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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Feb 23. 2024

외모처럼 마음도 볼 수 있을까?

영화 <핸섬 수트>

영화 <핸섬수트>(The Handsome Suit, 2008 개봉)는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코미디 영화이다. 외모 지상주의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코미디를 표방하는 만큼 유쾌하고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다. 주인공 오오키 타쿠로(츠카지 무가 분)는 이탈리아 유학까지 다녀온 실력파 셰프지만 돼지를 연상케 하는 못생긴 외모와 뚱뚱한 몸매로 인해 '뚱쿠로'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10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하던 식당 코코로야를 물려받아 맛도 가격도 어머니가 운영하던 때와 똑같이 하려는 순박하고 착한 마음씨의 소유자이다. 이윤을 남기기보다 단골들과의 유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항상 단골들로 식당은 넘쳐난다. 단골도 친구도 많고 식당 운영도 잘 되어 먹고사는 걱정은 없지만 타쿠로의 곁은 언제나 허전하다. 고백해서 차인 횟수만 101번, 그중 52번은 고백받은 상대가 울었고 밤길에 스토커로 오인받은 적도 25번이나 된다. 그 모든 이유는 못생긴 외모 때문이다.



이런 타쿠로에게 어느 날 아르바이트생을 뽑는다는 구인 글을 보고 미녀인 호시노 히로코(키타가와 게이코 분)가 찾아온다. 히로코는 오래전 학생 시절에 아버지와 함께 타쿠로가 운영하던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그때 무전취식하던 손님을 경찰에 고발하기보다 자신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불행해지는 건 싫다며 오늘이든 내일이든 내년이든 돈이 생기면 갖다 달라던 타쿠로를 보고 감동받은 적이 있었다. 성인이 된 히로코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하려고 찾아온 것이다. 히로코는 타쿠로와는 달리 외모가 지나치게 예뻐 자신의 마음은 보지 않고 외모만 보고 반했다는 둥, 여신이라는 둥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들 때문에 지친 상태다. 자신의 겉모습이 아닌 내면을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런데 타쿠로가 히로코에게 여신처럼 아름다워 좋아한다는 고백을 하자 히로코는 알바 일을 그만두고 자취를 감춰버린다.  



타쿠로는 못생긴 자신이 고백을 해 히로코가 가게를 그만두었다고 자책한다. 친구 결혼식에 입고 갈 양복을 사기 위해 옷가게를 방문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인생을 바꿔줄 핸섬 수트를 만나게 된다. 핸섬 수트를 입고 진공청소기로 바람을 빨아들이자 미남으로 변신하는 마법이 일어난다. 본래의 뚱뚱하고 못생긴 자신은 없어지고 핸섬한 미남이 보인다. 미남이 되자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지고 모델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까지 받게 된다. 갑자기 모델 안닌이라는 부캐가 생긴다. 핸섬 수트를 입고 모델 안닌이 되어 승승장구하게 된다.



무렵 히로코 대신 모토에라는 뚱뚱하고 못생긴 여자가 알바를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식당에 찾아온다. 단골들이 예쁜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고 만류하는데도 타쿠로는 식당에서 얼굴이 무슨 상관이냐며 겉모습은 상관없다고 모토에를 채용한다. 모토에의 착한 마음과 타인의 작은 행복에도 웃을 있는 성품에 호감을 갖게 된다. 타쿠로는 최고의 인기 모델 안닌으로 사는 삶이 즐겁다. 원래 자신의 모습인 타쿠로로 돌아와 치한 취급 당하는 억울한 일상에 넌더리가 난다. 한편 핸섬 수트를 착용하다 핸섬 수트의 치명적 단점을 알게 된다. 핸섬 수트는 뜨거운 물이 닿으면 본래 자신의 모습인 타쿠로로 돌아간다는 점이다. 타쿠로는 뜨거운 물에 버티는 핸섬 수트가 없는지 양복을 구매한 곳에 가서 물어본다. 그러자 시제품은 뜨거운 물에 버틸 수 없지만 완벽한 핸섬 수트를 입으면 가능하다고 한다. 단, 완벽한 핸섬 수트는 본래의 오오키 타쿠로의 모습으로는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 안닌으로 살아야 한다고 한다. 타쿠로로 살아온 33년과 안닌으로 살아본 몇 개월 중 어느 쪽이 행복했는지 생각한다. 타쿠로는 결국 안닌이 되기로 결심한다.



최고의 스타만이 설 수 있다는 꿈의 무대인 '도쿄 걸즈 컬렉션'에 안닌이 모델로 나가게 된다. 대기실에서 모토에가 장 보러 갔다가 오토바이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다는 음성 메시지를 듣게 된다. 자신이 못생긴 타쿠로로 살며 만났던 손님들의 웃는 얼굴, 친구들의 애정 행각, 모토에의 미소가 진정한 행복이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다. 안닌은 자신의 본래 모습인 타쿠로로 돌아가기 위해 칼로 핸섬 수트를 찢는다. 그러자 완벽한 핸섬 수트는 찢어지고 타쿠로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타쿠로는 모토에가 있다는 병원으로 달려간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모토에가 아닌 오토바이 탄 사람이었다. 타쿠로는 모토에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다. 모토에는 자신을 미소 짓게 해 주며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이다. 모토에에게 자신의 심경을 고백한다. 그러자 모토에가 비밀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아버지는 핸섬 수트의 개발자이고 사실은 자신이 히로코라고 말한다. 자신의 겉모습만 보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싫어 속마음을 보여주고 싶어 못생겨 보이는 핸섬 수트를 입은 거라며 고백한다. 둘은 서로 호감을 확인하고 혼자에서 둘이 된다.



