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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Dec 13. 2022

"오케스트라"는 교향악단이 아니야!

오케스트라의 원래 의미

종종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으러 음악당에 간다. 오케스트라단원들이 교향곡을 연주하기도 하고, 때론 협주곡을 연주하기도 한다. 무대 위의 주인공은 단연코 연주를 하는 연주자들이다. 내가 사는 오하이오주의 애크론에도 시립 교향악단이 있고, 1시간 거리의 북쪽에 있는 클리블랜드에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가 있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는 미국 내에서도 손에 꼽는 훌륭한 오케스트라단이다. 


잠깐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그린 회화작품을 보자. 에드가 드가가 그린 아래의 그림을 보면 오케스트라가 발레공연을 위해서 연주를 하고 있다. 무대 위의 주인공은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아니다. 


<Musicians in the Orchestra>, 1872, oil on canvas
The Orchestra of the Opera, 1870, Musée d'Orsay



현대의 발레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프랑스 파리의 발레단이 공연하는 아래의 장면을 보면 무대 위에는 발레단원들의 공연이 열리고 있고, 무대 바로 아래에 둥그스름한 장소에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Le ballet de l'Opéra de Paris à Montréal en octobre

(사진출처: https://www.lapresse.ca/arts/spectacles-et-theatre/danse/201403/19/01-4749323-le-ballet-de-lopera-de-paris-a-montreal-en-octobre.php )


Gala, Défilé du Ballet, Palais Garnier © Agathe Poupeney / OnP

(사진출처: https://www.operadeparis.fr/actualites/resrvez-gala-ouverture)




발레 공연 뿐 아니라 오페라 공연이 열릴 때도 오케스트라는 무대 바로 아래에서 오페라를 위해 연주를 한다. 유럽에서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일반적이기 보다는 오페라공연에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라고 한다. 광주시향의 홍석원 지휘자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지금도 유럽에는 오페라단에 소속된 오케스트라가 더 보편적이라 지휘자로 취업하기 위해서는 오페라 공연을 위한 지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홍 지휘자도 오페라 공연 지휘를 5년간 하다가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연주 그 자체가 더 우선적이라고 하는데, 당연히 오페라는 우리의 보편적 문화가 아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위에서 나는 "오케스트라 단원"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즉 "관현악을 연주하는 단체", 또는 "관현악단"을 의미한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원래 의미는 그것이 아니었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에서 비극 공연이 열릴 때 합창단이 자리하던 원형 무대를 오케스트라(Orkhestra)라고 했다. 즉 오케스트라의 원래 의미는 관현악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합창단이 합창을 하던 원형 무대를 의미했다


고대 그리스의 원형극장 사진을 보자. (다음의 글은 서울대 김헌 교수의 강의를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예전 그리스 비극을 읽을 때 비극의 형태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읽어서 궁금한 것이 많았다. 원형 극장의 구조와 비극 공연의 구조, 비극 공연의 의미를 알고 읽었더라면 비극이 훨씬 생생하게 다가왔을 것 같다. 그때의 궁금증이 있어서 그랬는지 김헌 교수의 강의가 나에겐 대단히 유익했다. 참고 사이트는 아래에)


에피다우로스에 있는 고대 극장의 모습 (View of the ancient theatre at Epidauru)
디오니소스 극장과 성소의 모습 (View of the Theatre and Sanctuary of Dionysus)



원형 극장은 3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금은 둥근형태의 오케스트라(원형무대)와 객석만 남아있는 유적지가 대부분이라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있다. 오케스트라 앞에는 "Skene"라 부르는 무대가 있었다. Skene에서 영어의 "Scene"이란 단어가 유래했다. 지금은 "영화의 장면"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원래는 무대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기왕 용어의 유래를 알아보는 참에 객석은 무엇이라 불렀는지도 살펴보자. 객석은 "Theatron"이라 불렀다. 이 용어에서 극장을 의미하는 "theater"란 단어가 나왔다. Theatron의 의미는 "탐구하고 관찰하듯 유심히 바라보는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였다. 즉 무대위에서 공연되는 비극 또는 희극을 보면서 관객들은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깊게 의미를 생각하며 공연을 보면서 무대의 주인공을 통해 나를 되돌아 보고 나의 죄와 잘못을 정화(카타르시스)하는데 의미가 있었다.  


예술가가 그린 디오니소스 극장 (Artist's impression of the Theatre of Dionysus)
Map of the Theatre as it would have been in the late 4th century BC.

From W. Dörpfeld, E. Reisch, Das griechische Theater, Athen, 1896.




그럼 비극과 희극 공연은 언제 열렸을까? 공연은 겨울 농한기에 개최되던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공연되었다. 디오니소스신은 포도주의 신이자 농사의 풍요를 관장하는 신이다. 새해의 농사를 앞두고 당연히 풍요를 기원하는 것이 농업으로 먹고 살던 시대의 최고의 염원이 아니겠는가. 그리스는 땅이 대단히 척박하다. 이 땅에서 재배가 가능한 작물이 포도와 올리브이다. 그들은 이 작물들을 이용하여 포도주와 올리브유를 생산하여 주변 나라에 비싸게 팔았다. 그리고 비옥한 이집트와 에게해 서쪽의 소아시아로 부터는 농작물을 싸게 사다가 먹었다. 이런 상황이니 그들에게 포도의 풍요를 가져다 주실 디오니소스신 만큼 중요한 신이 또 있었겠는가? 또한 가장 큰 디오니소스 제전이 열리던 곳이 아테네였다. 아테네는 바로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폴리스였고, 아테나 여신은 아테네인들에게 올리브를 선사한 여신이다. 올리브와 포도주가 얼마나 그리스인들에게 중요한 농작물이었는지 아테네가 주력으로 모시는 신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아테네의 가장 높은 아크로폴리스에는 아테나 여신을 모시는 파르테논 신전이 있고,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오른쪽 아래에 바로 디오니소스 제전이 열리던 극장이 있는 것을 보면 아테네에서 이 두 작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 


