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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석 May 21. 2022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데미안》의 한 글귀에서 얻은 삶의 지혜


우리가 어떤 사람을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의 모습 속에, 바로 우리들 자신 속에 들어앉아 있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미워하는 것이지. 우리들 자신 속에 있지 않은 것, 그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아



《데미안》에서 이 글귀를 읽었던 게 벌써 1년 하고도 1달이 지났다. 핸드폰이 없어 독서에 어느 때보다 열중하던 훈련소 시절, 어느 여유로운 주말에 읽던 책에서 이 문장을 마주한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다른 문장들은 그저 눈에서만 맴돌았지만, 이 문장만은 뇌까지 도달해 무형의 공명을 만들어냈다. 그 문장에서 멈춰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그 페이지에 10분 동안 머물며 그 글귀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보며 깊게 새겼다. 오죽하면 자주 쓰던 수첩의 가장 앞 장에 적어놓고, 생각날 때마다 이 문장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리고 이 문장을 알게 되고 나서 1년이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 문장을 되새기곤 한다. 스스로 많은 상황들을 의연하게 넘길 수 있게 해 주었고, 마음을 다스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그래서 이 문장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필자가 해석한 대로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이 문장은 우리가 살면서 이유 없이 어떤 사람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 감정에 아무런 이유가 없지는 않다고 한다. 그 이유에는 필연적으로 '나'라는 존재가 앉아있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행동을 내가 똑같이 한다면 스스로를 많이 미워할 것 같다던지, 그 사람의 행동이 내가 부러워하는 혹은 항상 마음속에 품고는 있지만 실천하지 못한 행동이라던지 등등. 결국 내가 그 행동의 주체가 되었을 때 스스로에게 느낄 감정인데, 그것이 그 행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것이다. 조금 더 넓게 보자면, 단순히 미워한다는 감정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에 생기는 모든 감정에 대해서도 동일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이를 적용해 많은 도움을 받았던 일이 있다.


같이 살던 생활관의 여러 선임들 중, A선임은 항상 말에 날이 서있었다. 후임이 무언가의 잘못을 저지른 경우는 당연하거니와, 사소한 실수이거나 답답하게 하는 경우일 때 조차도, 타이르고 가르치려기보다는 공격적인 어투로 쏘아붙이곤 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군생활을 한 기간의 차이 때문에 바라보는 시선이 다를 수 있음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대안이 있음에도 본인만의 방식을 고집한 것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A선임과 그의 말투를 굉장히 꺼려했다.


A선임이 다른 후임을 혼낼 때에도 똑같은 '싫음'의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바라보면, 그 상황에 '나'라는 존재는 청자일 뿐이지, 어느 부분에서도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감정에 이유가 없었기에 조만간 없어질 감정이라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부정적인 감정은 계속되었다. 처음에는 그 말투에 묻어있는 공격성이 내게 부정적인 감정을 전파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전혀 무뎌지지 않고 꾸준히 이어지는 것을 보니 이 이유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유를 찾아 헤매던 중, 위 문장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대로 적용해본다면, 내가 A선임과 같이 행동한다면 나 자신이 너무 싫을 것 같기 때문에 A선임을 싫어하고 꺼려하는 것으로 설명이 된다. 날카로운 어투와 언어가 싫다는 단순한 필자의 가치관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내가 그 사람과 똑같이 한다면 어떨까'라는 상상까지 도달한 것이다. 몇 번 실제로 그랬던 스스로에게 뼈저리게 후회한 적도 있을 만큼 그 상상은 충분히 끔찍하다. 실제로 나에 대해 쌓인 부정적인 감정의 방향이 그 사람에게도 향했다. 그 대상을 착각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서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을까?


위 생각을 하게 된 이후로는, 선임의 똑같은 행동을 볼 때마다 일련의 생각들을 한다.

1. 내가 저 선임에게 느끼는 감정은 나에 대한 감정이다,

2. 내가 A선임처럼 날 선 말투로 말을 한다면 스스로에게 던질 감정이다,

3. 나와 관련 없는 일로 그 사람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은 감성에 치우치는 것이다,

4. 이것을 쌓아두는 것은 선임과의 관계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으며 합리적이지도 않다,

5. 내가 할 것은 저런 모습이 나에게 나타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한 감정 소모를 확연하게 줄일 수 있었으며, 공격적인 말하기에 대한 경계심을 높여 그런 말하기가 나올 상황에 놓이더라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고 평가한다.


다른 일에도 적용하며 스스로의 마음 건강을 지킬 수 있었다. 되려 다른 사람들을 거울 삼아 나 자신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의 목록에 하나씩 추가하며 몰랐던 나에 대해 알게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스스로 만족할만한 더 나은 나 자신을 위한 노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가령 인스타에서 누군가가 자랑을 하고 있는 것에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면, 관심을 받기 위해 필요 이상의 노력을 한다는 등의 말을 하며 감정의 연장선 상에서 그 사람을 깎아내리려 하지 않는다. 사실은 저런 관심을 받지 못하는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이기에, 내가 관심받는 것을 좋아함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위해 나만의 노력을 해야 함을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렇게 건강한 마음과 나 자신의 거울을 지키는 데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던 글귀이기에,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을 사람들을 위해 내 경험을 공유해보았다.









덧붙여) 모든 것에 습관과 꾸준하게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지난 2달 동안은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여건이 되지 않아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핸드폰으로도 쓸 수 있으니 핑계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좁은 스마트폰 화면에서는 넓은 생각이 나오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해, 읽었던 책들부터 시작해 꾸준하게 글을 써보려 합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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