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브런치 작가
오늘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이제 작가로서 정식으로 브런치에 글을 작성하고 발행할 수 있게 되었다. 언론사 신춘문예 당선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작가'로서 세상에 나의 글을 드러내어 독자들에게 선보일 수 있어서 매우 영광이다. 이십 대가 지나면서 점차 설레임과 놀라움 같은 신선한 감성이 무뎌졌었는데, 오늘 오랜만에 설레는 감정마저 들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글쓰기로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글짓기 대회에 나가 그래도 적잖이 입상을 하면서 나름 글쓰기에 대한 흥미와 재미가 생겼다. 잘난 것도 없고 특별날 것도 없던 무미건조한 학창시절에 그나마 글쓰기라는 재능이 아주 없지는 않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다. 글로써 뭔가 나 자신은 물론이고 세상에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도 있었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글짓기에 대한 인정을 받은 성장과정에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나의 흔적', '삶의 흔적'을 세상에 흩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미약한 개인이 타인과 사회에 강력하면서도 효과적으로 의사표현할 수 있는 수단은 글이다. 글을 잘 쓰면 그만큼의 영향력을 통해 효과를 바랄 수 있다. 대학 입시도 그렇고 원하는 직장에 지원할 때도 개인은 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 같은 역량을 가졌더라도 어떻게 글로 표현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기회의 당락이 결정된다.
월등하진 않더라도 그래도 못나지 않은 글쓰기 능력으로 단순한 글짓기 대회 입상이 아닌 실리를 얻는 첫 경험은 고등학생 시절이다. 당시 우리 집안은 학교에 낼 등록금과 기성회비도 부담스러운 형편이었다. 학생 신분이기에 집안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해서 갑갑했다. 하지만 때마침 당사자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신문에서 바로 그 길을 발견했다.
어릴 적부터 우리집은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살림에도 불구하고 일간지를 구독해왔다. 매일 읽지는 못했어도, 김장이라든지 잡다하게 쓰임새가 있는데다가 월 구독료도 소액이라서 크게 개의치 않았던 듯 싶다. 그렇게 무심히 신문을 받아보던 어느 날이었다. 신문 한 꼭지에 삼성그룹에서 형편이 어려운 고등학생을 선발한다는 장학생 공고문을 봤다. 순간 '일생일대의 기회'라는 생각과 찌릿한 느낌이 들었고 곧바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며칠에 걸쳐 쓰고 고치기를 반복해서 탈고까지 마치고 지원서를 써서 제출했다.
지원서를 쓰던 당시 학교에 도움을 구하기도 해봤지만 공부를 잘하던 학생이 아니었던터라, 무시 당하고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한번 보여주겠다는 오기로 심혈을 기울여서 내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야 하는 이유와 학업계획을 썼다. 그렇게 지원하고 한참을 기다려서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나는 내 방에서 방방 뛰었다.
시간이 흐른 뒤 담임선생님이 나를 교무실로 호출했다. 학교에 삼성그룹 공문이 온 모양이었다. 갑자기 이게 뭐냐며 나에게 물어봤다. 나는 속으로 '보면 모르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렇게 대답했다.
"기억 못하시겠지만 제가 예전에 선생님께 말씀드렸던 장학생 공고인데, 제가 선발됐다고 학교에 알려주는거 같은데요."
그렇게 글로써 내 존재가치를 입증했다는 생각에 뿌듯함과 나도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이후 글을 통해 입은 수혜는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대학생 때는 학교에서 시행하면 좋을 여러 사업을 제안서로 일목요연하게 써내서 총장상과 장학금을 타기도 했고, 여러 대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를 얻어 화제의 인물로 동아일보에 소개된 적도 있다.
당연히 직장 입사도 글쓰기 덕을 봤다고 생각한다. 글로 자신을 회사에 어필하지 못하면 대면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글쓰기는 내 생에 뗄래야 뗄 수 없는 작업이 되었다. 직장인이 된 지금 일간지, 지역신문 그리고 이곳에 글을 쓰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전업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글쓰기에 대한 부담없이 화가가 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내 감상(感想)을 이곳에 펼쳐나갈 계획이다. 앞으로 내 글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의미가 되었으면 하고, 글로 함께 소통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