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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Feb 01. 2023

[주역과 신화] 조로아스터교와 주역의 괘상 비교

작년 여름 이희수 교수의 ⟪인류본사⟫를 읽을 때 중동 지역의 종교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특히 주역의 괘상과 겹치는 부분이 여러 군데 있었다. 주역은 대략 5천년쯤 전에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보는데, 아마도 그 사상은 동아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사상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각 지역의 자연과 사람살이에 맞게 다시 스토리텔링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주역에 대해 여러 저자의 책을 보았고, 지금도 보고 있지만 나는 도올 선생의 주역 해석이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도올 선생 말씀처럼 주역이 워낙 표현들이 축약되어 있어 역대의 유학자들이 해석을 하며 "구라"를 많이 쳐놓았다. 그 구라에는 유학자들이 살던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반영되어 있어서 여성인 내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해석도 많지만 그럼에도 도올 선생의 스토리텔링은 큰 거부감이 없이 받아들일만 하다. 따라서 도올 선생의 주역 해석을 기반으로 하여 비교할 것이다.


아래의 검은색은 인용문이고, 파란색으로 쓴 부분은 내 생각이다.






1) 조로아스터 교리에 따르면, 아후라마즈다라는 선신과 아리만이라는 악신의 대결과 투쟁을 통해 결국 선신이 악신을 물리침으로써 아후라마즈다가 우주를 통괄하며 인류에게 희망과 평화를 가져다준다. 조로아스터교를 이원론적 일신교라고 평가하는 이유다. 선은 밝음을 대표하고 악은 어둠을 대표한다. 어두운 밤은 악의 영역이고 빛과 밝음이 위협당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불을 밝혀 어둠을 억제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들은 낮밤할 것 없이 불을 밝혔다. 선신이 살아있다는 희망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밤에도 불을 피웠다. 한자 문화권에서는 이들이 불을 숭배한다며 조로아스터교를 '배화교'라고 표기하지만,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조로아스터교에서 불은 빛과 선, 정의와 희망의 불씨를 지키는 상징일 뿐, 불을 섬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신 아후라마즈다가 신앙의 중심에 있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는 흔히 '마즈다(Mazda)교'로도 불린다. (이희수, ⟪인류본사⟫, 5장-3. 페르시아의 문화 에서)


이란 야즈드(Yazd)의 조로아스터교 사원에서 타고 있는 불  (사진출처: en.wikipedia.org)


참고 :

중화리

주역의 30번째 괘인 중화리 괘는 불을 상징한다. 불은 양이자, 태양이고, 밝음이고 진리이고 문명을 상징한다. 이희수 교수가 "조로아스터교에서 불은 빛과 선, 정의와 희망의 불씨를 지키는 상징"이라고 한 것처럼 주역의 리괘는 이 모든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조로아스터교, 즉 배화교는 이희수 교수의 말씀처럼 불 자체를 섬기는 종교가 아니라 불이 상징하는 것을 섬기는 종교이다.




2) 하늘은 곧 땅을 윤택하게 해주는 비와 구름이다. 하늘과 땅은 빗살무늬를 통하여 하나로 융합된다. 하늘의 나라가 곧 지상의 나라요, 지상의 나라가 곧 하늘의 나라다. (도울 주역 강해, p. 277)


선사시대의 도기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하늘과 땅 사이에 비가 내리며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그림이 다양하게 베풀어져 있다. 비가 내리는 속에 개가 즐거워 껑충거리는 그림도 있다. 하늘과 땅이 결합하며 지상에 새 생명들이 탄생하니 어찌 즐겁지 않으리! 김찬곤 교수의 ⟪빗살무늬토기의 비밀⟫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빗살무늬 토기에 베풀어진 빗살은 비를 상징한다고 말한다.


아래 도상은 Marija Gimbutas, ⟪The Goddesses and Gods of Old Europe : Myths and Cult Images⟫ 의 책에 실려 있는 선사시대의 도기에 베풀어진 그림들이다. 음(땅)과 양(하늘) 사이에 비가 내리고 있다.


음과 양이 결합하여 비가 내리고 새로운 생명이 싹트고 있음을 나타낸 도상, 회오리 모양 안에 태극과 같은 음과 양의 모습이 반영되어 있고 땅에서는 새싹이 돋아났다. 기쁨에 들뜬 개가 날뛰고 있다.



