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의 힘 : 신라대 청소노동자와 함께한 114일》(배성민) 연대사
8월에 나올 《현장의 힘 : 신라대 청소노동자와 함께한 114일》(배성민)에 실을 '연대사'입니다. 책 나올 때까지 몇 차례 홍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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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사] 외면하면 안 되는 소중한 분투의 기록
- 홍명교(플랫폼C 활동가)
살면서 누구나 사회 모순이 낳은 장벽에 부딪혀 선택의 갈림길에 서곤 한다. 장벽을 부수거나, 받아들이거나, 장벽으로부터 도망치거나. 《현장의 힘 : 신라대 청소노동자와 함께한 114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글쓴이 배성민이 돌파해 온 대결의 시간을 전한다. 그의 분투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
글쓴이는 청소년운동과 대학생운동, 진보정당운동을 거친 젊은 활동가로서 세상의 부조리와 불합리, 억압에 맞서 싸우며 대안을 고민해 왔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취약한 조건 앞에서,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의 진보 정치에 대한 조롱과 절망 앞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문득 세상을 바꾸자는 내 말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먹히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가 돌아본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
세상의 흔치 않은 풍파와 좌절, 냉소에 아직 지지 않은 글쓴이가 선택한 곳은 부산지역일반노동조합이다. 2000년 4월에 출범한 부산일반노조는 한국 노동운동의 전형적인 지향과는 다른 조직 방식을 선택한, 기업과 업종을 뛰어넘어 ‘지역공동체’의 노동운동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노동조합이다. 따라서 이 책은 신라대라는 개별 사업장 청소노동자들의 집단 해고에 맞선 투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지역일반노조의 특성을 품은 행동 양식을 드러낸다. 부산일반노조는 처음부터 개별 사업장을 뛰어넘는 노동조합을 고민했기에 하청·도급·비정규직·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이 모일 수밖에 없으며, 하나하나의 싸움이 격렬하고 힘겹다. 그런 만큼 산전수전 다 겪은 노동자들의 경험적 지식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기도 한다. 책상 앞에 앉아서는 얻을 수 없는 지식이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2000년대 대학생운동을 경험한 글쓴이에게 중요한 기억을 남겼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물결이 대학에도 들이닥치면서 이윤 가치를 중심으로 한 대학의 기업화와 학사 재편을 낳았기 때문이다. 청소노동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한국 대학들은 경영 효율성 개선과 비용 절감을 위해 청소·경비·통신·조리 등 캠퍼스 시설관리직을 용역 업체 소속으로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더 많은 이윤을 뽑아내려는 용역 업체에 의한 중간 수탈 고착화와 일터의 비인간화가 이뤄졌다. 화장실 청소도구 칸이나 지하실, 계단 아래에 쪼그려 앉아 밥을 먹는 청소노동자의 모습이 알려진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다.
신라대 청소노동자들 역시 이런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 왔다. 정현실 지회장을 비롯한 총무, 조직부장, 쟁의부장, 교육부장 등 32명의 조합원은 평상시에는 캠퍼스 곳곳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노동자이지만 농성이 시작되면 투사가 된다. 글쓴이는 114일간의 농성 투쟁에서 청소노동자이자 여성 노동운동가인 그들이 오랜 시간 익혀 온 ‘현장의 지식과 지혜’를 배운다. 책에는 준법 투쟁과 쟁의 행위, 일부 학생의 반발에 맞선 다른 학생 연대 조직, 가처분 소송 대응 투쟁, SNS를 이용한 선전 활동, 강성 투쟁과 속도 조절 투쟁의 조율 등에서 그가 느낀 현장의 리듬과 공동체 윤리, 정서, 긴장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외면받는 일터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현장의 힘’을 배우고, 기억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려는 모습에서 ‘잃어버린 진보 정치’가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느낀다. 그런 점에서 글쓴이는 우리 사회의 가장 열악한 노동 현장에서 진짜 정치를 배우고 또 펼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희망버스나 노동자대회 같은 집회에서 글쓴이를 스치듯 만났을지 모르겠지만, 그와 나는 일면식도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을 읽으면서 글쓴이의 뜨거운 마음,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며 자기 정정의 기회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거칠고 팍팍한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의 동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본의 야만과 정치권력의 무능이 대다수 민중을 고달프게 하는 오늘, 한국 사회운동이 혁신하고 발전하려면 다양한 노력과 간절함이 모이고 또 모여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그 노정에서 빠져서는 안 될 소중한 분투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