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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Apr 07. 2024

행복과 불행의 인생 변주곡

영화 <룸바>

영화 <룸바>(Rumba, 2009 개봉)는 프랑스 코미디 영화로 러닝타임 77분의 비교적 짧은 영화이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주최하는 자그레브 영화제에서 제6회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 속 주인공인 돔과 피오나는 부부 교사로 시골 학교에서 체육선생님과 영어선생님으로 일하고 있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 못지않게 룸바를 사랑하는 부부는 각종 라틴댄스 경연대회에 출전해 1등을 휩쓴다. 수상한 트로피만 해도 벽면 하나를 채우고도 남을 분량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서로를 뜨겁게 사랑하는 부부, 세상 행복하기만 한 부부에게 불행이 비집고 들어올 여지는 없어 보인다. 작은 일에 감사하며 매일매일을 평화롭고 즐겁게 살아가는 이들 부부에게도 어느 날, 불행이 닥친다. 한 번 시작된 불행은 멈추지 않고 또 다른 불행으로 이어진다. 이 부부의 불행을 연속적으로 보여주는데도 영상은 밝고 아름답기 그지없다. 화면을 뒤덮고 있는 영상의 색감 또한 밝고 경쾌하다 못해 매우 강렬하다. 흘러나오는 음악 역시 몸치인 사람조차 둠칫거리게 만들 정도로 흥겹다. 



그날도 여느 보통의 날처럼 라틴댄스 경연대회에 출전해 1등을 차지하고 자랑스러운 트로피를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삶을 마감하고자 하던 제라르가 길 한복판에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라르는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하려고 했지만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이번엔 차에 치여 죽으려고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룸바로 라틴댄스 경연대회에서 우승을 하여 더없이 행복하고 즐겁게 귀가하던 돔과 피오나는 제라르를 피하려다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이 교통사고로 부인인 피오나는 한쪽 다리를 잃고 남편 돔은 기억을 상실하게 된다. 두 사람은 퇴원 후 교사로 복귀하지만 이미 예전과는 달라져버린 두 사람은 교사직을 수행할 수 없게 된다. 부부는 해고당한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도 두 사람은 캠프파이어를 하고 기타 치며 노래 부른다. 그러던 중 부인, 피오나의 의족에 불이 붙는다. 부엌 개수대에서 의족에 옮겨 붙은 불을 끄려 하지만 설상가상 부엌 커튼까지 불이 옮겨 붙는다. 집 전체로 화마가 번지면서 순식간에 집이 불타버린다. 돔과 피오나는 건강, 직장에 이어 주거할 집마저 잃어버린다. 소소한 작은 일상에서 감사와 기쁨을 발견하고 낙천적으로 살아가던 두 사람에게 시련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 



아침에 먹을 초코 크라상을 사러 나간 남편 돔은 기억상실증으로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몰라 집과는 정반대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버린다. 부인에게 줄 빵이라며 소중히 간직한 초코 크라상을 뺏기지 않으려고 구타를 당하다 제라르를 만난다. 이들 부부의 불행은 자살하려던 제라르를 피하려다 교통사고가 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제라르가 돔을 알아보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며 돔을 보살펴준다. 한편 돔에게서 빵을 뺏으려던 남자는 돔이 옷 속에 숨긴 빵을 찾으려고 돔의 옷을 벗기고 구타까지 한다. 벗긴 돔의 옷에서 빵을 찾자 옷을 절벽 아래로 던진다. 빵을 먹으려던 순간 남자도 절벽에서 추락해 죽게 되고 바다에 버려진 돔의 옷도 흘러가 버린다. 행복하던 부부는 교통사고로 다리를 잃고 기억을 상실하고 화재로 집도 잃고 이젠 사랑하던 두 사람마저 헤어졌다. 



과연 이들에게 닥칠 불행이 더 남아 있을까? 주인공에게 닥친 기구한 운명은 지켜보는 관객조차 아연실색하게 만들 정도인데 화면을 채우는 영상은 칙칙하거나 어둡지 않다. 지나치게 밝고 강렬하다. 영상과 어우러지는 음악도 경쾌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비련의 주인공인 돔과 피오나 역시 담담하다. 불행이 닥쳤지만 그들은 룸바춤을 추는 상상을 하며 씩씩하게 살아간다. 1년 후 돔은 제라르와 함께 살면서 '제라르 돔 스낵'에서 도넛을 팔고 있다. 피오나는 우연히 바닷가로 흘러온 돔의 옷을 발견하고 돔이 죽은 것으로 생각한다. 돔을 추모하기 위해 꽃 한 송이를 바다에 던진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고 사람들이 비를 피하기 위해 도넛 가게 앞으로 몰려든다. 버스가 오자 다들 버스를 타러 가게 되면서 피오나와  돔만 남게 된다. 둘은 꿈에 그리던 재회를 하게 된다. 



영화 <룸바>는 역설의 미학으로 점철되어 리얼리즘에 익숙한 사람에겐 적응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보면 볼수록 묘한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불행조차 아름답게 그려낸다. 스스로의 가혹한 운명에 흔들리거나 동요되지 않는 주인공을 보면서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충분히 스스로를 동정하고 하늘을 원망할법한 상황임에도 주인공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는다. 불행조차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모든 불행을 담담히 받아들인 그들에게 다시 만나 새롭게 인생을 살아갈 기회가 주어진다. 마치 돔과 피오나는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면서 겪어야 할 고통의 총량이 있다는 걸 아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하늘을 향한 원망 한 번 없이 고통의 순간조차 룸바를 추는 상상을 하며 견뎌낸다. 절망 속에서도 밝음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는다. 고통이 찾아와도 둠칫둠칫 룸바를 춘다.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라는 듯. 



러닝타임은 짧지만 영화는 대사를 통해 주인공의 깊은 내면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대사를 통한 전달 방식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영화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영화는 대사를 최대한 줄이고 행동이나 장면으로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렇기에 관객에게 좀 더 생각할 여지를 준다. 영화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마치 신적인 존재가 숨어서 "너 이렇게까지 됐는데도 울지 않을래? 비관하지 않을 거야? 화내지 않을 거니? 원망하지 않을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을 거야?" 하며 약 올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이들에게 더 이상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 일어나지 않길 기도하게 된다. 고난과 시련의 순간조차 경쾌하고 덤덤하게 이겨내는 돔과 피오나처럼 역경의 터널을 통과할 때 둠칫둠칫 룸바춤을 추고 싶다. 영화는 마치 "사는 거 뭐 그런 거지. 불행이 있어야 일상이 더 아름답게 빛나잖아. 불행을 겪어본 사람만이 일상이 주는 덤덤함과 무심함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알게 되고 감사함을 배우게 되잖아."라고 말하는 것 같다. 불행 또한 견디고 버티다 보면 지나간다. 살다가 시련이 찾아온다 해도 돔과 피오나처럼 자신만의 룸바춤을 추다 보면 어느새 행운의 여신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오늘은 오늘의 룸바춤을 춰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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