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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Mar 19. 2023

경주 남산의 봄

아파트에 벚꽃이 피어나니

4월이 다가왔는지

토요일 온종일 봄비가 내린다.


물 머금은 꽃잎이 떨어질까

바깥을 바라보기도 하고

하릴없이

거실 컴퓨터와 안방 TV 사이를 들락거린다.


내일은 어디 산행이나 가볼까.

배내봉 간월산을 아내와 올랐던 게

벌써 석 달이 지났구나.


어디가 좋을까.

친구가 말해준 고성의 적석산 거류산으로 향해볼까.

아니야, 겨우내 언 몸을 데우려면

더 아담하고 야트막한 산이 좋을 거야.


SNS에 올려진 산행기를 보다가

아~ 그렇지, 남산(금오산)을 왜 잊고 있었을까.


언제라도 가슴 설레는 경주

곳곳에 석불 석탑 절터 유적이 있으며 화랑들이 심신을 단련했을 서라벌의 명산


역시 아내도 대환영이다.

도시락을 준비할까요.

아니, 내일 일찍 롯데마트 입구에 할머니가 파는 김밥을 사자,

그리고 아침은 휴게소에서 1인분만 사서 나눠 먹고, 배부르면 못 오르니까.


다음날, 계획되고 김밥을 사고 언양휴게소에서 어묵 가락국수를 나눠먹고 삼릉 주차장에 차를 대고 산을 오른다.


삼릉을 지나니, 연한 보랏빛 진달래가 우리를 반겨준다.

선각육존불 석조여래좌상을 지나 능선을 오르니 왕벚꽃이 활짝 핀 상선암이다.


오를수록 진달래 빛깔이 진하면서  

정상 근처는 절정의 진한 보랏빛으로 우릴 유혹한다.


아예 맺지도 못한 초록의 꽃잎, 터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할 봉오리도 보인다.

양지와 응달에 따라 개화가 다르니 자리에 귀천이 있는가 보다.


하지만 빨리 피면 빨리 지고 말겠지.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아니던가,

꽃이 되지 못한 나는 낙화의 슬픔을 알 수 없으리라.


금오산 정상석을 딛고, 길옆 벤치에서 김밥과 믹스커피를 마신 후 용장골로 하산하기로 정했다.


전망이 좋은 경사진 곳으로 내려오면서 삼층석탑 마애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등에서 합장하고 사진도 찍는다.


생육신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했다는 용장골 절터까지 내려온다.


내리막길에만 아내가 사용하는 스틱을 주거니 받거니 하니, 전우애도 생긴다.


계곡을 내려올수록 물소리가 졸졸 촬촬 철철 커지며 작은 폭포를 이룬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봄비에 녹아져 나오나 보다.


우리들 마음의 응어리도 함께 풀어지리라.


용장마을까지 내려와 단단한 아스팔트를  앞뒤로 걸으며 버스를 안 탄 걸 후회한다.

'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할머니는 걸어서 10분이라 했는데, 왜 이렇게 멀까' 투덜거리며 30분을 걸으니 삼릉 주차장에 겨우 닿았다.


차를 돌려, 감포 문무대왕릉으로 가서 흰 갈매기떼와 몽돌에 부서지는 파도, 눈부신 햇살을 느껴본다.

역시 봄바람은 팬더믹도 못 말리는지 해변 상춘객들이 참 많다.


양남의 남가 옥에서 육전이 맛있는 냉면을 먹고, 주상절리를 둘러본 후 울산을 거쳐 부산으로 내달리니 길어진 해는 아직도 중천에 떠 있다.


즐거운 하루가 지나간다.

포근한 봄날, 진달래 핀 아담한 남산을 경쾌하게 오르듯, 우리들 삶도 오늘만 같으면 참 좋겠는데.       2020.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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