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은 뭐였을까? 학교 다니면서 적어 내야 할 때 의례적으로 공무원 교사 현모양처 이렇게 순차적으로 적어 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게 뭐고 또 잘하는 게 뭔가에 대한 탐색은 없었다. 그 시대를 살면서 어설프게 접하게 된 무난한 포지션이 딱히 직업이라고 하기 모호한 현모양처까지 포함한 게 내 꿈이라고 칭하는 것이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믿는 사람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근사치에 가까이 이뤘다. 현재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하기는 모호한 나라에서 주는 월급을 받고 공무를 수행 중이다. 교사는 자격증을 취득했다. 누가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는 현모양처는 셋 중 가장 완성도 있게 이뤄 냈다고 자평한다.
어릴 적에 마음속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책을 한 권 쓰고 싶었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책은 전자책을 출간해서 소액이지만 수입이 있었다. 그림은 8년을 배웠고 전시회도 열었었기에 세월 속에서 하나하나 해내고 살았다.
지나고 보니 큰 업적은 아니지만 마음속에 품었던 일들은 하나하나 실현되고 있었다. 딱 원하는 만큼 이뤄낸 것 같다. 더 강력하게 원했었더라면 더 괄목할만한 성과가 있었을 것 같다.
그중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은 아이 셋을 낳아 기른 일이다.
빼어난 첫째, 인류를 위해 꼭 뭔가를 해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둘째, 삼 남매 중 다른 형제가 인성부자라고 칭하는 셋째가 모두 성인이 되었다. 그중 유일한 딸인 큰 아이에 대한 얘기를 할까 한다. 여느 부모들도 비슷하겠지만 첫째에 대한 열과 성의는 엄마로서 남달랐다. 큰아이를 기를 때 타인들 앞에서 내 인생의 99.9%가 나의 큰아이라고 하면서 길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의 내게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진다. 잘 길러보겠다는 다짐이었을 것이다.
큰아이를 대학에 보내기까지 때론 공부 동료였고 때론 시녀였으며 때론 히틀러였다. 큰아이가 한창 공부할 때 잊지 못할 마음속 바람은 흐드러지게 핀 꽃구경을 언젠가는 원 없이 자유롭게 할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이었다. 입학할 대학을 확정하고 입학 전 수고했다고 미국 여행을 보내주고 진정한 자유를 맛보라고 했다. 그 후로 큰아이는 또래들 중 어느 누가 부럽지 않게 좋아하는 여행을 훨훨 다닌다.
큰아이는 의욕적이며 뭐든 탁월했다. 사춘기와 동시에 시작한 대학 입학을 위한 공부 위주로 살기 전까지는 집 밖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자세하게 엄마인 내게 종달새처럼 얘길 했었다.항상 말끝마다 "네, 엄마"를 너무나 사랑스럽게 붙였다. 그래서 첫째는 사랑둥이다. 참고로 둘째는 태어나자 너무나 행복했기에 행복둥이고 셋째는 이십 대 중반인데 아직도 귀여워서 귀염둥이다.
그놈의 대학이 뭐고 공부가 뭐길래 큰아이와 나는 관계가 일정기간 냉각기가 있었다. 다행히 지금은 거의 해빙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큰아이가 대학생일 때였던 거로 기억한다.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니?"라고 물었다. 뜻밖에도 "전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는 대답을 했다. '오호,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 큰아이와 셋째가 좋아하고 잘하는 재능중에 '노래'가 있다. 한창 전국적으로 가수를 뽑는 오디션이 붐일 때 응시했던 이력도 있다. 둘 다 대학 밴드 보컬이었다. 큰아이는 학교 연극 무대에 서기도 했는데 학우들의 호평을 받은 바가 있었다고 했다. 지금도 많은 학령기의 아이들이 관심 있어하는 분야이지만 우리 큰아이도 '유명한'이란 의미 속에 그 분야를 마음속에 품고 있는 듯한 의심이 들었지만 대놓고 묻지를 않았다. 물론 지금은 흘러간 옛이야기가 되었다.
지금 큰아이는 건강 관련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다. 오늘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고 늘 갖고 있었던 지론을 다시 환기하는 기회가 되었다. 어느 분야에서든 최고가 되면 자연스럽게 '유명한'이란 타이틀을 얻게 된다는 것을. 유명한의 의미나 중요성이 자칫 상대적이면서 타인을 의식한 허례라고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내면을 파고들면 성취고 자긍심의 베이스다. 무엇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 속에서 얻게 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꿈을 이루길 바란다. 큰아이에게 바란다. 네가 간 그 길에서 진정한 최고가 된다면 자연스럽게 유명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란 생각이다. 되돌아보면 엄마는 될 것 같은 꿈만 꾸었는지 모르겠다. 부디 너는 꿈꾼 만큼 되길 바란다. 꿈은 꼭 이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