주역에서는 불과 물이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서 해석이 전혀 달라진다. 불이 위에 있느냐 물이 위에 있느냐에 따라 해석이 전혀 달라진다. 참고로 윗자리는 공간적으로도 위를, 아랫자리는 공간적으로도 아래를 의미한다. 


수화기제

63번째 괘 <수화기제> 괘는 "이미 건넜다"는 의미이다. 즉 모든 것이 완전하게 이루어졌다는 의미이다. 이 괘는 물이 위에 있고, 불이 아래에 있는 괘이다. 원래 불(양, 태양, 진리, 문명)의 속성은 가벼워 위로 올라가려하고 물(음, 비, 구름, 고난) 은 무거워 아래로 내려오는 특징이 있다. 그런데 이 수화기제 괘는 위치가 반대로 되어 있다. 무거운 것이 위에 있으니 아래로 내려 가야 한다. 물이 증발하여 하늘로 올라간 수증기는 구름으로 뭉친 후 비가 되어 다시 땅으로 떨어진다. 비는 지상의 생명을 키워낸다. 생명은 햇살도 있어야 하지만 물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생명의 정수이다. 양과 음이 바뀌어 있기 때문에 서로가 제 자리를 찾아가려고 빠르게 변화를 겪으며 세상에는 만물이 생장한다.



화수미제

반면 64괘의 마지막 괘인 <화수미제> 괘는 "아직 건너지 않았다."는 의미이자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를 가진 괘이다. 불은 원래의 불이 있어야 할 하늘에 있고, 물은 물이 있어야할 땅에 자리를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상극인 물과 불이 만날 기회가 없다. 불은 점점 더 하늘로 올라가고 물은 땅 위를 흘러 더 아래로 내려간다. 완전히 갈라선 불과 물에서 세상은 마치 종말을 고한 것 같다. 인도의 신화에서 우주의 파괴의 신 시바의 시대에 비견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 하늘(주역의 첫번째 괘인 건괘)과 땅(주역의 두번째 괘인 곤)이 다시 결합하는 순간이 온다. 인도의 신화에서는 창조의 신 브라흐마 신이 다시 세상을 지어내는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카오스에서 땅의 여신 가이아가 먼저 분리되고, 가이아에서 태어난 하늘의 신 우라노스가 서로 결합하여 새로운 세상이 창조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세상에는 다시 만물이 새롭게 생동하는 시작의 시대가 온 것이다. 


주역은 63번째 수화기제괘를 통해 이미 세상에 완성이 이루어졌음을 알리면서 우주의 한 사이클을 마무리짓고, 마지막 64번째 화수미제 괘를 통해 새로운 사이클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고 있다. 즉 창조적 파괴가 이루어진 이후로 새로운 시대 (주역의 첫번째 괘인 하늘(건)과 땅(곤)이 겹합하여 새로운 생명들이 탄생함)가 열릴 것임을 알리는 괘이다. 하늘과 땅이 만나 탄생한 새로운 생명은 우주를 채우며 성장을 거듭한다. 한동안 우주를 유지하는 신인 비슈누의 시대가 지속될 것이다. 이렇게 우주는 다시 성주괴공의 거대한 사이클로 들어선다. 


인도의 신화에서도 우주의 창조와 유지, 파괴를 하나의 사이클로 보고 있다. 주역의 사상도 직선적 사고가 아니라 순환적 사이클을 기반으로 한다. 순환이라고 하여 같은 자리를 맴돈다는 의미가 아니다. 4계절이 순환한다고 하여 한번도 같은 적이 있던가!




3) 지배층을 중심으로 국가의 주류 신앙은 이란 동부지방에서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린 미트라교였다. 미트라는 진리와 물을 관장하는 계약과 맹세의 신인 고대 이란의 태양신 메흐르(Mehr)와 연결되면서 종래에는 조로아스터교의 한 분파라는 주장이 강했으나... 조로아스터교 이전부터 인도나 이란 지방에 존재해 온 독립된 신앙의 한 형태로 보고 있다. (이희수, ⟪인류본사⟫, 6장-3 파르티아 제국의 거버넌스와 문화에서)


이 구절을 읽어보아도 미트라교는 바로 불(양, 진리)과 물(음)을 통해 우주의 순환과 우주의 창조를 설명하고 있다. 태양신 메흐르는 불이자, 태양이자, 진리이자, 문명이다. 물이란 생명의 정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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