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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메리 Apr 02. 2024

3년 8개월 연애의 끝

3년 8개월간 한 남자를 만난 적이 있다. 1년 8개월이 사랑의 유효기간이라고 했던가. 우린 고작 1년이었다. 1년간 다정하게 사랑했고 그다음 1년은 밑바닥까지 싸웠으며 남은 1년 8개월은 헤어질 준비를 했다. 이렇게 적고 보니 그렇게 특별한 연애는 아닌 듯하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마지막 1년 8개월은 내 쪽이 아닌, 상대 쪽 정리 기간이었다. 나는 어떻게 해봐도 정리를 할 수 없었다. 그는 합의되지 않은 끝맺음으로 우리의 관계를 종료했다.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내가 한 선택은 일상을 바삐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을 때도 있고 이후에 다른 남자를 만나보기도 했다. 처음엔 다 좋았는데 왜인지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관계가 실패했다. 이미 나는. 그를 만나기 전과 후로 다른 사람이 돼버린 것 같았다. 마치 유전자 코드에 부모님이 드시는 사소한 음식 취향이 새겨져 있듯이. 그는 내 삶에 특정한 패턴으로 무의식을 발동하여 그 이후 연애를 모두 비슷하게 만들었다.

 

이런 경우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몇 가지 없다. 첫째, 다시 그를 찾아가서 만나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다. 당신이 내 처음이자 마지막의 단일한 사랑이었다며 찾아가 빌어보는 거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가 어디 있는지도 그가 뭘 하는지도 그의 연락처도 모른다. 하도 오래되서 기억도 안난다. 이래서 헤어질 땐 완벽하게 정리하는 게 좋은거다. 두 번째 선택은 사랑에 아예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제 누구를 만나도 전과 같이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거다.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더라도 미지근해지기만 해도 만족하며 적당히 맞춰가며 대화할 상대를 찾는 거다. 그러나 이 또한 상대방에게 못할 짓이므로 패스. 결국 남은 선택지는 혼자 살아가는 거다. 나이가 40이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 이런 분들이 나와 같은 경험을 한 게 아닐까 감히 헤아려본다. 사랑에 다치고 깨진 사람은 다신 그러한 사랑에 전부를 걸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당연하니까.


앞으로 혼자 살든 어떻든. 난 그가 행복했으면 한다. 이기적이었던 내 곁에 3년 8개월간 있어준 것 자체로 평생 고마워하며 살아갈 수 있다.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채 미지근하고 시답지 않은 관계를 연애와 결혼으로 포장하며 20년-30년을 살아갈 바에. 당신을 만났던 내 선택이 옳다고 믿으련다. 3년 8개월의 성벽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둘만의 세계를 만들었던 그 기억이 심장에 새겨졌으니 만족한다. 어쩌면 또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상대를 찾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또한 당신 덕분이라 말하겠다. 당신은 참 좋은 사람, 괜찮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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