Map of ancient Athens showing the Acropolis in middle, the Agora to the northwest, and the city wall



그럼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왜 비극 공연이 열렸을까? 희극도 공연이 되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비극이 희극보다 48년 앞서 열렸다.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공연되던 비극은 원래 디오니소스 신께 염소를 제물로 바치며 풍요를 기원하던 합창에서 기원했다. 제사장이 디오니소스 신전의 둥근 성소 가운데에 있는 제단에서 염소를 제물로 바치면, 주변에는 합창단이 서서 제의의 진행에 따라 합창을 했다. 염소는 생식력이 탁월한 동물인데 풍요를 기원하며 풍요의 신 디오니소스신께 제물로 바치기에 이 보다 더 좋은 동물은 없었을 것이다. 디오니소스 신을 따르는 사티로스 라는 정령도 반인반염소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숫염소를 바치며 부르는 노래" 를 "Tragoidia" 라고 했는데, 여기서 비극이란 의미의 "tragedy"가 유래했다. 즉 비극은 슬픈 극이란 의미가 아니라 종교적 합창을 의미하던 단어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동물을 신께 제물로 바치는 의식은 점차 사라지고 비극 공연으로 대체되었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원형무대 오케스트라 안에도 신께 제물을 올리던 장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오케스트라의 한가운데에 제단이 있었다. 


오케스트라의 한가운데에 있는 제단



비극 공연은 3일에 걸쳐 열렸다. 비극 시인 3명의 작품이 3일간 열렸다. 각 시인은 4편의 작품을 써서 하루에 한 시인의 작품이 모두 공연이 되었다. 그렇게 3일간 총 12편이 공연이 되었다. 공연은 우열이 가려져 1등을 한 시인은 대단한 명예를 누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스퀼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는 이 비극 공연에서 1등을 여러 번씩 한 시인들이다. 


그렇다면 비극은 어떤 이유로 공연이 되었을까? 디오니소스 제전은 새해의 풍요를 기원하던 종교의식이었다. 그런데 종교의식을 치르면서 마음에 사악함이 있어서는 안되지 않겠는가? 비극공연은 바로 사람들이 각자의 마음 속 잘못과 죄를 먼저 정화하여 신께 복을 빌며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힘차게 시작하겠다는 결심으로 이끌기 위해 치루어지던 종교의례였다. 


비극은 따라서 공연을 보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각성을 유도해야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비극작품이 많지는 않지만 오이디푸스와 같은 비극적 인물을 떠올리면서 생각해 보자. 그는 아버지 왕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이라는 무서운 신탁을 받고 태어났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죽이라고 했지만 명을 받은 신하는 차마 그를 죽이지 못하고 들판에 버렸다. 그리고 그 아이를 주운 이웃 왕이 그를 아들로 잘 키웠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모두 알 것이다. 


오이디푸스는 자기의 운명을 알고 나서 최선을 다해 자기의 운명을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코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런 오이디푸스를 바라보는 관객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오이디푸스는 결국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버리고 고난의 길을 떠난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 다가왔을 때 자기의 삶을 긍정하며 초탈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 순간 그는 자기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사람의 운명에 대해 생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의도는 아니었지만 인간이라면 저질러서는 안되는 패륜을 저지른 오이디푸스. 그러나 자기의 잘못을 아는 순간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기구한 자기 운명을 탓하지도 않고 고통으로 가득한 미래를 받아들였다. 


관객들은 오이디푸스에게 내려진 가혹한 운명을 보며 그가 바로 신 앞에 바쳐진 제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자기의 운명 뿐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관객들의 죄까지도 모두 지고 신께 제물로 바쳐진 존재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사람들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존재로서 십자가형을 받으신 것과 같은 의미이다. 오이디푸스의 충격적인 운명을 보면서 관객들은 전률했을 것이다. 내 삶은 저 보다는 낫다는 안도감도 들었을 것이고, 끔찍한 운명 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면서 오만과 자만심도 내려놓았을 것이다. 그리고 신의 복을 받기 위해 선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관객은 마음 속 깊이 큰 울림을 받으며 마음의 정화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극장을 나설 때는 새로운 마음과 삶의 자세로 새해를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에 대해 알아보다가 고대 그리스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오케스트라가 관현악단이라는 의미로 사용이 되지만 원래는 합창단이 합창을 하던 원형무대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미가 크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극장의 전반적인 형태를 보면 비극과 희극이 펼쳐지던 고대 그리스의 원형 극장이나 현대의 극장이나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다. 단, 무대에서 오페라나 발레가 공연이 될 때는 오케스트라단원이 고대에는 오케스트라(원형무대)라 불렀던 곳에 앉아 연주를 하지만 현대에는 음악 연주회 자체가 하나의 쟝르로 독립이 된 이상 음악회에서는 단연코 오케스트라 단원이 주인공이라는 차이점이 있다 하겠다. 


*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 김헌 교수 강의 사이트 : 

   그리스 비극 https://www.youtube.com/watch?v=wvAFwDXhwxQ 

   그리스 희극 https://www.youtube.com/watch?v=kal2pjy533M&t=634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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