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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사장 Jun 06. 2024

그 말까지는 그냥 안하는 게 좋겠어요

보통의 언어와 배설 그 사이

"내가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라고 운을 뗀 뒤 하려는 말은 끝까지 하지 말자.

어차피 안 좋아진 사이 더 나빠질 거 없다는 생각으로 내뱉는 가시같은 말이 상대방에게 평생 상처가 될 수 있음을 인지적으로 이해한다면 그 '최후의 말'은 접어두자. 내 마음 속 창고에만 저장해놓자.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단지 하고 싶어서 '배설'하듯 하는 말은 후회와 관계의 손상을 수반한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한다고 해서 그게 다 말인 것은 아니고, 말 본연의 역할을 다 하는 것도 아니니까.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라고 운을 떼고 하는 말도 비슷한 결이다.

살쪄 보인다는 둥, 얼굴이 커보인다는 둥 외모 지적은 아무리 친해도 금물이다. 지적하는 본인을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지적하는 상대방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외모를 지녔다 하더라도 남의 외모를 지적할 자격은 없다.


맹자(孟子) 이루(離婁) 편에는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그를 업신여기고, 집안은 반드시 스스로 망친 후에 남이 망치고, 나라도 반드시 스스로 공격한 뒤에 남이 공격한다(夫人必自侮,然後人侮之,家必自毁,而後人毁之,國必自伐,而後人伐之)"고 했다. 남의 감정과 처지보다 본인의 욕구에 충실한 말습관을 가진 사람은 자기를 망치는 교만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렇게 아무 말 대잔치의 향연을 펼친 주인공은 주위에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야 자신의 말습관이 스스로를 갉아먹는 오만방자함이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 교수인 애나 렘키(Anna Lembke)는 그의 저서 『도파민네이션(Dopamine Nation)』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일은 그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의대생들과 레지던트들에게 환자의 이야기에 집중하라고 가르친다. 이야기는 환자의 인간성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인간성까지 되찾아 준다."


이를 역으로 대입하면 타인에 이야기에 관심이 없고 이해 할 노력도 기울이지 않음으로써 귀결된 자신의 인간성 상실 또는 부족이 오만하고 배려심 없는 말투로 투영된 것은 아닐까.


나부터 어떤 말을 하기 전에 상대가 들었을 때 분명히 '굳이 이 말을 왜 하는거지'라거나, '기분 나빠지라고 하는 이야기인가'라고 느낄 만한 포인트가 있다면 말을 삼가야겠다. 백 마디 말보다 그저 지그시 바라보는 침묵이 나을 때도 있고, 괜한 말 한마디가 예상치 못한 큰 불상사를 불러오는 원흉이 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옷을 입을 때 TPO(time · place · occasion)가 있듯이, 사람이 말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하고 싶은 말도 알맞은 때와 장소에서 상황에 맞아야 말다운 말이 된다. 말로 천 냥 빚은 갚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남에게 피해와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하기에 오늘도 난 "내가 이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하며 내뱉고 싶은 말을 삼켜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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