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죽, 군밤, 말린 바나나
우리 동네 오래된 죽집에서
나는 호박죽, 엄마는 팥죽을 사먹는다.
늙은 호박으로 끓여 팥을 넣은 호박죽을 먹기 시작한건 19년이 되었다.
정확히 말해
출산 전에는 호박죽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딸아이를 낳고 산후조리 하러 엄마집에 와있는데
하루 근무, 하루 휴무인 아버지가
퇴근길에
간식으로 먹으라며 저 호박죽을 사오셨다.
임신중독 바로 전 단계였으니
발은 너무 부어서 250짜리 슬리퍼를 구겨 신었고
체중은 20키로가 넘게 불어있었다.
3.6키로짜리 아이는 나왔으나
여전히 몸은 불은채였고
출산 휴유증으로 얼굴과
상반신의 실핏줄들이 많이 터져서 울긋불긋 했었다.
부기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생강만 넣어 달여오신 호박즙을 하루 서너개씩 먹었고
입에도 대지 않던 호박죽도 먹기 시작했다.
백일쯤엔 몸이 거의 예전으로 돌아왔는데
그래도 호박죽은 여전히 먹고 있었다.
그렇게 19년째 한달에 두어번씩 호박죽을 먹는다.
저녁밥이 하기 싫은 날,
엄마 아버지는 순대국을 드시고 오시는데
(나는 순대국을 먹지 않아서 함께 가지는 않는다)
오는 길에 군밤을 사다주신다.
오천원짜리 두봉지를 사서
2층 딸내미 하나, 1층 당신들꺼 하나
군밤 트럭 앞을 나도 자주 지나다니지만
사지 않는다.
왠지
이 군밤은 아버지가 사다주셔야 그 맛이 나는 것 같아서
내가 사먹어지지는 않는다.
아마,
아버지가 안계시면,
안 사다주시면
남은 내 평생 군밤이 먹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지금은 바나나가 너무 흔해졌지만,
40년 전에는
하나에 천원쯤, 그보다 더 했을 때가 있었다.
- 버스비가 60원쯤 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여름이 생일인 내게
엄마는 선물처럼 바나나를 한두개 사주셨었는데
그 귀한 과일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외항선을 타셨던 아버지가
열대의 나라에 입항하면
익지 않은 초록 바나나를 사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동안
적당히 익힌 다음에 서늘한 곳에서 말려서
집에 와서 주셨었다.
거뭇거뭇한 색에
우리가 아는 그 바나나의 모양은 아니였지만
쫀득거리는 식감이 마치 젤리처럼
바나나 향이 가득한 귀한 간식이였다.
음식맛의 절반은 추억이라는
백반기행 허영만 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아, 정말 그렇네..
우리가 기억하는 음식들은
누구와 먹었고 언제 먹었고 왜 먹었는지가 얹어져서
맛이 있고 없어지는 거였다.
매일 밥상을 마주하는 늙으신 나의 부모님과의 시간이
아주 많이 남은 것 같지는 않다.
이 맛있고 귀한 음식들을 함께 나누었던
그 시간만큼
아프고 힘들 시간이 너무 두렵지만
함께 웃고
식구(食口)로 보내는 지금의 시간을
충분히 누리고 행복했으면 한다.
퇴근길,
엄마로부터 톡메세지가 왔다.
오늘 저녁은
정구지찌짐이라신다^^
202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