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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키퍼 Nov 16. 2023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편지글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런 소통 매체를 이용한 때가 언제였나?

동네 도서관에 문학 관련 책 열람실에는 언제나 특정 주제의 책들이 큐레이션 되어있다. 관심 분야 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도서관의 책 선정이 꽤 수준이 높고 엄선된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이번 주제는 "편지"이다. 유명한 안네의 일기를 비롯하여 열 권쯤의 책이 전시 되었 있었는데 다 이미 대출이 되고 남은 책 한 권이 이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이었다. 처음 보는 제목, 작가도 생소하다. 어떤 이야기 일지 상상도 안되는 제목이다. 내가 끌린 것은 오직 하나 '북클럽'이라는 말이다. 쓱 한번 훑어보고 냉큼 대출을 했다.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신선했다.

간단하게 말하면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에 점령된 영국령 건지 섬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고군분투기다. 슬픔의 기록이며 위로의 메시지다. 우연한 기회로 건지 섬의 주민 몇 명이 런던에 있는 작가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그들이 겪은 아픔과 사랑을 공유한다. 섬이라는 다소 고립된 공간에서 대도시로 통하는 편지, 대도시에서 느끼는 인간 소외를 섬에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몇 년 전에, 내가 가진 오래전 편지들,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정리했다. 소중했지만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판단했다. 내 미니멀라이프에 따르면 그런 건 정리하는 편이 옳았기 때문이다. 편지글이 갖는 시의성과 감정의 왜곡, 그 적나라함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많이 다르다 판단했기에.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난 과거로의 여행을 했다. 언젠가 내가 보낸 편지들도 지금은 어딘가에 있거나 없겠지만, 편지를 쓰며 집중한 그 한 사람 한 사람은 내 마음의 추억이다. 이 책을 읽으며 굳이 꺼내보지 않았던 그들을 잠시 소환해 보았다.

이제 용건은 텍스트 메시지나 sns로 보내질 뿐이다. 편리하게 머물렀다가 삭제된다. 용건은 잘 전달되지만 마음은 종종 오해받는다. 꼭 집어 이야기해야 하고 행간은 없는 외마디 메시지. 그 옛날 종이에 눌러쓴 편지의 질척거림은 없고 정보가 남았다. 씁쓸하게도, 누군가에게 편지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이제 나에게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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