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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Nov 21. 2022

꽃, 영화, 책, 와인으로 만나는 민들레

지난주 금요일(11.11) 아미쉬 컨트리(아미쉬 :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며 사는 침례교파 공동체. 미국의 펜실베니아주, 오하이오주, 인디애나주에 주로 거주) 에 갔을 때 꼭 사려고 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민들레 와인. 아미쉬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주로 농사를 짓는데, 아미쉬 컨트리에서 만든 식품은 미국인들도 믿고 먹을 정도로 신뢰한다.


수 년 전 아미쉬 컨트리에 갔을 때 민들레 와인을 샀고, 음식과 함께 음용을 하고 나서는 잊고 있었다. 그런데 올 해 초 영화 <북 샵>을 보는데 영화에 래이 브래드버리라는 작가의 소설 ⟪민들레 와인⟫이 등장하는 것이다. 그의 작품이 영화에 여러 편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작가인지 궁금했다. 





남자 주인공 빌 나이는 래이 브래드버리의 작품을 좋아하는지 그의 책을 계속 읽고 있었다. ⟪화씨 451도⟫, ⟪화성연대기⟫ 등 여러 편이 영화에 등장했다. 나는 래이 브래드버리란 작가를 몰랐다. 영화에서 그가 책방 주인 플로렌스에게 래이 브래드버리의 책을 주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래이의 책 ⟪민들레 와인⟫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는 세상을 떴다. 마을의 권력자 여인 때문에 고난을 겪고 있는 그녀를 보호해 주려했던 그를 그리워하며 플로렌스는 뒤늦게 도착한 책을 안고 오열한다. 그래서 나도 그 책이 궁금했다. 전자서점을 검색해 보니 레이의 책이 한국에도 여러 권 번역이 되어 있었다. 남편에게 혹시 이런 작가 이름 들어봤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대단히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명이라고 했다. 고등학생 시절 ⟪화씨 451도⟫, ⟪일러스트레이티드 맨⟫, ⟪민들레 와인⟫,  ⟪화성연대기⟫, 그리고 그의 단편소설들을 읽었다고 했다. 집에 책도 있을 것이라고 찾아보라고 하였다.  


나는 영화에 소개 되었던 작품 중 ⟪민들레 와인⟫을 가장 먼저 읽었다. S.F. 쟝르 소설이 시와 같이 아름다울 수 있다니 놀라웠다. 작가에게 매료당해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그의 작품을 모두 읽었다. 그리고 다시 아미쉬 컨트리에 가면 꼭 민들레 와인을 사서 다시 시음해 보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내 곧 한국으로 돌아갈 조카에게 보여줄 겸 지난 주 아미쉬 컨트리에 갔을 때 그곳에서 주조하여 파는 민들레 와인을 여러 병 사서 돌아왔다.


며칠 전 남편과 첫 병을 땄다. 남편도 나도 드라이 와인을 좋아하지만 민들레 와인은 달콤해도 거북하지 않았다. 주조법을 보니 순수 사탕수수 당과 순수 꿀을 적당량 탔다고 레이블에 적혀 있었다. 하긴 민들레 꽃만으로는 일정 수준의 알코올을 만들어내기에는 당이 턱없이 부족할테니 당분을 추가해야 할 것이다. 맛도 혀를 희롱하지만 달콤한 향도 기분을 좋게 했다.


민들레 와인을 마시면서 올 봄과 초여름에 찍어두었던 민들레꽃 사진과 민들레 와인, 그리고 래이 브래드버리의 소설 ⟪민들레 와인⟫을 함께 꺼내 보았다.





래이 브래드버리가 책에서 말한 것 처럼 민들레 와인 한병에는 온 계절이 담겨있다. 여름에 꽃을 피우기 위해 지난해 부터 가을과 겨울의 정기를 모아 봄에 새싹을 피우고, 여름에 꽃을 피워 그 꽃이 와인으로 숙성되는 것이니 와인 한 병에는 사계절의 정기가 모두 담겨있는 것이다. 초여름에 딴 수많은 민들레꽃이 가을과 초겨울을 거치며 와인으로 숙성이 되고 나면 마침내 혹한의 겨울에 우리의 몸 속으로 흘러들어 지나간 봄과 여름이 얼마나 찬란했는지 몸과 마음으로 직접느끼며 환희하게 될 것이다.


래이 브래드버리의 ⟪민들레 와인⟫에 언급된 와인 관련 문장만 모아 보았다.



챕터 3 

민들레 와인. 이렇게 말하는 순간 곧 여름이 되었다. 와인은 병에 가둔 여름이었다. 더글러스는 자신이 살아 있음을 절감했다. 세상을 보고 만지고 싶었다. 그래서 새로운 지식 중 일부, 와인을 만든 이 특별한 날을 밀봉해 따로 떼어 두었다. 

예측하지 못한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여름이 와인병에서 살아날 것이다. 그는 이 병들을 한데 모아 이름을 붙여 두고 싶었다. 그러면 언제든 해 질 녘에 살금살금 지하로 내려와 만질 수 있을 것이다.

겨울날 민들레 와인 속을 자세히 보라. 풀잎 위에 눈은 녹고, 나무에는 다시 새가 찾아오고, 나뭇잎이 돋아나고, 바람결에 수많은 나비가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는 꽃이 피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들레 와인을 통해 회색 하늘이 파랗게 보일 것이다.

입에 유리잔을 가져다 대고 여름을 기울인 순간 혈관 속에서 계절이 바뀌리라.

이 맑은 물만 부으면 완성이었다. 이것은 먼 곳의 호수와 새벽 들판의 이슬이 모여 하늘로 올라가, 1500킬로미터나 움직인 다음 바람에 씻기고 고압으로 충전된 후 차가운 대기 중에서 응축된 물이었다. 비가 되어 떨어진 이 맑은 물속에는 하늘이 모여 있었다. 동풍과 서풍과 북풍과 남풍에서 뭔가를 가져와 물이 비가 되고 그 비가 이렇게 의식을 치른 후 와인이 된 것이리라. .... 강물과 계곡물 맛이 나는 와인이 될 것이다. 

다른 시간에서 온 약, 햇볕이 쨍쨍 쬐는 나른한 8월 오후의 향기, 얼음 마차가 벽돌 길을 지나가는 희미한 소리, 밀려오는 유성의 불꽃, 잔디 깎는 기계가 개미 나라 사이를 움직이면 거기서 솟구치는 잔디, 이 모든 것이 한 잔의 와인 안에 담길 것이다. 


챕터 40

할아버지가 꽃들을 짓누르고 있는 사이에, 움직이지 않고 병에 담겨 빛나는 여름, 즉 민들레 와인병을 바라보았다. ... 한 병, 한 병이 살아 있는 여름날이었다. ... "형, 이거야말로 6월, 7월, 8월을 저장하는 멋진 방법이지. 정말 실용적인 방법이야..... 이런 식으로 겨울까지 여름을 1, 2분씩이라도 되살려 보는 거란다. 


- ⟪민들레 와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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