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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Dec 20. 2022

핀트가 어긋났어!

우리 부부의 대화법


남편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리둥절해질 때가 있다. 일상적 질문에 일상적 대답을 하는데도 우리 둘은 서로의 의도를 몰라 같은 말을 수차례 반복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슬슬 답답해져 짜증이 올라오려고 한다. 그럴 때는 대화를 멈추고 서로의 질문의 의도를 묻는다. 그러면 남편은 내 질문은 아주 심플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왜 그 심플한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느냐고 이상하다고 한다. 오늘 저녁에도 똑같은 일을 겪었다.


오늘 저녁 우리는 오믈릿을 해서 먹었다. 남편이 매운 것을 좋아하다 보니 요리 중에 고춧가루를 좀 뿌린다는 것이 양이 좀 많았던가 보다. 먹다보니 본인이 생각해도 좀 매웠던 모양이다. 나에게도 매웠다. 나는 절반 조금 넘게 먹고 남겼고, 남편도 절반쯤 남겼다. 화끈거리는 속을 달래려고 그릭 요거트에 라즈베리를 섞어 후식 겸 먹었다. 남편이 남은 음식을 걱정하길래, 내일 점심에 밥을 지어서 오믈릿을 반찬으로 먹으면 매운 것이 중화되어서 괜찮을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참고로 남편은 하루 일식, 저녁만 먹는다. 그러자 이어 남편이 나에게 질문을 했다.


남편 : 남은 음식이 내일 저녁 거리로 충분하겠어?

나 : 오늘 남은 음식으로 내일 한끼 더 먹고 싶어?

남편 : 아니, 이 음식으로 내일 저녁 거리가 되겠냐고?

나 : 당신이 내일 저녁으로 이걸 먹고 싶으면 내가 내일 점심에 이 오믈렛 안 먹고 남겨놓을께.

남편 : 아니, 내 질문은 그게 아니고 저녁 거리로 충분하겠냐고. 내 질문 아주 심플한데 왜 엉뚱한 소리를 해.

나 : .......

     당신의 질문 의도가 뭐야?

남편 : 당신은 내 질문에 충분하다 안하다 둘 중의 하나로 대답하면 되는데 왜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해?

나 : 잠깐, 대화 멈춰.


나 : 나는 당신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서 이런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질문 의도까지 생각해서 당신의 의중을 묻고 있는거야. 내가 만약 내일 점심으로 남은 오믈렛을 먹는다면 나머지 오믈렛 양으로는 우리 두사람의 저녁 거리로 먹기에는 당연히 부족하지. 그런데 당신이 묻는 질문을 들으면서 나는 내일 저녁에 당신이 요리하기가 싫어서 오늘 남은 것으로 내일 저녁까지 먹고 싶어서 묻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당신이 내일 저녁 요리하기 싫다면 내가 내일 점심에 오믈렛을 먹지 않고 남겨두려는 생각으로 당신에게 재차 질문을 한거야.

남편 : 나는 그런 의중을 가지고 질문한 건 아니었어. 정말 심플하게 내일 저녁 거리로 충분하겠는지만 물어본거야.

나 : 내가 점심에 먹는다면 저녁 거리로 부족하고, 내가 안먹고 그대로 남겨 놓는다면 우리 두 사람 저녁거리로 충분하지.


남은 음식의 양을 서로 보았으니 내가 내일 점심으로 일부를 먹으면 두 사람의 저녁거리로는 충분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남편이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물어본 의도가 다른 데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가령 저녁하기가 싫어서 이 음식을 내일 저녁에 먹을 것으로 남겨두고 싶어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정말로 몰라서 물어본 것이었나보다.


남편과 종종 겪는 일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남들이 묻는 질문에 대해 2단계나 3단계 정도 앞서서 질문의 의도를 추측하여 상대의 질문에 대해 바로 대답을 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재차 질문을 던지는 버릇이 있다. 오늘 저녁 남편과 한 대화에서 처럼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간단해서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 질문을 상대방이 나에게 던질 때는 나는 분명 그 질문에 깊은 의도가 있다고 짐작하고 그 의도를 생각하느라 어리둥절해지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나의 이런 버릇에 대해서 설명했다. '나는 상대방과 이야기할 때 항상 질문의 의도를 먼저 생각해. 당신은 바로 나올 대답을 기대하고 질문을 하고, 그 대답은 실제로 아주 쉬워. 대답은 yes, 또는 no로 대답할 수 있어. 질문에 대해 액면대로 대답하면 아주 쉽거든. 그런데 나는 그 대답이 너무 뻔해서 다른 의도가 있다는 생각을 해. 그래서 논리적 순서를 뛰어넘을 때가 많아. 그런 단순한 질문을 왜 할까를 생각하며 나는 대답 대신 다음 단계의 질문을 당신에게 던지는거야.'


