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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하 Feb 01. 2024

나무를 담는 숲, 그릿을 담아낼 그릇



그릿. 목표한 바를 열망하고 해내는 열정과 난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는 끈기
- 그릿 (저자 : 앤절라 더크워스) -



☘️ 그릿이 강한 사람들이 모인 곳


달마다 기업 과제 미팅이 열린다. 함께 과제를 하고 있는 교수님들과 해당 기업의 박사님들, 그리고 나를 포함한 대학원생들이 모여 연구 성과를 보고한다. 교수님들께서 차례대로 자기 연구실의 연구 성과를 발표하신다. 발표를 하시는 교수님들의 목소리에서 연구 수행 중 만난 문제점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고 있다는 열정과 끈기가 느껴진다. 그렇게 다양한 연구진들이 모여서 불가능할 거 같던 목표들을 차근차근 달성해 나가고 있다. "희망찬 결과들을 안고 다음 목표를 위해 다시 나아가봅시다."



연구 학회를 비롯한 연구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앉아 있으면, 연구라는 것이 참 재밌어 보인다. 문제점에 대한 원인을 찾고, 그 원인을 해결한 결과들이 주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성과'보고에 충실한 시간인 것만 같다. 하지만 어느 분야나 그렇듯 연구에서도 그런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해당 연구실의 학생들은 밤과 낮, 새벽 없이 실험을 하고 실패하며 다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실험하기를 반복한다. 연구실이야 말로 그릿이 있는 자와 없는 자가 나누어지는, 나아가 성과와 앞으로의 길이 나누어지는 곳이다.



☘️ 그릿과 행복은 비례할까?


소리도 없이 조용히 들어온 응급 구조 차량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맞은편 건물, 함께 사는 기숙사.......곳곳에서 안타까운 소식들이 전파가 아닌 인파를 타고 전해진다. 연구원들의 힘든 삶들이 남일 같지 않아, 더욱더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서로가 그 고됨을 알기에, 처연하게 슬픈 소식들을 듣고 삼킨다. “아니 그 정도로 힘들면 차라리 대학원을 그만두지. 자기 자신보다 연구가 소중하냐고.......“ 안타까움이 잔뜩 배인 소리가 들렸다. 그 모진 말을 뱉은 사람, 나, 그리고 그 공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알았다.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연구를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릿이 강한 사람들이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곳이 바로 이 연구집단이다.



☘️ 그릿을 모으기 위한 그릇 가꾸기


정의 내릴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나는 지난 길들을 선택했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릿이라는 책을 읽고 나니, 그 행동들을 그릿으로 되짚어 보게 됐다.



어릴 때부터 지켜본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나를 열정과 끈기가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목표한 일들을 해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머리가 비상하지 않은 편이라는 생각으로 더욱 열정과 끈기로 밀어 붙인 거 같다.



하지만 대학교와 대학원의 길을 지나오면서, 열정과 끈기 즉, 그릿이 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지금도 함께 지내고 있다. 그런 그릿이 강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나는 번번이 주눅 들었다. 좌절하고 쓰러졌다가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다양한 시행착오들을 겪으면서 나는 넘어지더라도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갔다. 즉, 나만의 그릿을 만들어 나갔다.특히 나는 그릿이 가득한 공간에서 스스로를 잊지도 잃지도 않으려고 애썼다.



스무 살 이전의 나는 한 나무를 목표로 달리는 그릿이 강한 사람이었다. 그 습관들이 몸에 잔뜩 밴 채 대학생 초반을 지냈다. 그러다 학부생으로 연구를 시작하면서 나에게 변화가 일었다. 해당 연구실에서 주어진 연구들을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수행했고,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실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다. 그런 만큼 나에게 많은 기회들이 주어졌고, 그대로 꾸준히 한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왠지 모를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기쁘지 않았고 오히려 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연구실에서 받은 모든 배움과 기회들을 내려놓고, 휴학을 했다. 오로지 나와의 대화를 위해 내린 결정이었다. 그 시기를 기점으로 나는 서서히 나를 찾으며, 서툴지만 나만의 숲을 만들어 나갔다.



아직도 나의 숲은 단단하지 못하고 서툰 상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숲 안에서 길을 잃는 두려움보다는, 숲에 들어갈 나무를 하나하나 이쁘게 가꿀 수 있는 용기와 자기확신이 생겼다. 그것이 나에게 나무 하나하나를 향한 건강한 열정과 끈기를 줬다. 건강하게 그릿을 다룰 수 있는 그릇이 생긴 것이다. 길을 헤맬 때면 다시 숲으로 나와 숨을 고른 뒤, 나무로 뛰어드는 회복성을 가지게 됐다.



그릿을 잃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그릿을 건강하게 지켜내는 것이 아닐까? 나무를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 숲이 필요하듯, 그릿을 건강하게 가꾸기 위해서는 그릇이 필요하다.



표정이 없는 표정으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 스트레스로 잔뜩 센 머리와 불어난 살들, 정신적으로 힘든 대학원생들로 바쁘게 돌아가는 학교 정신 상담센터. 모든 대학원생들의 개인 사정을 알 수 없고, 지레 판단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나는 그저 나를 포함한 그릿이 강한 그들 모두가, 건강하게 자신의 그릿을 담을 그릇을 꾸준히 가꾸어 나가면 좋겠다. 대학원생들을 넘어 세상을 부단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그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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