외모 지상주의가 팽배하고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서는 타쿠로처럼 저주받은 외모와 비단결 같은 내면을 가진 사람은 불리하기 짝이 없다. 외모가 돋보이고 호감이 가야 말이라도 걸고 일할 기회라도 잡게 된다. 아무리 착한 심성을 가졌다고 해도 성격이나 심성은 즉각적으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일정 시간,  인간관계를 지속할 때 자연스레 알게 되는 부분이다. 핵개인화 시대가 가속화되면서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부족하고 예전처럼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을 만큼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다. 일관계로 만나거나 취미가 같아 적당히 겉으로만 어울리는 스치는 인연이 대부분이다 보니 성격이나 속마음까지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다. 보이고 드러나는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게 될 공산이 크다. 젊은이들도 취업을 위해 성형을 하지만 은퇴자들도 재취업을 위해 성형 시술을 받는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보이는 외모로 모든 것을 판단하다 보니 늙음을 죄악시하고 젊음을 동경하는 문화가 생겼다. 자연스레 나이 드는 건 추하고 감추어야 할 흉한 모습이고 젊게 보이도록 보톡스라도 맞아야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년층에서도 성형이나 시술을 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보톡스가 아니라면 주름 개선에 효과가 있다는 미용 기기라도 구입하고 팩이라도 사서 붙여야 노화를 늦추고 부지런하게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외모 지상주의와 결합한 각종 상술이 활개 치며 뷰티 산업이라는 이름으로 호황을 누린다. 외모 가꾸기에 소홀한 사람은 게으르고 자기 관리를 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 외모도 경쟁력인데 무슨 배짱으로 성형도 하지 않고 태어난 모습 그대로 사느냐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하는 사람도 있는 보면 이젠 외모도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스펙 중 하나로 인식되는 것 같다.



경쟁력 우위를 확보하고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성형을 하고 외모를 가꾸는 사람을 비난할 마음은 없다. 그러나 성형하지 않고 타고난 모습 그대로 사는 사람을 용기 없는 겁쟁이라느니 게으름의 표상이라고 비난할 마음도 없다. 사실 잘생긴 외모의 기준은 시대마다 달랐다. 구석기시대의 미인은 엉덩이가 크고 가슴이 풍만한 여성이었다. 다산을 상징하는 다소 몸집 있는 여성이 미인으로 대접받았다. 동양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미인은 얼굴이 둥글고 눈, 코, 입이 작은 여성이었다. 오늘날 사회에서 미인으로 인정받는 기준과는 다름을 알  수 있다. 오랜 옛날로 거슬러 가지 않더라도 최근에 변한 미의 기준도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쌍꺼풀이 있는 큰 눈을 가진 여성을 미인으로 보았지만 지금은 외려 쌍꺼풀 없는 동양인 특유의 눈을 가진 사람을 미녀로 보기도 한다. 세계적 명품 브랜드의 모델을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동양인 특유의 무쌍에 눈꼬리가 올라간 눈매를 지닌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다. 오늘날 미인이라고 칭송받아도 시대가 바뀌고 트렌드가 변하면 더 이상 미인이 아닐 수도 있다.




정말 아름다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한때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녀의 발은 기형에 가까울 만큼 발가락 마디가 돌출되고 물집에 울퉁불퉁한 모양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발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그녀의 발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왜 각광받는 발레리나가 되었는지,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이 되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흔적, 고된 훈련과 노력의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녀가 추구하는 삶이 그녀의 발로, 몸으로 드러났다.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 가치관, 신념, 진지한 삶의 자세와 열정, 노력 그 모든 것이 드러나는 그녀의 발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로 찬사 받는다. 가장 흉하고 못생긴 외형을 가진 그녀의 발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외적 아름다움을 뛰어넘는 숭고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녀의 삶의 궤적을 온전히 보여주는 그녀의 발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자신의 삶의 스토리, 가치관, 신념, 그동안의 살아온 흔적이 온몸에 드러나는, 온 얼굴에 나타나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대학 새내기 시절 우연히 화장기 하나 없이 작고 마른 총장님을 가까이서 뵌 적이 있었다. 민낯에 왜소한 체구를 지닌 분이었지만 뿜어져 나오던 아우라와 단아하면서 카리스마 있는 기상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외모를 치장하고 트렌드를 쫓아가고 대중매체에서 선동하는 미의 기준을 충족하는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일까? 잠깐 동안은 그렇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교류하다 보면 알게 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개미허리에 풍만한 가슴, 식스팩, 눈과 오뚝한 코, 갸름한 얼굴을 만들기 위해 성형도 불사하온종일 피트니스 센터에서 보내며 혹독한 다이어트를 해서 마침내 건강을 잃고 병약한 모습이 되는 아름다운가? 애초에 개미허리에 풍만한 가슴은 불가능한 기준이다. 불가능한 기준을 설정하고 기준에 맞추기 위해 돈을 쓰게 만들고 헛된 노오력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게 만든다. 내면의 아름다움은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고 숨길 수 없다. 시대착오적 발상일지 몰라도 아름다운 사람은 미의 기준에 따라 성형을 사람이거나 치장한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스토리와 가치관, 신념이 겉으로 드러나 자신만의 아우라를 지닌 사람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원숙미가 엿보이고 인격이 묻어나는 그런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 아닐까. 주름을 없애겠다고 보톡스를 맞고 피트니스 센터에서 하루 종일 운동을 해서 뒤에서 보면 젊은이인데 앞에서 보면 영락없는 노인이 과연 아름다운 사람일까? <핸섬 수트>는 다소 유치하고 오버스러운 면은 있지만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한다. 그러면서도 유쾌하고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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