예를 들어 당신이 나에게

1. "내일 저녁거리로 충분해?" 라고 물었을 때

2. 나는 '충분해' 또는 '부족해'라고 대답할 수 있었어. 그런데 나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지.

3. 내가 점심에 일부를 먹는다면 우리 둘의 저녁 거리로는 당연히 충분하지 않거든. 그 사실은 당신도 알 것이라 생각했어.

4. 그런데 당신이 내일 저녁 거리로 충분하냐고 물으니, 나는 당신이 내일 저녁이 하기 싫어서 저녁으로 이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줄 알았거든. 그래서 내가 당신에게 이걸 한끼 더 먹고 싶냐고 물은거야.


우리의 대화는 1번과 2번에서 끝날 수 있었어.

그런데 나는 이런 논리적 순서에서 몇 단계를 스킵한거야.

즉,

1. "내일 저녁거리로 충분해?"라고 당신이 물었을때

2. 내가 '오늘 남은 음식으로 내일 저녁에 한끼 더 먹고 싶어?'라고 질문을 했어.

3. 당신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내가 점심에 양껏 먹을 것이고

    "응"이라고 대답하면 내가 점심에 다른 것을 먹고 오믈렛은 남겨 놓겠지.

위의 논리적 순서에서 나는 2번과 3번을 건너뛰고 당신에게 곧바로 4번을 물어본거야.


이런 대화 끝에 나는 더 비약적인 말을 했다. '나는 서양의 논리적 대화법이 너무 지루해.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를 해가며 순서를 밟아가야 하잖아. 이렇게 논리적 순서를 따라 대화하는 것은 서로의 생각을 분명히 확인하는데는 좋은 점이 있지만 대화는 재미가 없어. 대화의 흥도 떨어져. 그래서 나는 소크라테스 스타일의 대화법이 재미없고 지루해. 서양사람들은 그것이 대단히 훌륭한 대화법이라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질문과 대답이 단편적이고 직선적이야. 직관이 뛰어들 틈을 주지 않아. 상상을 할 여지가 없어.


그런데 동양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동양 사람은 직관적 대화 스타일인 것 같아. 질문을 가만 들어보면 논리적 맥락이 잘 맞지 않아. 대화 중 논리적 순서를 밟지 않고 몇 단계씩 건너 뛰면서 대화를 하거든. 선문답의 경우에는 논리적 단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어. 완전 동문서답 같아. 아예 말문이 막혀버리지. 일상대화에서는 그 정도는 아니야. 그래도 상대방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려고 이야기에 집중해. 그리고 그날의 대화가 다 끝날 때쯤 되어서 한꺼번에 상대방과 한 대화의 맥락을 모두 이해하게 돼. 그래서 대화를 하는 과정이 아주 짜릿해. 지루할 틈이 없어.'


이것은 동양인과 서양인의 사고의 차이에 기인하는지, 아니면 여성과 남성의 사고 구조의 차이에 기인하는지는 모르지만 남편과 대화를 하다보면 자주 대화에 버퍼링이 걸린다. 남편은 간단한 질문에 쉽게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답답해 하고, 나는 질문이 너무 간단해서 숨겨진 의도를 찾느라 혼란스럽다. 단계를 밟아 질문 1에 대답 1을 하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질문 2에 대답 2로 하고, 다시 질문 3에 대답 3으로 오고가는 대화는 맥빠지고 재미가 없다. 이렇게 직선적으로 이어지는 대화는 다 끝나고 나면 김빠진 콜라 같다. 그런데 질문 1에 대답 3을 하기도 하고, 질문 2에 대답 1을 하기도 하고 이렇게 엇박으로 오고가는 질문 속에서는 온갖 상상력과 생각이 피어올라 동문서답을 하는 것 같아도 대화를 다 한 다음에는 여운이 길게 남는다.


나는 남편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내가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냥 다른 것이다. 다르기 때문에 대화를 멈추고 되짚어가며 서로의 의도를 알아가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된다. 이런 대화를 통해 우리가 다름에도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대화 끝에는 항상 "그래도 사랑하지?" 라며 웃으며 끝이 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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