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37번째 괘인 가인(家人) 괘를 보고 있자니 마침 가정의 달인 5월달과 겹쳐진다. 가정 윤리가 깨졌다고 많은 사람이 통탄하면서도 어떤 것이 올바른 가정인지 모르는 시대가 되었다. 주역을 공부하다 보면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가정 윤리를 나타낸 가인괘를 보며 무엇이 올바른 가정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하다.
우선 가인괘의 괘상을 보자. 가인괘는 불이 아래에, 바람이 위에 자리하고 있는 형상이다. 바람이란 한 나라의 풍속을 의미한다. 그런데 풍속은 각 가정의 화덕에서 나온다. 무슨 말이냐 하면, 선사와 고대에는 온 가족이 집 한가운데에 있는 화덕가에 모였다. 화덕가에 모여 어머니가 해주시는 음식을 식구들이 같이 먹으며 가정의 화목을 다졌고, 더불어 아이들은 밥상머리 교육을 하였다. 이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한 집단의 풍속이 전승되지 않았겠나. 그런 의미에서 화덕가에서 이뤄지던 밥상머리 교육과 가정의 화목은 나라의 평화를 유지하는 중요한 기반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 가인괘의 원문 순서대로 내용을 살펴보자.
우선 주나라의 문왕이 이 괘상을 보고 달았다는 괘사를 살펴보자.
家人:利女貞。(여성이 곧으면 이롭다)
라고 풀었다. 왜 여자만? 여자를 경시해서가 아니라 여자의 역할이 크기 때문이다.
이 괘사에 풀이를 단 공자님의 해설을 보자. 그것을 단사라고 한다.
彖曰:家人,女正位乎內,男正位乎外,男女正,天地之大義也。家人有嚴君焉,父母之謂也。父父,子子,兄兄,弟弟,夫夫,婦婦,而家道正;正家而天下定矣。
(가정이란 여자는 안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고, 남자는 밖에서 자리를 바르게 하여 남녀가 올바른 것이 천지의 큰 뜻이다. 가정에는 엄격한 군(가장)이 있으니 부모를 일컫는다.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아들은 아들답고, 형은 형답고, 동생은 동생답고, 남편은 남편답고, 아내는 아내다운 것이 가정의 바른 도이다. 가정이 올바르면 천하가 안정된다.)
이 문구는 보는 즉시 이해가 되니 별도의 해설을 추가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 괘상이 가진 자연적 형상을 보시며 공자님은 군자라면 이 괘상을 통해 무엇을 배울 것인지를 설파하신것이 대상전이다.
象曰:風自火出,家人;君子以言有物,而行有恆。(불에서 바람이 나오니, 가인이다. 군자는 이로서 말을 실질에 맞게 하고 행동에 항상함이 있도록 해야한다.)
자연형상이 가진 특징에 대해서는 위의 괘상 설명에서 했으니 더 할 필요는 없겠고, 이를 보고 군자가 무엇을 배워야할지 공자님이 베푸신 말씀은 백번 지당한 말씀이니 이에 대해서도 특별히 더 해설을 하지 않아도 이해가 될 것이다.
이상은 가인괘가 가지고 있는 전체적인 해석이다. 이 총론적인 해석에 대해 각론격인 6개의 효사를 문왕의 아드님인 주공이 달아 놓았다. 공자님은 이 각각의 효사에 대해서도 해설을 달아놓으셨는데 그것을 대상전과 구분하여 소상전이라고 부른다.
6개의 효사를 통해 같은 가인괘에서도 가정의 구성원 각각이 처해있는 위치와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그에 따라 처방을 달리 주는 것이다. 즉, 가정의 구성원들 각자의 입장마다 어떻게 해야 좋은 가정을 이룰 수 있는지 알려준다.
우선, 6개의 효사 중 첫번째/두번째/세번째 효사는 여성으로서 시집 안간 처녀/주부/할머니를, 네번째/다섯번째/여섯번째 효사는 남자로서 총각/가장/할아버지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동양은 한 가정의 법도가 잘 서면 나라도 잘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성들의 역할을 통해서는 가정에서의 역할 뿐 아니라 한 나라의 정치도 빗대어 교훈을 주고 있음을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요즘이야 공자님이 해설을 달던 2500년전과는 달리 남녀의 역할 경계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으니 효사를 보면서 굳이 여자가 할 일, 남자가 할 일이라고 갈라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자도 한 가정의 가장인 경우도 있고, 남자도 한 가정의 주부 역할을 하는 가정이 있기 대문이다. 따라서 남녀의 성별로 역할이 따로 정해져 있다고 보지 말고 역할에 더 중점을 두고 보면 좋지 않을까 한다. 처녀와 총각은 남녀 청소년기에 빗대어 비유적으로 읽으면 될 것이다.
初九:閑有家,悔亡。(규범을 잘 익히면 후회함이 없다)
象曰:閑有家,志未變也。(규범을 익힌다 함은 뜻이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이 첫번째 효사는 시집안간 처녀의 할 일을 말하고 있다. 나중에 한 집안의 안주인으로서 가정을 잘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처녀 시절에 규범을 잘 익혀야 한다.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미래에 무엇이 필요할지 미리 배워야 시집 가서도 삶을 잘 영위할 수 있다. 준비없이 시집가 삶이 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가정을 지켜갈 뜻이 변할 수 있다.
