상황에서 준비하는  맞을지, 남은 기간 동안 공부가 손에 잡힐지 이러저러한 고민이 들었다. 그러나, 죽음 앞에 희망을 품을 유일한 원동력은 책임감뿐이지 않을까.  울고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직면하기엔 현실은 죽음 못지않게 잔인하니까. 조카만큼은 잔인한 상황에서 건져내고 싶다. 감히 내가 뭐라고  아이를 책임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책임지려면 힘이 있어야 하고 힘이 있으려면 인정받아야 하고 인정받으려면 책상 앞에 앉아 한국사를 외워야 한다.   문장으로 구구절절한 고민을 정리했다. 그리고 공부했고 새벽 2... 브런치 켜서 오늘을 정리했고 이제 3 10... 잠을 자려고 한다...정리하지 못할 한가지 사실을 계속 곱씹은 ...



오늘 언니의 백혈병 치료가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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