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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WA Jan 27. 2023

보라카이 사람들은 뛰지 않는다

여유로움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


해가 바뀌기 전 숨 가쁘게 달려왔던 1년간 수고했다는 의미로 쉬어가고자 친언니와 3박 4일 동안의 짧은 보라카이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동남아 여행이 처음이었고, 언니는 형부랑도 여러 번 다녀왔지만 이번에 다녀온 보라카이 여행이 두 자매의 기억 속에 이번 여행이 기억에 오래오래 남을 것 같아서 짧게 느낀 점들을 적어본다.




#보라카이 사람들은 뛰지 않는다.


이번 여행은 자유 패키지로 떠난 여행이라 한국에서부터 같이 동행한 한국분들이 있었는데, 필리핀에 도착한 순간부터 누가 봐도 우리는 한국사람들이었다. 


비단 필리핀 사람들과의 다른 생김새로 구분하여 말하는 게 아닌 "빨리빨리"가 익숙한 나라에서 온 고(高) 효율성에 절여져 버린 민족성에서 바로 보인달까. 칼리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그 어떤 군더더기 시간도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에서 보인달까.


보라카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필리핀 칼리보 공항에 내려서 약 한 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또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사실 말이 선착장이지 우리나라처럼 질서 정연하거나 제대로 된 관계자가 안내해 주는 그런 곳이 아니기 때문에 언니와 나는 까딱하면 우리의 구원줄인 가이드분을 잃어버릴까 이국적인 풍경에 한눈을 팔다가도 얼른 쫓아 뛰어다녔는데 몇 번이나 합류줄로 뛰어 복귀하는 우릴 보고 가이드분이 말씀하셨다.


"뛰지 마세요, 얼마든지 기다려드릴 테니까 뛰지 않으셔도 돼요. 이곳에서 뛰는 분들은 한국인들 밖에 없습니다."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배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여유도 즐겨본 사람이 즐기는 법


보라카이에 도착한 후 자유 일정을 가진 우리는 여유롭게 화이트비치를 걸어 다니며 여유를 즐겨보자 하였지만, 한국에서 그랬듯이 내 앞에 걸어가는 사람의 보폭이 느리면 답답해하며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갔다. 그렇게
 언니와 몇 명의 여유로운 사람들을 숨 가쁘게 앞지르다 보니 문득 가이드 아저씨의 말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뛰는 분들은 한국인들 밖에 없습니다.'


귀여운 보라카이 댕댕이

 

화이트비치의 어느 카페에 잠시 앉아 쉬면서 언니에게 아까 그 말을 곱씹으면서 "여유도 평소에 즐겨본 사람이 즐기는 건가 봐. 우린 급한일도 없는데 대체 왜 이렇게 빠른 걸음으로 다니게 될까."라고 했는데 내 말을 들은 언니도 곰곰이 생각하더니, "사실 한국에서 돈을 펑펑 쓰는 건 쉬운데 시간을 펑펑 쓰는 건 어렵잖아. 지금부터라도 우리도 시간 펑펑 써 재껴 보자."라고 말했다.


그 이후로 언니말처럼 우리는 하루가 48시간인 양 펑펑 써재꼈다. 


보라카이의 최대 번화가인 디몰에서도 우리 앞에서 굼벵이처럼 걸어가는 사람이 있어도 앞질러 가지 않았고 줄 서 있는 맛집에 누군가 새치기를 해도 '어차피 시간 쓰러 왔는데 뭘..' 하면서 여유를 부렸다. 그리고 그렇게 여유를 부리다 보니 주변을 하나하나 눈에 더 찬찬히 담게 되고, 언니와도 쓸데없는 얘기가 절반 이상이었지만 많은 대화를 했다.


덕분에 인생샷도 많이 남김


사실 나는 내가 여행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왕 여행을 왔으면 전부 보고 즐겨야 하기에 시간을 고효율적으로 쪼개서 관광해야 한다는 그 특유의 압박감이 싫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가이드분이 툭 던진 그 말 한마디로 동행자와 합의하에 한국에서는 누려보지 못한 초호화 시간 여유를 누리는 여행을 해보니 정말 내가 여행을 왔구나. 하는 실감과 함께 그 어떤 여행지보다도 재밌고 기억에 많이 남았다.


이제껏 손해 본다는 느낌 때문에 이왕 왔으면 전부 다 봐야지 많이 보는 게 남는 거야!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이 시간에 쫓기는 느낌 자체가 내 손해라는 걸 이번 여행으로 알게 되었다. 


이제는 여행할 때 효율성을 따지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여유 있게 곱씹으며 많이 다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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