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에 대한 텍스트
글을 쓰기 위해 자주 인터넷 서칭을 한다. 필요한 자료를 찾기 위해 처음에는 가벼운 자료 부터 서칭을 하지만 점차 전문적인 사이트로 옮겨간다. 더 깊이, 자세하게 알고 싶으면 관련 서적을 검색한다. 외국 서적도 찾아보고 국내 서적도 찾아본다. 그리곤 놀라서 잠시 손을 놓는다. 어떻게 이 상황을 받아들여야할지 난감하여...
요즘 나는 다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다. 난감함을 넘어서서 '이래선 안되는데!' 하는 우려마져 든다. 요즘 쓰고 있는 글에서 마크 로스코의 예술세계와 관련하여 언급해야할 부분이 있어서 자료를 찾아보는 중이다. 외국 자료는 꽤 많지만 시간상 모든 자료를 천천히 살펴볼 시간은 없어서 국내 번역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국내에 마크 로스코에 대한 번역서가 없다. 그동안 몇 권 번역서가 있었는데 모두 절판이 되어 구할 수가 없다. 하물며 로스코가 자기 자신의 예술세계에 대해서 쓴 글을 번역한 책 조차 절판이 되어 구할 수가 없다. 그에 대해 쓴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은 다수 있긴 하지만 일반인이 논문을 다운로드하여 읽기에는 거쳐야할 장벽이 있어서 책에 비해 접근성이 좋지 못하다. 학문의 저변이 넓어지려면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저작도 많아야 하고, 적어도 한 분야의 고전이라 할 책들은 번역서도 제대로 나와 있어야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마크 로스코에 대한 단독 전시도 열린 적이 있고, 해외 작품들이 국내에서 전시될 때 마크 로스코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던 분위기를 생각하면 이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워낙 인기있는 화가라 그에 대한 책이 많이 나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인기만큼 그에 대한 책도 많이 팔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 내가 살 수 있는 책이 아무 것도 없다. 출판사도 어쩔 수 없이 팔리는 책을 만들 수 밖에 없다. 나와 있던 책 조차 절판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그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는 말이다.
나를 포함해서 사람들은 무얼 보고 그를 좋아했던 것인지, 그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고 좋아한다고 말해 왔던 것일까? 하도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대단한 작가라 우리는 그에 대해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해 왔던 것일까? 나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반성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명성에 편승해 있을 뿐 그와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알려고는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이런 경험을 종종한다. 한 학문 분야의 가장 중요한 텍스트 조차 제대로 번역이 되어 있지 않다. 학문의 저변이 그만큼 허약하다는 의미이다. 미술사 공부를 시작한 초창기, 르네상스 시대를 공부하며 나는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을 읽어보려고 했다. 책을 검색하니 다행히 번역본이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미 절판이 된 책이었다. 나는 혹시나 출판사가 재고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직원의 답변에 놀라고 말았다. "수년간 창고에 쟁여 놓았던 책을 며칠 전 다 버렸어요. 그래서 재고가 없어요." 너무 기가 막혀서 '왜요? 미술사 전공자들이라도 그 책을 사볼 것 같은데, 그렇게 사보는 사람이 없었어요?' 하고 물었다. 나는 출판사 직원의 풀죽은 답변을 들으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나서 몇 년의 세월이 흐른 2018년 국내의 한 유명 출판사가 이 책을 다시 출판했다. 제본도 멋지게 6권 세트로 재출판이 되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책을 샀고, 그 인증샷을 각자의 SNS에 올려 놓은 것을 많이 보았다.
나는 출판된지 몇 달 후에 사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았다. 책을 산 사람은 많은데 책을 다 읽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왜냐하면 이 책을 다 읽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에 대한 비판이 분명히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름 있는 출판사가 다시 출판했다고 해서 나는 기대가 컸다. 그런데 1950년대 중반 부터 20여년에 걸쳐 번역한 이근배 선생님의 번역을 전혀 손보지 않고 그대로 출판한 것 같았다. 책의 후기에 보니 조금 수정을 했지만 충분치 않다는 글을 보았다. 그런데 수정을 했다면 이건 더 심각한 수준이라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을 번역한 이근배선생님의 노고에 감사한다. 그런데 이근배 선생님은 직업이 의사였다. 그는 20여년에 걸쳐 퇴근 후에 잠을 줄여가며 이 책을 번역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죄송스런 말씀이지만 번역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번역을 하다 만 문장도 있고, 전혀 엉뚱한 의미로 해석해 놓은 것도 있고, 단어의 다양한 의미 중 적절한 의미를 사용하지 못해서 오역된 문장도 있었다. 많은 부분 번역에서 빠져있기도 했다. 어떻게 알았냐고? 하도 문장이 매끄럽지 못해서 선생님이 참고로 하셨다는 영문판과 대조를 해보고야 많은 부분이 잘못 번역되어 있고, 많은 부분이 번역에서 빠져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번역자를 탓하고 싶지 않다. 50년대에 아직 우리나라에 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지 않았을 때 의사선생님이 본업을 하면서 번역을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미술사를 전공하는 사람이 많다. 탁월한 학자도 많다. 이탈리아에 가서 학위를 받아온 학자들도 있다. 그런데 르네상스시대의 미술을 공부할 때 가장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을 번역한 전문가가 아직 한 사람도 없다. 그렇다면 미술사를 공부하는 교수나 학생들은 이 책을 보지 않는다는 말인가? 아니면 아예 이탈리아어로 된 원문으로 공부한다는 말인가? 설마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르네상스 미술을 전공하는 사람이 한 두사람이 아닐텐데 이 책이 아직도 제대로 번역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리고 번역에 문제가 많은 책을 50여년이 지난 지금 그대로 새로 찍어내며 대대적 광고를 하고 그 책에 전문가 교수님이 해설을 붙였다는 것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아마도 해설을 하신 교수님 조차도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다 읽어보았다면 결코 자신의 이름을 올릴만큼 번역이 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테니까. 주석이 필요해 보이는 부분들이 많은데도 제대로 된 해설이 붙어있지 않다. 학문의 근간이 되는 고전을 제대로 번역한다는 것은 후대의 학문적 성취를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인데도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의 문화적 바탕이 아직도 허약하다는 것을 도처에서 보고 경험한다. 나는 내가 관심 있는 분야에서만 이런 경험을 하고 있지만 아마도 내가 모르는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사 바탕이 탄탄하지 않으면 금방 허물어지는 법이다. 해당 분야의 가장 핵심적 텍스트 조차도 공부를 하지 않고 그 위에 무엇을 쌓는다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마크 로스코를 이야기하다 글이 길어졌다. 만사 기초가 중요하고, 학문에서의 기초란 바로 그 분야의 고전을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고전 조차 일반인들이 공부할 수 있는 번역서도, 또 그에 대한 연구서도 없다는 것은 학문의 저변 확대에 있어서도 큰 문제가 된다. 학문은 학자와 학생만 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있는 누구든 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인문학이고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창구이기 때문이다. 창작도, 창조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초를 튼튼히 하고 자기 생각을 조금씩 확장해 나갈 때 새로운 것이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의 학문적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 걱정스레 바라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