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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un 17. 2024

아름다운 사람이길 꿈꾼다.

삶의 방향

  뒤늦게 찾았다. 내가 쭉 실천하고 있었던걸 이제야 알아차렸다. 십 대까지는 참 많이 느린 사람이었다. 행동이 좀 많이 느린 사람이었다. 유난히 빠른 언니와 사노라니 보통보다 좀 많이 느린 난 더 많이 느린 사람으로 스스로 인식하며 살았다. 또 다른 특징은 심하게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날마다 뜨는 해를 보며 감동해 버리고 우리 집 마당 위의 하늘엔 쏟아질 듯이 반짝이는 별들이 빛나고 있었기에 아래채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감탄하느라 좀 느리게 다시 잠자리로 돌아가곤 했었다. 뿐만 아니라 가삿말이 슬픈 노래를 듣거나 부르면 소리 없이 많은 눈물을 흘리곤 했다.


느린 것에 조금 주눅 들어했었고 아무도 울지 않는 대목에 혼자 우는 걸 숨기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었다. 부모님이 하라고 했었는지 스스로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했었는지는 분명하게 기억되지 않지만 한방구의 논을 어린 나는 홀로 모내기 전에 물이 새지 않게 하는 작업인 논둑을 하는 일을 했었고, 퇴비를 그 큰 논에 홀로 골고루 뿌리는 일을 했었다. 투정을 부리려고도 생각해보지도 못하고 그냥 묵묵히 해냈었다.  투정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입 밖으로 표현해보진 못했지만 속으로 읍내에 있는 학교에 다닐 땐 우리 집이 농사를 짓는 집이 아니고 읍내에 있는 집이었으면 했었다. 특히 시험기간에는.


직장엘 다닐 땐 스스로 제대로 청춘이라는 걸 '일에도 흠뻑 빠져보리라.'이런 마음을 갖고 실천하는 나를 내가 원해서 실천했었다. 그때도 그냥 묵묵히 일만 했었다. 때론 전철이 끊길까 봐 전철역을 향해 달리기를 했었던 때도 있었다.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전이라 손가락이 굳은살이 생기도록 글씨를 많이 썼었던지라 오래도록 그 흔적이 남아있었다. 굳은살 그 이상으로 직장에 대한 주인의식이 남달랐었다. 그 결과 오십 대인 지금까지도 나의 이십 대는 제대로 청춘이었다고 기억하게 되었다.


삼십 대 사십 대엔 아이 셋을 낳아서 기르는 걸 최대 업적이 되도록 살았다. 지금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생각이지만 그 당시에 사명감에 중무장되어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내는 내 또래의 모든 사람 중에 최상의 연봉을 받은 사람이 아이 셋을 기르는 내가 되리라.'라는 생각으로 임했다. 쉽게 말해서 최고의 연봉을 받은 사람의 업적을 생산해 내리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길러야겠다는 다짐을 실천하려고 했었다는 것이다. 미련 없이 약간은 미련하게 최선을 다했었다. 시간을 되돌려서 그 시간을 다시 살아내라고 하면 못하겠다고 답할 정도로 마음과 몸을 쳤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자랐음에도 직장을 택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그 중요한 '돈'을 쫓지 않았다. 아이 셋을 다 키워놓고 육십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야 '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속마음은 아이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고 아이들이 낳을 아이들에게 경제력이 되는 조부모가 되어주고 싶은 생각이 조금 생겼기 때문이다. 경제력이란 단어보단 흔쾌히 아니 두둑이 용돈을 줄 수 있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소박한 꿈을 꿔본다.


살아온 시간들을 돌아보면서 소중한 걸 소중하게 생각하며 실천하려고 애썼던 스스로를 떠올릴 수 있어서 다행이다. 특히 태생 자체가 여우과가 아닌 곰 과인 나라서 더 다행이다. 반짝거리지 않더라도 오래도록 은은하게 느껴지는 사람으로 살아내서 그 또한 다행이다. 급한 마음에 잔꾀를 부리거나 그런 마음 자체를 갖아본 적이 없는 나라서 다행이다. 삶을 살아내고 보니 '성실'이란 단어가 귀하고 값진 단어인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흔하고 쉽게 접했던 그 단어가 생활인으로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단어라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대 이십 대 삼십 대 사십 대 그때마다 1번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올인했다. 십 대엔 공부, 이십 대엔 일, 삼사십 대엔 육아, 아이들 양육이 1번이었다. 오십 대부터 쭉 '건강'이 1번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야겠지만 건강은 기본이고 무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또 있어야 할 것만 같다. 명사나 대명사가 아닌 좀 뜬구름 같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운 나를 완성시키는 일'이 남은 나의 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흔들리지 않고 중요한 걸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내가 고맙다. 이제부터 누구의 자식,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닌 그냥 나로서 나를 만나고 살아내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건 뭔지, 내가 잘하는 게 뭔지를 생각하며 내게 집중하고 싶다. 지금껏 쭉 그래왔듯이 중요한 걸 중요하게 생각하며 사는 나를 믿고 힘차게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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