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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 재 Oct 07. 2024

⟪실수연발 (The Comedy of Errors)⟫

셰익스피어 희곡 다시 읽기

* 이 작품은 계명대 김종환 교수가 번역한 지만지드라마 판본으로 읽었다.


김교수의 해설에 의하면 ⟪실수 연발⟫은 “1594년 공연된 것으로 추정되는 실수연발의 주요 출처는 오해와 착각으로 인한 소동을 재현한 로마의 극작가 플라우투스의 <메나에크미(Menaechmi)>와 <암피트루오(Amphitruo>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당대에 잘 알려진 원작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새롭게 각색한, 요즘으로 치자면 뛰어난 각색가였다.



나의 관심 포인트


제목 그대로 희극(Comedy)인 이 작품은 오해와 착각이 불러일으키는 코믹한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무대는 에페소스. 현대의 튀르키예 서부의 해안도시가 주무대이다. 이미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동방의 화려한 문명이 꽃피웠던 곳이다. 성경에서는 에베소라고 칭하는 도시이다. 사도 바울이 가르침을 펼친 곳이었다. 


이 작품은 줄거리에 앞서 배경으로 나오는 장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럽은 1492년 신대륙이 발견된 이후로 전세계로 무역선을 띄우며 경쟁적으로 무역업을 펼치던 시대였다.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대는 엘리자베스 1세가 통치하던 시대였다. 엘리자베스 1세가 즉위한 시기는 영국이 아직 해상 무역의 패권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아래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밀리고, 통치 후반기에는 네덜란드와 무역 경쟁을 두고 밀리고 있었던 시대였다. 어쨌든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든 해상을 장악해야 영국이 커나갈 수 있었다. 아직 힘이 없던 시절에는 해적이던 드레이크가 스페인선이나 포루투갈선에서 약탈해 오는 재물이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다. 나중에 드레이크는 공로를 인정받아 엘리자베스 1세로 부터 작위까지 받는다. 국력 신장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던 시절이다. 


⟪실수 연발⟫에는 그런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단지 그 시대상을 고대 그리스 시대의 해상 무역을 두고 벌어진 패권 경쟁을 배경으로 하여 ⟪실수 연발⟫ 을 펼쳐내고 있어 내 개인적으로는 스토리 전개 만큼이나 극에 묘사된 시대적 정황이 더 흥미롭게 다가왔다. 





작품 속 배경 도시


그러면 극 속에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도시 부터 살펴보자. 이 극 속에는 여러 장소가 언급된다. 그리고 그 장소들은 고대 그리스 시대 부터 이미 무역의 거점으로 각축을 벌이던 장소들이다. 


우선 고대 그리스의 최고의 경제 도시였던 코린토스와 에페소스가 나온다. 성경에는 코린토스를 고린도, 에페소스를 에베소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기독교인들에게도 친숙한 도시일 것이다.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사도 바울이 전도를 펼친 이야기는 나 역시도 알고 있다. 


코린토스는 그리스의 본토와 아래 펠로폰네스스 반도를 이어주는 해협에 위치하는 도시이다. 지정학적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누리던 도시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에페소스는 에게해 건너편으로 현재의 튀르키예 서해안가에 위치한 도시이다. 동방의 문명이 활짝 피어났던 도시이다. 에페소스라고 하면 여신 아르테미스 신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또 하나의 중요 도시가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이다. 시칠리아는 지중해 가운데에 위치한 큰 섬으로 이미 고대 부터 여러 지중해 국가들이 이 곳에 거점을 두고 서로 각축을 벌이던 곳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섬이다. 또 다른 도시로 에피댐넘(Epidamnum)이란 곳이 등장하는데, 아드리아해 동쪽으로 현재의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의 윗쪽 해안가 지역이다. 마지막 지역으로 이름만 잠깐 등장하는 에피다우로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북동쪽 끝에 붙은 아르골리스 주의 동쪽 해안가 지역이다. 


등장하는 모든 도시들이 해안가에 있는 도시이거나 해안과 가까운 도시로 무역의 거점으로 사용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갖춘 도시들이다. 



줄거리를 통해 본 당시의 국제 상황


극중 정치적 상황을 살펴보면, 시라쿠사와 에페소스는 서로 반목하고 있다. 무역을 둘러싸고 서로 경쟁을 하는지 시라쿠사 공작이 에페소스의 상인들이 자기 나라에 들어오는 것을 금하고 있고, 만약 허락없이 들어온 상인이 있으면 가혹하게 다룬다. 이에 화가난 에페소스 공작은 시라쿠사의 정책을 맞받아치며 시라쿠사 상인이 자기 나라에 상륙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 시라쿠사의 상인 이지언이 에페소스에 들어온 것이다. 쌍둥이 아들의 행방을 찾아 그리스와 아시아를 5년간 헤매었지만 아들들을 찾지 못한 그는 고향 시라쿠사로 돌아가는 길에 잠깐 에페소스에 들른 참이다. 시라쿠사와 에페소스가 반목하고 있는 정황을 모르던 이지언은 에페소스의 공작 솔리너스에게 잡혀 문초를 당하고 있다. 공작은 이지언에게 벌금 1000마르크를 내든지, 아니면 사형을 당할 것이라 말한다. 이지언은 차라리 죽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자 공작은 이지언에게 왜 고국을 떠났으며 왜 에페소스에 들어왔는지 말이나 들어보자하고 사연을 듣는다. 사연을 다 듣고 난 공작은 이지언이 가엾어서 하루 동안 말미를 줄터이니 에페소스의 친구들에게 모금하여 벌금을 마련해 보라고 한다. 


