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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당 Jan 28. 2024

코인노래방 2

나와 노래방 동지와의 만남이 보통 월 1~2회 정도로 일정하다. 서로 집이 가까워 술과 노래에 대한 애정이 꿈틀거릴 때면 누구나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게 된다.

명륜역 근처 치킨집에서 맥주로 시작하거나, 동래시장 파전 집에서 만날 때가 많다. 이는 우리의 최종 목적인 노래방을 향한 윤활유가 된다.


용의 해 첫 달에 만났다. 찬 날씨에 동태탕에 소주를 마시고 그동안의 신변잡담을 나눈 후 노래방으로 갔다.

왠지 오늘은 연초의 들뜬 기분에 노래가 잘될 것 같다.


지난번 둘의 점수 격차가 너무 압도적으로 큰 기계가 있는 그 코인노래방에는 이제 가지 않게 되었다.


한 번도 친구 점수의 절반을 못 얻었던 그 노래방이 내게 유쾌하지 않았던 건 진심이었다.

하지만 계절은 벌써 두 번이나 바뀌었으며, 좋지 않은 기억을 잊게 하는 명약은 역시 세월이었다.


또 한편으로 내 두 배 이상의 고득점을 받았던 친구가 오히려 민망한 마음으로 가기를 꺼려했던 점도 있었지만, 이 명륜 1번가에 새 코인노래방이 생겨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곳은 2층에 자리하여 창을 열면 밖을 볼 수 있었으며 내부도 깔끔하여 중고생이 많이 왔었다. 가끔 초등생 자녀와 동행하는 가족 단위의 손님도 보였다. 역시 동년배들은 보이질 않았지만 우린 마치 자기 집에 오듯이 즐겁게 드나들 수 있었다.


당연히 새 노래방에서 제일 민감하게 살펴본 게 점수였지만, 여기서 둘의 점수는 대체로 70점 이상으로 무난하게 나왔다.


우리는 늘 5천 원 치 15곡을 나누어 부르곤 했는데, 잘 불렀다고 생각된 노래는 역시 고득점이었고 100점도 서너 곡 전후로 나왔으므로 이곳의 기계는 대체로 공정했다.


어느새 우리의 관심은 오로지 누가 100점을 많이 받는가로 차츰 바뀌어갔으며, 많이 받은 사람이 2차 맥주를 사는 게 일상화되었다.


점수가 더 좋은 친구가 2차를 사게 되는 이 방식은 정말 인간적 방식을 채택한 것이었다!


역사에서 인간이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점수로 우열을 가린 이후부터 인간의 평화와 행복이 깨졌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우리는 이를 극복한 것으로 그날 더 행복한 자가 술을 사는 정의로운 방식을 취하였던 것이다.


추위를 뚫고 들어온 친구의 첫 노래 '낭만에 대하여'가 진한 향수를 풍긴다. 일어서서 창문 밖을 내다보니, '명륜 1번가' 네온 불빛에 나의 옛날이 천천히 어려온다.


 [중3 때 시골에서 전학 온 이래 이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힘들었던 고교시절, 친구집을 돌며 고스톱,

 바둑으로 숨통을 트며 어른이 되어갔고, 정성껏

 라면을 끓여주셨던 엄마들!


 푸르른 스무 살, 가끔 야한 비디오를 틀어주던

 골목길 옛날 다방, 늘 미소가 상큼했던 아가씨!


 직장시절, 함께 야구하며 가수처럼 노래를 잘

 불렀던 선한 친구, 자주 갔던 반지하 실비집!

 천국에서도 술과 노래방이 있는지! 친구여!]


요즘은 서로의 곡을 꿰뚫고 있어서 우리는 같은 가수의 곡을 이어받아서 주로 부르곤 한다.


친구의 '못다 핀 꽃 한 송이'에 이어서  '내일'을 부르니, 화면에 붉고 멋진 노을이 피어오른다.

우리도 저렇게 멋진 석양이 되어 어디로 흘러갈 수 있으려나!  노래 좋아한 엄마가 보고 싶다~


오늘 나는 '떠나가는 배'로 시작해 100점이 세 개, 친구는 '장미 그리고 바람' 등 두 개였다. 의외로 3:2 나의 승리다.


새해 벽두 차디찬 도시의 밤, 마지막 곡으로 친구는 이치현의 '사랑의 슬픔', 나는 김추자의 '눈이 내리네'를 부르고 거리로 나왔다. 마치 함박눈이 펑펑 내릴 것 같다.


간단히 팝콘을 주는 주점에서 병맥주 한 병씩을 마시고 각자 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올해의 노래 기운과 출발이 산뜻하다.

물오른 가객은 못되지만, 얼음 아래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처럼 낭랑하고 고요하고 가볍다.


만물이 변화하듯이, 둘의 노래실력도 절대 강자가 없이 서로 근접하게 됨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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