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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Feb 05. 2023

[주역과 신화] 입춘 아침

입춘 날 아침이 밝았다. 느지막히 일어난 남편에게 "오늘 부터 봄이야"라고 했더니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린가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더니 "춘분(the First day of Spring)은 3월이고 하지(Summer solstice)는 6월이야!" 라고 한다. 할수없이 나는 동아시아의 24절기 시스템을 설명하며 '우리는 24절기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해. 농경문화에서는 절기가 달력보다 더 중요하거든. 농사는 타이밍이야. 전통적으로 우리나라는 절기에 맞춰서 일년의 농사를 관장했어. 블라블라.... '그리고 거실에 걸어둔 미국달력을 보니 오늘 날짜에 아무 기록이 없다. 내방에 있는 국립국악원 달력에는 입춘이라고 박혀있는데... 


어릴 때는 몰랐다. 한국 문화에서 살 때는 매년 반복되는 절기가 무슨 의미인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도 들려오는 말이 많으니 저절로 알았다. 문화라는 것이 그런 방식으로 후대로 전승되는 것이겠지. 그런데 해외에 살다보니 찾아봐야 한다. 다행히 네이버와 다음과 같은 한국 사이트가 잘 구비되어 있어 한국에 살 때보다 더 한국 문화를 열심히 살펴보게 된다.  


동양의 절기는 참으로 오묘하다. 옛 조상님들은 어떻게 이 오묘한 자연의 이치를 아셨을까? 이 또한 나의 건방진 생각일지 모르겠다. 이런 사고 자체가 조상님들을 업신여기는 시각이기 때문이다. 


조상님들은 자연과 더 밀접하게 살면서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하늘을 살피고 자연을 살피고 사람살이를 살폈을 것이다. 그런 삶 속에서 하늘과 자연의 흐름이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의 대부분을 건물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현대의 우리는 하늘을 봐도 하늘을 볼 수 없고, 땅을 살펴도 땅을 볼 수 없다. 그런 우리에게 우주와 자연의 변화는 책으로 공부해야하는 과학의 한 영역이 되어 있다. 우리의 삶과 연결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그럼 조상님들은 자연을 삶과 어떻게 연동시켰을까? 주역의 12벽괘도를 보고 있으면 시쳇말로 참으로 신박하다. 조상님들의 똑똑함에 납작 업드릴 수 밖에 없다. '네, 네... 조상님! 그저 무지한 후손에게 한 수 가르쳐 주십시요!' 하는 자세가 된다.


12벽괘도 (사진출처 : 상생방송, 김재홍교수 강의에서)



조상님들의 새해는 동지부터 시작되었다. 동지를 기점으로 다시 해가 조금씩 길어지기 때문이다. 괘상을 보면 음력 11월 (동지, 양력으로는 12월 크리스마스 즈음)에 양이 하나 들어와 있다.(긴것이 양, 가운데가 열려 있는 것이 음) 그리고 4월까지 양이 하나씩 늘어난다. 우리에게는 양력 1월과 2월이야말로 겨울의 냉기가 최고조로 느껴지는 시절인데 어떻게 벌써 양기가 시작되었다고 보았을까? 지구에는 양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땅에 축적되어 있는 냉기가 최고의 위력을 떨치는 것은 양력 1, 2월이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양기로 기울었다. 조상님들의 혜안은 참으로 밝았다.


입춘과 우수가 들어 있는 음력 1월의 괘상을 보면 위에 땅괘와 아래에 하늘괘가 자리하고 있다. 이 괘를 일러 "지천태(地天泰)"괘라 한다. 위에 있어야 할 하늘이 아래에 있고, 아래에 있어야 할 땅이 위에 있으니 우주는 제자리를 잡기 위해 에너지 순환을 최고조로 올려야할 때이다. 경복궁의 왕비가 계시던 전각 "교태전(交泰殿)"의 가운데 "태"자가 바로 이 지천태에서 가져온 글자이다. 왕과 왕비가 잘 교통하셔서 다음 대를 이을 왕자를 생산하시라는 의미이다. 


경복궁 교태전 (사진출처 : ko.wikipedia.org)




음력 2월 부터는 양기가 음기 보다 많아지며 드디어 새싹이 땅을 뚫고 올라오는 시기이다. 그리고 음력 4월이 되면 온 천지에 양기로 가득채워진다. 음력 4월은 양력으로 5월 중순경 부터 6월 중순경쯤에 해당한다. 이때 온천지가 꽃밭이 되지 않던가. 


"입춘이 지나 우수에 봄바람이 불면 얼음이 녹고, 춘분에 처음으로 우레가 치고, 곡우에 봄비가 내려 만물이 자란다" (출처 : 인문으로 읽는 주역, 신원봉 지음, 익괘의 설명 중에서)


이 문장을 공부하면서 내가 봄이면 가장 좋아하던 것이 떠올랐다. 봄바람이었다. 마침내 두꺼운 옷을 벗고 홑겹의 옷을 입었다. 마침 열어 놓은 창문으로 봄바람이 불어 들어와 홑겹 옷속을 파고 들며 살갗을 살랑 스칠 때의 그 부드러움. 머릿결은 날리고 피부에 닿는 봄바람의 감촉은 부드럽고. 그 봄이 나는 참으로 좋았다.


입춘 아침, 애크론은 영하 13도까지 떨어졌지만 나는 안다. 이미 봄은 시작되었음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 댁내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하시길!



ps. 오늘은 입춘으로 봄이 시작되는 날이지만 그 다음 이야기도 미리 들려드리겠다. 음력 5월을 보면 괘상에 다시 음기가 하나씩 생겨난다. 음력 5월이면 양력으로는 6월 중순에서 7월 사이이다. 우리나라의 계절로 본다면 폭염이 본격화되는 시기이다. 우리 생각에 이 시기야 말로 양기가 제일 충천한 시기 같지만 이 시기에 벌써 음기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음기란 곧 활짝 피어난 꽃과 나무가 이제 밖으로 내닫는 에너지를 안으로 돌려 씨앗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벌과 나비를 불러 수정을 마친 꽃은 꽃을 떨구고 이제 씨앗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우리가 보는 결과로서의 자연 모습보다 실제의 자연은 한템포 더 빠르게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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