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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 Nov 07. 2024

이미 너를 사랑하고 있어


언제부터였을까? 그 시작점은 선명하지 않지만 내 마음에 스며들 듯 다가온 속삼임이 있어. 가끔씩 찾아오는 마음의 저림이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아서가 아니란다. 


나는 어쩌면 누군가가 내 옆에 있을 때 더 고통스러웠을지도 몰라. 생채기가 군데군데 자리한 몸에 그 누군가가 휘리릭 씌어주던 거적대기 하나 걸친다고 내 마음은 괜찮아지는 게 아니더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제 모습을 드러낸 생채기가 시리고 아린데, 나는 백치스러울 정도로 무심하게 그 생채기들을 대했지. 허락되지 않은 누군가가 나에게 생채기를 내고 도망갔을 때, 이방인처럼 그 과정을 지켜볼 때의 그 덤덤함으로. 


거울을 지니고 다니지 않았기에 나는 그 생채기들을 마주하지 않아도 됐어. 생채기 투성이인 나를 보던 사람들은 걱정어린 한마디씩 던지고 지나갔지만, 그 사람들과 함께 그 마디들도 지나가 버렸어. 한동안 내 옆에 머물러서 그 생채기들을 어루만져 주는 이들도 있었어. 딱히 기대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던 정성 어림에 내 저릿함은 무참하게도 그치지 않더라. 


지나가던 길에 널브러진 거울들, 나는 마주하지 않았어. 그렇게 10년이란 시간동안 나는 그 거울들의 주변을 서성거리기만 했지. 거울과의 낯가리는 시간도 지나가더라. 나는 서서히 고개를 들고 마주했어. 그 때 나는 알았던 거야. 내 몸에 잔뜩 그려진 생채기들을. 그리고 그것을 그린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구태여 들춰보고 싶지는 않았어. 불편했거든. 나중에 이 한 몸이 사라지면 조용히 부패되어버릴 그 생채기 따위를 굳이 불편하게 봐야 하나 싶었어. 


근데 어느 순간 나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생기더라. 그 생채기들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기 시작 했어. 뿌옇게 덮여진 시간의 먼지들을 털어내고 그것들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 했어. 생채기에 이름이 붙여지는 순간 나에게 시시각각 찾아오던 마음의 저릿함에 대한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됐어. 그 생채기들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했고, 최초의 진원지에 웅크리고 있던 나를 구해내기 시작 했어. 이제는 마음이 저릿해질 때면 그걸 덤덤하게 받아내고 나아가기 시작해. 저릿함의 이유를 알거든.


그래서 내가 하려던 말은 이거야. 나는 너를 이미 사랑하고 있어. 너가 누구일지, 어디에 있을지, 언제 나에게 올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미 너를 사랑하고 있어. 나에게 찾아오는 고통과 슬픔은 너가 아니라 나로 비롯되는 것이란 걸 알거든. 지금의 나는 백치처럼 굴지 않아. 너가 혹시나 나에게 상처를 내려 하면 나는 그걸 너에게 알려줄 수 있어. 


잠들었던 내 감각들이 깨어나기 시작한 거야. 

우리가 만나는 순간이 온다면, 나는 그 순간 동안 너를 마음껏 사랑할 거야. 그때의 너는, 그때의 나는 다시 오지 않을 사랑을 할 거야. 너가 오는 언제든 그 순간과, 너와, 나를 마음껏 사랑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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