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 재 Jan 30. 2023

[주역과 신화] 뽕나무에 몸을 묶으니...


주역을 공부하다 보니 신화와 통하는 내용이 워낙 많다. 앞으로 주역과 신화를 연결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그 첫번째로 나무와 관련한 이야기부터 해보겠다.


10여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이 끝나자 오뒷세우스는 마침내 귀향길에 올랐다. 현재의 터키 서북쪽에 있던 트로이에서 에게해를 가로 질러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마주하고 있는 아드리아해를 거슬러 올라가 그리스의 서쪽 해안에 있는 섬나라 이타카까지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었다. 요즘처럼 쾌속선이 있는 시대라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리가 아니지만, 뱃사람들이 노를 저어 가야 하는 거리이니 꽤 장시간이 필요했을 터이다. 그런데 뱃길로 돌아와야할 오뒷세우스는 하나의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정박했던 섬에 살고 있던 키클롭스에게 해를 입히는 바람에 온갖 고초를 자초하고 말았다. 하필 키클롭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었다. 약삭빠르고 잔꽤가 이만 저만이 아닌 오뒷세우스지만 포세이돈의 보호를 받아야할 뱃길에서 신의 복수를 견뎌야 했으니 고난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설상가상 배가 지나는 뱃길 여기저기에 그를 위협하거나 유혹하는 것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John William Waterhouse, <Ulysses and the Sirens> , 1891, oil on canvas, 100.6 cm × 202.0 cm

                          National Gallery of Victoria, Melbourne, Australia 소장




마침내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을 홀려 배를 난파케 하여 죽게 한다는 세이렌의 거처를 지나야 할 때였다. 꽤돌이이자 영웅 중 최초로 머리(이성)를 쓸 줄 알았던, 그래서 신들의 미움을 자초했던 그답게, 오뒷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를 듣되 살아남을 수 있는 꽤를 내었다. 선원들의 귀는 밀랍으로 막아 세이렌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해놓고 자신의 몸은 배의 마스트에 꽁꽁 묶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내가 아무리 고래고래 소리를 치면서 풀어달라고 몸부림을 쳐도 절대 풀어주지 말라는 당부까지 부하들에게 해놓았다. 


마침내 세이렌이 사는 지역에 들어섰다. 세이렌의 노랫 소리가 들려왔다. 그 노래에 현혹된 오뒷세우스는 묶은 끈을 풀어달라고 요동을 쳤다. 그러나 세이렌의 소리 뿐 아니라 오뒷세우스의 소리도 듣지 못하는 부하들은 꿈쩍도 않고 노만 저었다. 덕분에 오뒷세우스와 부하들은 무사히 그 지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세이렌의 마법은 오뒷세우스로 인해 풀렸다. 사람을 유혹하여 죽게하는 세이렌의 마법은 앞으로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었다. 이제 그들은 존재의 가치를 잃고 죽어야 했다. 


이에 대해 프란츠 카프카 <세이렌의 침묵>에서 세이렌은 오뒷세우스의 꽤를 간파하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세이렌의 노래는 인간의 심장 깊숙히 까지 가서 박히는 노래이기 때문에 밀랍으로 귀를 막았다고 하여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고. 세이렌은 오히려 그의 결단성을 보고 사라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신화와 관련하여서는 세이렌 입장에서 이 스토리를 여성학적으로 해석하는 측도 있지만 나는 이 이야기의 이야기 그대로를 사용할 것이다.  


이상이 오뒷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벗어나게 된 대강의 스토리이다. 신화에는 유혹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헤라클레스에게도 비슷한 스토리가 있다. 젊은 시절 12고난을 하나씩 해결하며  전 세계를 방랑하던 때였다. 어느 날 하나의 고난을 해결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아름다운 두 여인을 만난다. 두 여인은 헤라클레스를 유혹했다. 한 여인은 온갖 보화와 권력, 아름다운 여인을 주어 세상에서 맛 볼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을 주겠다고 했고, 다른 한 여인은 너의 삶은 참으로 고될 것이나 영원히 남을 명성을 주겠다고 했다. 근육질에 힘만 쓸 줄 아는 헤라클레스라 무식하다 생각하기 쉽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후자였다. 그의 삶은 내내 견디기 힘든 가시밭길이었지만 육신의 죽음 이후 하늘의 신이 되었다. 그의 명성은 영원히 남았다. 그리스 신화의 영향을 받은 후대의 황제들 중에서는 헤라클레스를 자신의 영웅으로 받든 사람들이 많았다. 


여기서 관심을 동양으로 돌려 보자. 주역은 천도를 자각한 성인이 우리에게 세상의 진리를 가르쳐 주며 그 가르침(도)을 실천하는 군자로서의 삶을 살라는 내용이다. 즉 소인의 도를 따르지 말고 성인의 도를 따라 살며 천인합일의 삶을 살라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해도 성인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못할 것 같으면 억지로라도 자기를 성인의 가르침에다 묶어 놓으라고 말한다. 또는 소인지도에 빠져 있는 소인들은 잡아다가 성인지도에 묶으라고도 한다. 묶는다는 것은 때론 형벌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묶어 놓는 곳이 나무로 만든 형틀이거나 뽕나무로 표현되어 있다. 나무는 곧 하늘의 도를 상징하는 상징물이자 동시에 비단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뽕나무가 가지고 있던 가치도 이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뽕나무



동서양 모두 오랫동안 나무 숭배 사상이 있었다고 하더니 주역에도 인류의 수목숭배문화가 바탕에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중국 신화에서 나무는 하늘과 땅을 연결해 주는 통로로 여겨졌다. 나무는 천도, 즉 하늘의 도와 성인의 도를 상징하는 매개물로 자주 등장한다. 오뒷세우스가 자기의 몸을 배의 마스트에 묶어놓으라고 한 것도 중도를 벗어나 소인지도에 빠질 것을 대비해 미리 조처를 취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동일한 가르침을 각자의 문화권에 맞게 스토리텔링한 예라고 하겠다.



작가의 이전글 "오케스트라"는 교향악단이 아니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