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점심을 먹고나면 매일 회사 근처 교보문고에 들르는 요상한 루틴을 가지고 있다. 꼭 책을 읽기 위해서라기보다 어떤 신간이 나왔는지 또는 이벤트 중인 벽에 붙은 사람들의 메모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너무 귀여운 팬시 굿즈들 구경도 한몫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점심을 먹고 책구경을 하는 중에 메이킹북이라는 이름이 달린 마치 막 편집 중인 것 같은 책이 있어 집어 보게 되었다.
이 메이킹북은 설레다 작가님의 신간 <검은 감정>이라는 책이었는데, <자기만의 방>이라는 출판사에서 책을 엮으면서 이 책의 챕터 별 주제부터 index까지 실제로 이 책을 만들면서 느끼고 집중하고자 했던 포인트들을 세세하게 적어놓은 찐.. 메이킹 북이였다. (진짜 신선한 아이디어..)
이 메이킹북은 책을 이루고 있는 전반적인 내용과 더불어 세세한 문장을 쓴 이유 (챕터나 섹션이라는 말 대신 "path"로 나눠 주제를 전환시키는 이유 등)부터 시작해서 작가님의 어떤 고민부터 시작되어 나온 책인지 또 1장과 2 장등의 순서는 왜 이렇게 나누었는지 또 이 책을 만든 출판사의 설명까지도 놓치지 않고 적어놓았다.
특히 그냥 책을 읽는 독자들은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책을 쓰기 전의 작가와 편집자의 생각이나 책을 이루고 있는 문단과 디자인 등, 하나하나 이걸 왜 이렇게 구성했고 의도하여 편집하였는지를 편집자가 직접 메모를 적어 디테일하게 설명해 두었기 때문에 이 메이킹북을 읽는 내내 "책 하나를 만들기 위해선 정말 많은 의도와 고민을 거쳐야하는구나." 하는 어쩌면 당연하지만 놓치고 있던 생각이 들었다.
뭔가 <악마는 프라다 읽는다>에서 런웨이 잡지가 완성되기 전 편집장인 미란다가 보고 있는 가제본을 보고 있는 느낌도 들고..ㅋㅋㅋ
잡지가 나오기 전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가제본
책을 즐겨 읽지만 이제껏 책의 전체적인 내용에만 오롯이 집중하기 바빴기 때문에 책을 이루고 있는 세밀한 구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 내가 스무즈하게 책에 집중하게 만들기 위해정말 많은 고뇌와공수가 들어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많은 편집을 거쳐 독자를 작가가 의도한 방향대로 보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제는 어떤 책이든 index를 읽는 시점부터 작가와 편집자의 의도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브런치에 짧은 글을 쓰면서 나도 매번 문장 하나를 적어내는 것도 참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걸 몸소 느끼고 있지만, 더욱이 책에 쓰이는 문장과 구성은 뭐 하나 그냥 써진게 없다는걸 다시 한번 체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때까지 읽어온 많은 책들은 내가 작가가 의도한 대로 내용을 이해한 게 아닌, "그냥" 읽어내려가는 게 많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그나저나 왜 깨끗한 새 책 보다 저 가제본 같은 책이 더 갖고 싶어 지는지 모르겠네..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