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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언 Jun 21. 2023

기다림

2022년 8월

바르셀로나의 뜨거운 여름, 길 건너에 한 소녀가 서있었다.


당시 나와 친구는 저녁을 해결하고자 식료품점에 가고 있었는데, 10분 뒤에 목적지가 나온다는 구글 지도의 농간에 땀으로 절여지고 있었다.


워낙 뜨거웠기에 버스나 택시를 탈 수도 있었지만, 며칠 뒤면 볼 수 없는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렇게 주위 풍경에 시선을 돌려 조금이나마 더위와 멀어질 무렵 길 건너의 소녀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소녀는 자신의 몸과 비슷한 크기의 배낭을 메고 있었는데, 마치 지난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며칠 전만 해도 배낭을 메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그늘 아래에 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무거운 짐을 지고 태양 아래에 있는 모습이 패기 있어 보였는데, 한편으로는 처음 스페인에 도착했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계획한 대로만 움직이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착각했던 과거의 내 모습 말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살면서 묵혀 두었던 질문과 답을 생각할 수 있는데, 앞서 이야기한 장면을 보면서 '나는 여행의 막바지까지 조급해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식료품 점 앞에 다다랐을 때는 '흐름에 몸을 맡기고 세상이 보며 주는 선물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심심한 바람을 담아보았다.



당신의 작은 창문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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