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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나무 Apr 18. 2024

이런 사랑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パーマネント野ばら, 2010 개봉)는 항구가 있는 시골 마을의 한 미용실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미용실은 여자들의 수다방으로 주로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사랑에 상처받고 또 새로운 사랑을 찾아 사랑을 시작하는 여자들이다. 주인공 나오코는 이혼녀로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딸 모모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나오코의 엄마 노바라는 작은 항구 도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미용실에 오는 손님들은 전부 여자들이고 주인공 나오코, 나오코의 엄마 노바라, 나오코의 동창인 미짱(마사코)과 토모 모두 사랑에 실패하고 상처받은 여자들이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멀쩡해 보이는 사람이 없다. 다들 문제가 있다. 영화 속 대사인 "멀쩡한 남자가 없더라고. 없어."에 들어맞는 인물들이다. 여자들도 물론 멀쩡하진 않다. 소위 말해 완벽한 왕자님과 넘사벽 공주님이 사랑에 빠지는 사랑에 대한 판타지를 그리는 작품은 아니다. 어찌 보면 평범보다 다소 더 찌질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를 여성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영화이다.



나오코의 동창인 미짱은 술집을 운영하며 고향에서 살고 있다. 미짱의 남편 히사시는 못 말리는 바람둥이로 미짱 가게의 여종업원들과 모두 바람을 피웠다. 지금은 새로 온 종업원과 눈이 맞아 필리핀에 가서 가게를 차리고 아이를 갖자고 꼬시는 중이다. 미짱과는 빚쟁이들을 속이려고 혼인신고만 한 사이라며 예전 바람피울 때와는 달리 진심을 다해 꼬시는 것 같다. 미짱은 참지 못하고 자동차로 불륜녀에게 돌진하지만 남편이 이를 막아서는 바람에 남편이 병원에 실려가고 미짱이 몰던 자동차는 폭발한다. 영화 속에서도 미용실에 모인 여자들이 한결같이 그냥 보내 버리라는 조언을 하지만 미짱은 내 남편이고 내 거라는 주장을 하다 결국 사고를 일으켰다. 미짱은 "이런 사랑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진다는 거 난 견딜 수 없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이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집착하고 매달리고 욕심낸다고 사람을 소유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일방적인 사랑은 오히려 사람을 더 외롭고 지치게 만들 뿐인데 사랑 자체에 집착하는 미짱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니 마음이 얼마나 황폐하고 황량하면 저럴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결국 미짱은 그토록 집착하던 남편과 이혼하고 혼자가 된다.



나오코의 또 다른 동창인 토모도 고향 마을에 살고 있다. 토모는 남자복이 지지리 없어 만나는 남자마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였다. 겨우 안 때리는 남자를 만나서 결혼했더니 이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나쁜 남자였다. 처음엔 그래도 슬롯머신에 빠져 있어 괜찮았다. 파친코 가게는 밤엔 문을 닫으니까 최소한 집엔 들어왔다. 그러다 불법 마작을 배우게 되면서 집에도 안 들어오고 어디에 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토모는 사실상 혼자 살았다. 남편 대신 의지하고 살던 고양이 폰타 마저 죽어 버린 어느 날 남편을 산속에서 찾게 되는데 남편은 이미 죽어 있었다. 밤새워 마작을 하고 각성제를 맞아 결국 그렇게 세상과 작별한 것이다.



미짱과 토모보다는 상대적으로 남자복이 좀 나아 보이는 주인공 나오코는 이혼 후 카지마와 사귄다고 친구들에게 말한다. 카지마는 고교 시절 나오코의 선생님으로 과학 교사이다. 그런데 카지마는 사실 이미 오래전 죽은 나오코의 첫사랑이었다. 나오코는 죽은 첫사랑 선생님을 잊지 못해 혼자 상상 속의 데이트를 해온 것이다. 카지마의 환영과 온천 여행을 가기도 하고 죽은 카지마와 바다에서 데이트를 하는 기이한 사랑을 한다. 본인도 그런 자신을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자 미짱이 "그렇게 치면 이 마을 여자들은 전부 제정신이 아닌 거지. 그동안 계속 세상이 원하는 착한 여자로 살아왔잖아. 이제부터 우리 마음대로 살자"라고 말한다. 바다에서 죽은 카지마의 환영과 데이트하는 나오코에게 딸 모모가 찾아온다. 나오코는 모모와 함께 다시 현실로 돌아온다. 동네 사랑방인 미용실에서 동네 여자들은 모두 말한다. "멀쩡한 남자가 없더라고. 없어."



영화 <퍼머넌트 노바라>는 사랑에 상처받고 아픈 외로운 여자들의 이야기다. 사람의 외로움은 사람으로 채워지고 달래지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사랑하게 되면 후폭풍을 감당키 어렵다. 아무리 사랑 없이 못 산다고 해도 아무나 사랑할 순 없는 노릇이다. 고립되지 않고 혼자 살기 싫어 무조건 참고 맞추며 살 순 없다. 세상이 원하는 착한 여자로 사는 건 외로움보다 더 한 형벌일지도 모른다. 혼자라고 꼭 외로운 건 아니다. 오히려 둘이라서 더 외로운 경우도 많다.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 마음을 나누고 사랑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고 불행한 건 아니다. 누군가가 있다는 건 그만큼 배려하고 양보하고 조율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그러다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변하고 사랑이 식으면 지난한 과정은 시절인연으로 끝나버린다.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하고 배우고 행복했던 기억은 남겠지만 상처와 원망, 정성을 쏟은 만큼 밀려오는 배신감으로 인해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굳이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해야 한다면 외부의 대상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면 어떨까 한다. 꼭 연애 상대가 아니더라도 가족, 친구나 지인 등 타인에게 공들여 봤자 허무함과 공허감이 밀려올 수 있다. 내가 베푼 만큼 돌아오지 않으면 박복하다며 자책하게 되고 서운한 마음을 갖기 쉽다. 타인에게 시간과 정성, 노력을 기울일 바에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에게 시간과 정성, 노력을 쏟는다면 어떨까 싶다. 나와 끊임없이 마음을 나누고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 모든 시간과 열정을 불태운다면, 그래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산다면 보람차고 행복하지 않을까? 행복한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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