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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키퍼 Jan 24. 2024

디어 존, 디어 폴

Here and Now (Letters 2008~2011)

폴 오스터의 책은 거의 빠짐없이 읽었다. 대표작 <달의 궁전>을 필두로 몇 년 동안 쭉 읽고 몇몇 내 마음에 딱 드는 작품들은 재독, 삼독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도 많이 했다. 내 기준으로 폴 오스터는 글로써 자신과 독자의 마음을 끝까지 꼭 조였다가 서서히 허무하게 풀어주는데 그 끝에는 언제나 아련함을 둔다.

최근에는 J.M. 쿳시를 열심히 읽었다. 동네 도서관에서 쿳시의 자전적 소설 3부작을 접한 후 몇 권을 더 보던 중, 그 역작이라 불리는 <추락>을 만났다. 이건 정말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 감동이라고 설레발을 치고 싶다. 사실은 쿳시가 2003년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을 당시 호기심에 이 책을 구매해서 읽은 바 있다. 한동안 책장에 소장했던 책이기도 하다. 아무런 감동도, 왜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는지 이해가 안 가는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확실히 어렸다: 물리적 나이가 아니라 정신적 ...) 그런데 이번에 한 번 다시 읽어보자 생각하고 어렵게 손에 넣은 (절판이다) 이 소설은 가히 내 인생 책에 넣을 만하게 대단했다. 그때의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 중의 큰 부분은 작가의 배경도 있었던 것 같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회와 정치 상황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그 소설의 복잡 미묘한 사건들, 캐릭터가 대표하는 이미지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여전히 나는 그 책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을 테지만 (아마 그럴 거다) 그래도 마음에 품고 다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발견하게 되었다는 건 충분히 의미가 있다.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두 작가가 편지를 주고받은 서간문이 있다니, 이건 못 참지!

냉큼 상호대차 신청 후 도서관에서 온 문자 메시지를 받고는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다.

두 작가는 1940년대 생으로 비슷한 연배다. 그렇기에 시대의 사건이나 트렌드, 어떤 특정한 이슈에 관한 생각을 나누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무엇보다도 둘 다 시대가 인정하는 대단한 작가라는 것이 이 책에 더 믿음을 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소설에서 보는 그들은 어떤 필터링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에세이 류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작가 자신의 모습을 비교적 솔직하게 보여준다고 믿기에 더 기대감이 컸다.

두 사람의 편지에는 정치, 문화, 경제, 스포츠 등 신문에 나옴직한 대담이 펼쳐진다. 폴 오스터의 관심사와 쿳시의 관심사가 꼭 떨어지지는 않지만 같은 사안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하고 가볍게 농담하거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건강을 염려하는 모습이 매우 정겹다. 그저 유명한 문인이 출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실제로도 자주 왕래하는, 말하자면 우정을 나누는 관계라는 것이 글을 읽는 내내 따뜻함을 자아낸다. 서신 왕래를 통해서 두 노 작가가 자신, 그 자체를 보여준다. 방대한 지성과 냉철함, 인간에 대한 고찰을 평생 해온 작가들의 고뇌를 엿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책 여기저기 덕지덕지 인덱스를 붙이면서, 웃으면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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