六二:無攸遂,在中饋,貞吉 (주도하지 말고 중간에서 잘 먹이는 역할을 바르게 잘 하면 길하다)
象曰:六二之吉,順以巽也。(육이가 길하다는 의미는 순하고 겸손하기 때문이다.)
두번째 효사는 한 가정의 안주인의 할 일을 말하고 있다. 주부는 남편이 할 일까지 주도하지 말고 집안의 중심으로서 온 가족을 잘 먹이는 일을 잘 해야 한다. 이런 주부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면 가정이 길하다. 이 주부의 역할을 순순히, 마음을 낮춰서 수행하는 일이야 말로 안주인의 역할이다.
九三:家人嗃嗃,悔厲吉;婦子嘻嘻,終吝。(가정을 엄하게 하면 후회할 일도 우려스러운 일도 있지만 길하다. 그러나 며느리와 아들이 희희낙락하면 마침내 애석하다.)
象曰:家人嗃嗃,未失也;婦子嘻嘻,失家節也。(가정을 엄하게 하면 아직 잃지 않음이요, 며느리와 아들이 희희낙락하면 가정의 절도를 잃은 것이다. )
세번째 효사는 한 가정의 여성 어른 (시어머니)의 역할을 말하고 있다. 시어머니가 가족에게 엄격하게 하면 가족 구성원의 불평과 불만을 사는 일이 생기지만 가정은 잘 유지가 될 것이고, 반면 시어머니가 지나치게 너그러우면 며느리와 가족들이 풀어져 희희낙락하며 집안의 절도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과연 요즘 같은 시대에 이런 교훈을 들으며 수긍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한 가정을 절도있게 유지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고 너무 풀어지면 집안의 질서가 뒤죽박죽되지 않던가.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六四:富家,大吉。(가정을 부유하게 하면 크게 길하다.)
象曰:富家大吉,順在位也。(가정이 부유하면 크게 길하다는 것은 자리에 따름이다.)
네번째 효사는 장가 안간 총각이 할 일을 제시한다. 동시에 이 자리는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신의 자리이기도 하다. 요즘으로 치자면 정치인들이다. 총각(대신, 정치인)은 미래에 자기의 가정(나라)을 꾸릴 준비를 잘 하면서 동시에 가장(한 나라의 리더)을 도와야 하는 자리이다.
九五:王假有家,勿恤吉。(왕이 가정을 꾸렸으니 근심하지 않으면 길하다)
象曰:王假有家,交相愛也。(왕이 가정을 꾸렸다는 의미인 즉 서로 사랑으로 소통함이다.)
다섯번째 효사는 한 집안의 가장이자 한 나라의 임금자리이다. 드디어 가정을 꾸리고 가장(왕)이 되었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너무 많다. 부모는 어찌 봉양할 것이며, 자식은 어찌 키울 것이며, 부부의 도는 어떻게 잘 지켜갈 것이며, 그 가운데 나는 나를 어떻게 성장시켜나갈지 생각이 너무 많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가족이 모두 사랑하며 잘 소통하면 잘 풀려나간다. 가정 뿐 아니라 나라 운영에 있어서도 그렇다는 것이다.
上九:有孚威如,終吉。(믿음이 있어 체통을 잘 지킬 것 같으면 끝내 길하다.)
象曰:威如之吉,反身之謂也。(체통이 있어 길하다 함은 나를 되돌아 본다는 것을 말함이다.)
마지막 효사는 집안의 가장 어른인 할아버지가 할 일을 말한다. 동시에 한 나라로 보면 정치에서 물러난 고문의 위치에 해당한다. 가족으로 부터 신뢰를 받고 어른으로서 체통을 잘 지켜나가려면 우선 내가 올바로 하고 있는지를 수시로 살펴야 한다. 집안의 최고 어른이 자기는 잘 하지 못하면서 가솔들에게 바르게 하라고 호통친다면 과연 누가 따를 것인가. 따라서 가족에게 신뢰를 얻으며 어른으로서 체통을 잘 지켜간다는 의미는 곧 나를 수시로 되돌아보며 반성을 한다는 의미이다.
동양에서의 중요한 가르침 중의 하나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이다. 나를 닦고 집안을 잘 다스리면 나라도 잘 다스려 천하가 평화로워진다는 것이다. 가정을 다스린다는 것과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을 어찌 같은 레벨로 보느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정을 제대로 다스린다는 것이 나라 운영만큼이나 어렵고 엄중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역사적으로도 왕이 자기 수신도 제대로 못하고 가정도 잘못 다스려 나라까지 끝장난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이렇게 생각했기에 가정이 똑바로 서야 나라도 똑바로 선다고 보았을 것이다.
가정의 달, 5월. 가족간에 화목하라고만 만들어 놓은 달은 분명 아닐 것이다.
* 철산 최정준 교수님의 해설을 참고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