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오늘 스페인에 도착했기 때문에 첫날부터 절망감을 느낀 셈이다. 심지어 문제의 시발점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혼돈에 잠식되었다.
본래 계획은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면, 짐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보내야 했다.
그런데 공항 우체국이 코로나로 인해 14시 마감인 줄 어찌 안단 말인가? 게다가 우리 비행기는 13시 30분에 도착했는데, 짐을 찾는데만 30분이 지났기에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고 그 넓디넓은 마드리드 공항을 한 시간 동안 떠돌았다니... 불행히 고행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혼돈 속에서 한 공항 직원을 만났는데, 그녀는 우리에게 101번을 타고 도시 외곽에 있는 '까르가 아이리아'로 가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했다.
선택지가 없었던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발음하기도 어려운 '까르가 아이리아'에 도착했다. 그러나 회사 건물을 본 순간 뭔가 잘못됨을 감지했다. 직원분이 알려준 '까르가 아이리아'는 배송업체였는데, 쉽게 말해 한국의 택배 상하차를 하는 곳이었다. 새삼 우리에게 직장을 소개해준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냥 짐을 들고 사리아(순례길 시작점)에 가면 좋았을 텐데, 가끔 인간의 고집은 객관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 여하튼 우리는 타오르는 태양 빛을 정통으로 맞으며, 15분가량 떠돌아다녔다. 그러던 중 한 명의 노신사를 만났는데(나는 이분을 천사 1로 부른다.) 나에게 "Are you lost?"라고 묻는 게 아닌가?
당시 나는 첫 번째 계획부터 들어져 망연자실해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가고 싶었기에 노신사의 한마디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오아시스 같았다. 노신사는 우선 더우니 그늘로 가자고 했고 그늘에서 배송을 담당하는 업체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나는 이분의 옷차림과 시계, 자동차, 분위기로 보아 까르가 아이리아의 요직에 계신 분이 아닌가 예상해 보았다.)
우리는 시원한 친절에 힘을 받아 그분이 안내해준 담당 업체로 발걸음을 옮겼는데, 아쉽게도 우리의 결말은 해피앤딩이 아니었다. 하긴 이야기의 시작점인데, 벌써부터 행복한 부분이 나올 리가 없었다. 유감스럽게도 담당 업체도 마감시간이 지나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잠겨있는 문을 보니 뇌에 피가 도는 느낌이 들었고 비로소 사리아까지 캐리어를 들고 간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담배 피우러 나온 직원분들의 도움으로 택시를 잡고 챠마르틴역으로 갔다. 이후 사리아에 갈 렌페를 타기까지 순탄하게 흘러갔다. 그러나 사리아에 가자마자 겪을 일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제목 : 경이로운 감사
Q : 당신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장면과 마주한 적이 있나요?
제목 : 주름진 책임
이 사진을 찍은 시각은 아침 7시...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밭을 매고 있었다.
Q : 당신은 책임지고 있나요?
제목 : 아직도 가야 할 길
Q : 돌아볼 수는 있지만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제목 : 숨겨진 친절
순례길을 걷다 보면 종종 길을 잃은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곳곳에 보이는 노란 화살표가 마음의 안정을 선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