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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Mar 06. 2023

비기팽 무구 (匪其彭, 無咎)

주역에서 배우는 삶의 지혜

유튜브의 <아트 인문학> 채널을 즐겨 본다. 이 채널은 ⟪아트 인문학 여행⟫ 시리즈 책을 쓴 김태진 작가가 운영한다. 요란하지 않게 주요 자료만 보여주며 김작가가 입담으로 풀어내는 세계사와 미술사 이야기가 재미나다. 


루이 14세 (1638~1715) 시대와 관련한 이야기를 보고 있었다. 5살에 국왕(재위기간 1643~1715)이 되어 오래도록 모후의 섭정을 받던 루이 14세는 드디어 23살이 되던 1661년 부터 친정을 펼치기 시작했다. 추후 절대왕정이란 말을 나오게 한 그답게 친정을 펼치자 마자 귀족들을 휘어잡기 위해 여러 정책을 펼쳐 나간다. 루이 14세가 한 권력자를 휘어잡으며 귀족을 제압해 나가는 과정을 보고 있자니 주역의 화천대유괘의 구사효가 떠올랐다. 아무리 잘나가도 자신의 주제를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만고의 진리를... 


우선 스토리를 보자. 루이 14세 시대의 재무총관이자 검찰총장이었던 니콜라 푸케 (1615~80)는 전임 최고 권력자 쥘 마자랭이 1661년 죽고나자 그의 뒤를 이어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마침 1661년 8월, 20년동안 보수 공사를 해온 자신의 대저택 보르비콩트 성 (Vaix-le-vicomte)이 완성되자 푸케는 약 6천여명을 초대하여 연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 루이 14세도 초대를 하였다. 대단한 교양과 예술적 심미안을 가진 푸케는 이 저택 공사에 온갖 정성과 부를 쏟아 부었다. 이 저택을 루이 14세에게 안내를 하며 하나의 방에 루이 14세를 모시고 들어간다. 그리고 말한다. "이 방은 전하의 방이옵니다." 그런데 그 방을 본 루이 14세는 발걸음을 멈춘다.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그 방에 잠깐 서 있던 루이 14세는 몸이 좋지 않다고 말하고는 궁전으로 돌아가 버렸다. 


루이 14세는 그의 저택을 보자 밸이 꼴리고 말았다. "재무총관인 그가 내 돈을 착복했구나" 라고 자연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정작 푸케는 최선을 다해 자신의 돈으로 그 방을 꾸몄지만 루이 14세의 질투를 불러일으키고 말았다. 


그러면 주역의 14번째 괘인 화천대유괘는 어떤 괘인가? 우리나라에서 "화천대유"란 단어가 연일 뉴스에 오르내리던 때가 있었다. 그들은 화천대유괘가 가진 훌륭한 의미를 오역한 사례이니 입에 올리고 싶지 않다. 위의 스토리와 관련하여서는 4번째 효사만 보면 된다.


화천대유 (火天大有) 괘


大有:元亨。

彖曰:大有,柔得尊位,大中而上下應之,曰大有。其德剛健而文明,應乎天而時行,是以元亨。

象曰:火在天上,大有;君子以遏惡揚善,順天休命。

初九:無交害,匪咎,艱則無咎。

象曰:大有初九,無交害也。

九二:大車以載,有攸往,無咎。

象曰:大車以載,積中不敗也。

九三:公用亨于天子,小人弗克。

象曰:公用亨于天子,小人害也。

九四:匪其彭,無咎。(더 이상 부풀리지 않으니 허물이 없다.)

象曰:匪其彭,無咎;明辨晢也

六五:厥孚交如,威如;吉。

象曰:厥孚交如,信以發志也。威如之吉,易而無備也。

上九:自天佑之,吉無不利。

象曰:大有上吉,自天佑也。


이 괘의 구사 자리(아래에서 4번째 효)는 신하의 자리를 상징한다. 이 구사효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재물이나 세력을 더 이상 팽창시키지 않는다. 군주의 측근에 있으면서도 안전할 수 있는 길은 자신의 강함을 드러내지 않는 것, 자신의 힘을 덜어 군주에게 보탬으로써 도리어 안전할 수 있다." (⟪인문으로 읽는 주역⟫, 신원봉 지음)


그 위의 육오 자리는 군주의 자리이다. 군자가 음효라서 유순한 왕이지만 신하는 신하이고 임금은 임금이다. 신하가 힘이 있어도 절대 왕 앞에서 왕을 넘어서는 짓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 푸케는 왕 앞에서 왕을 넘어서 버렸다. 최고 권력자의 자리란 사방에서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 자리이다. 항상 질투와 모함이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최고의 권력자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몸을 낮춰야 한다. 그런데 푸케는 그 선을, 그것도 지존인 왕 앞에서 넘어 버렸다. 게다가 루이 14세는 기질상 유한 왕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강성이 아니던가!


그 연회 이후 푸케는 어찌 되었을까? 왕의 명령으로 이런 저런 만들어진 명분에 의해 푸케는 감옥에 갇힌다. 그를 옹호하는 귀족들이 반란이라도 일으키면 반란자들을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푸케를 죽도록 고문하여 반란자들이 스스로 왕에 맞서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푸케의 어마어마한 인맥도 다 끊어 놓는다. 그의 재산은 몰수되었고, 푸케는 감옥에 갇혀있다 죽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 베르사이유궁은 푸케의 저택을 참고하여 지어졌으니 푸케의 대저택이 루이 14세의 질투를 불러일으킬만큼 아름다웠던 모양이다.


보르비콩트의 정원


최고 권력자 푸케도 왕이 쳐냈는데 그 아래의 귀족들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그러한 방식으로 귀족들은 만들어진 명분으로 부는 빼앗기고, 권력은 약화되었다. 나중에 루이 14세의 베르사이유 궁이 완성된 이후 귀족들은 궁전에 초대를 빙자하여 강제적 거주를 하며 왕의 감시하에 살았다. 매일 파티를 즐기며 왕이 만들어 놓은 복잡한 에티켓을 익히느라 다른데는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귀족들도 어떻게라도 왕에게 잘보여 부와 권력을 이어가려고 애를 쓰느라 철저히 왕에게 복속되고 말았다. 푸케의 예를 본 귀족들과 신하들이 감히 루이 14세를 도발할 수 있었을까! 루이 14세가 절대 권력을 장악해 가는 과정은 놀랍기만 하다. 


푸케가 조금 현명했더라면, 또 주역의 구사효와 같은 가르침을 알아서 주제 파악을 잘 하였더라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긴 이래저래 귀족들을 장악하려했던 루이 14세 앞에서 무사하기는 쉽지 않아 보이긴 하지만. 


주역을 공부해 나갈수록 인생에 대한 교훈이 보석처럼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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