사연은 눈물없이 들을 수 없이 절절하다. 자기는 시라쿠스 태생으로 시라쿠스 여인과 결혼했다. 그리고 에피댐넘에 무역 사무소를 두고 장사를 하며 크게 성공했다. 그런데 에피댐넘 관리자가 사망하여 어쩔 수 없이 자기가 그곳으로 건너가 사업을 관장했다. 산달이 가까워진 아내가 자기를 찾으러 무거운 몸을 이끌고 에피댐넘에 왔고, 마침 그들이 머물던 여인숙에서 아내는 쌍동이 아들을 무사히 출산했다. 하필 같은 여인숙에서 같은 날 미천한 한 여인이 역시 쌍둥이 아들을 출산했다. 가난해서 쌍둥이를 키울 수 없던 여인에게서 훗날 자기 아들들의 하인으로 쓰려고 두 아이를 사서 같이 길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아들들을 고향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고향에 가자 한다. 그래서 가족과 하인 쌍둥이들을 데리고 배에 올랐다. 


그런데 에피댐넘을 출발하고 얼마되지 않아 배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내는 서둘러 큰아들과 하인 하나를 같이 돛대에 묶고, 이지언은 작은아들과 하인 하나를 같이 돛대에 묶는다. 그리고 자기들은 돛대의 양끝에 몸을 묶으며 코린토스 방향으로 흘러내려간다. 그런데 배가 암초에 걸리고 배가 두 동강이 나면서 아내와 아내쪽에 묶여있던 큰아들과 하인이 떠내려 가버린다. 멀리서 보니 다행히 코린토스 어부가 아내와 큰아들, 하인을 구하는 것을 본다. 자기들은 에피다우로스 배가 구해주어 마침내 아내와 큰아들, 하인이 탄 배를 쫓아가지만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결국 지금껏 행방을 모르고 살고 있다. 그리고 이지언은 시라쿠스로 돌아와 작은 아들과 하인과 같이 살았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18세가 되자 형을 찾아보겠다면서 하인을 데리고 집을 떠났고, 작은 아들 마저 돌아오지 않자 이지언 역시 돌아오지 않는 아들들을 찾아보려고 그리스와 아시아(지금의 튀르키예)를 5년째 헤매고 다니는 중인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코린토스 배에 구출된 줄 알았던 아내와 큰아들, 하인은 에피댐넘 사람들이 구출해 주었는데, 코린토스 어부가 다가와 큰아들과 하인을 강제로 뺏어가 버렸고, 홀로 떨어진 아내는 무슨 사연인지 에페소스에 정착하여 수녀원장이 되어 있다. 


코린토스 어부가 뱄어갔던 큰아들과 하인은 오래전 현재의 에페소스 공작의 숙부이자 전사로 명성이 높았던 메나폰 공작을 도와준 공으로 그를 모시고 에페소스로 와서 정착하였다. 지금은 결혼하여 부인과 처제와 같이 살고 있다. 이 에페소스에 이지언이 온 것이고, 작은 아들과 하인도 마침 에페소스에 막 도착해 있었던 참이다. 


에페소스에 우연히 다 모이게 된 가족은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시장을 중심으로 오고가는 와중에 두 쌍둥이 형제와 두 쌍동이 하인 - 극중 쌍둥이 형제의 이름은 둘 다 안티폴러스이고, 쌍동이 하인 둘의 이름도 드로미오로 이름도 쌍둥이이다 - 이 상대를 착각하며 온갖 오해를 만들어낸다. 상대편 주인을 자기 주인인 줄 알고 A에게 전해야 할 보고를 B에게 보고하고, 또 두 쌍둥이 A와 B도 쌍둥이 하인들을 헷갈려 반대편의 하인에게 일을 명령하면서 일이 꼬여들고 엎치락 뒤치락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1890년 권두삽화로 그려진 쌍둥이 하인 드로미오들




한편 결국 벌금을 마련하지 못한 쌍둥이의 아버지 이지언은 형장으로 끌려가게 된다. 형장으로 가는 길가에 수녀원이 있는데, 마침 수녀원 앞에서 두 쌍둥이 형제와 두 쌍둥이 하인이 수녀원장과 무언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우연히 수녀원 앞에서 모든 가족이 해후하게 되면서 모든 오해와 갈등은 한꺼번에 풀리고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극은 이야기 자체 보다도 이야기가 바탕한 시대적, 정치적 상황이 훨씬 더 흥미롭다. 셰익스피어는 해상권을 장악하려는 영국 정황을 과거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해상 무역을 둘러싼 경쟁 상황에 빗대어 흥겨운 해프닝으로 풀어낸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 en.wikipedia.org

대문 사진은 2008년 캘리포니아의 칼멜에서 열린 셰익스피어 축제에서의 쌍둥이 드로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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