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다시 읽기
* 이 작품은 중앙대 신상웅 교수 번역의 동서문화사 출판본으로 읽었다.
클레오파트라는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알고 있을 정도로 역사 상 가장 유명한 인물 중의 하나이다. 또한 여전히 호기심을 갖게 하는 인물이다. 그녀가 과연 백인이었는지, 흑인이었는지, 그녀의 무덤은 어디에 있는지, 정말 그녀의 코가 조금만 낮았어도 역사가 바뀌었을 만큼 미인이었는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러나 당시의 동전에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으로 보아서는 썩 미인은 아니었던 듯하다. 대신 굉장히 박학하고 지적이며,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뛰어난 화술에, 이성을 매혹케하는 여성적 매력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세계 최강국인 로마제국의 최고 지도자 두 사람을 매료시켜 자국을 위해 정치적으로 그들을 이용할 만큼 정치적 수완이 뛰어났던 여왕이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인생의 후반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1607~08년에 쓴 작품이니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이 세상을 뜨고 제임스 1세가 통치를 시작한지 4~5년 이후이다. 셰익스피어는 여왕의 시대가 그리웠던 것일까?
나는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영화 속 장면이 스쳤다. 나는 1963년에 제작된 영화 <클레오파트라>를 여러 번 보았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클레오파트라를, 렉스 해리슨이 카이사르를, 리차드 버튼이 안토니우스 역을 했다. 로마제국과 이집트의 역사적 고증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내가 공부한 세계사에 견주어 보면 비교적 역사적 고증도 잘 되어 있고, 당시의 로마 제국과 이집트의 화려함, 또 정치가이자 군인으로서의 로마 제국의 집정관의 모습과, 클레오파트라 여왕의 매력을 장대한 스케일로 잘 담아내였다고 생각한다. 영화에서는 클레오파트라에 촛점을 맞춰 카이사르(시저)와 안토니우스를 모두 다루고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는 카이사르가 죽은 이후의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사랑과 양국 관계, 그리고 악티움 해전에서의 패배 이후 두 사람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니 줄거리 소개는 안하겠다. 단 작품에서는 악티움 해전을 전후하여 일어난 긴박했던 일련의 일들을 대단히 압축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내가 평가하는 이 작품
이 작품은 집중이 잘 되는 작품은 아니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전체적으로 많이 어수선하다. 나는 셰익스피어 작품을 읽을 때면 각 작품 마다 등장 인물들의 관계도를 미리 다 정리해 놓고 그 관계도를 보면서 작품을 읽는다.
이 작품에는 로마제국의 세 집정관인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 레피두스, 그리고 반대편의 폼페이우스까지 각각의 진영을 다루면서 각 인물들과 그들의 지지자들, 부관들의 이름들이 끊임 없이 나열된다. 그러니 관계도를 보면서도 사람이 너무 많아 이름 찾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또 하나의 막이 보통 5장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반해 이 작품은 3막이 13장, 4막이 15장으로 구성되어 장의 변환이 빠르다. 각 집정관들의 긴급한 정황을 수시로 보여주려니 이렇게 하나의 막을 짧게 여러 장으로 구성한 것 같은데, 극을 보지 않고 읽는 입장에서는 정신이 없다. 당시에 이 극을 보았을 관객들도 지지자들과 부관들이 누구 편인지 연극이 끝날 때까지 파악하기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우스운 생각을 해봤다. 무엇보다 다른 작품과 비교해 볼 때 대사도 와닿는 부분이 많지 않아서 아쉽다.
그러나 감동적인 부분은 있었다. 안토니우스가 자기를 배신하고 상대편 집정관에게로 넘어간 지지자 아헤노바르부스에게 강단있는 너가 결국 나를 배신하고 다른 쪽으로 넘어가도록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하며 그가 남겨 놓고간 물품과 함께 상금까지 보내주는 안토니우스의 덕량이 돋보인다. 변심한 추종자를 탓하기에 앞서, 그렇게 만든 자기를 먼저 탓하는 것은 지도자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에 감동한 아헤노바르부스는 죄책감으로 결국 자살하고 만다. 자기가 지지하는 지도자가 크레오파트라에 빠져 큰 일을 그르치는 것을 지켜보며 참말도 많이 했지만 바로 잡을 수 없음을 알았고, 또 자기가 모시는 분의 운세가 기우는 것을 보며 결국 자기 갈 길을 찾아가지만 내내 그의 마음 속에는 안토니우스에 대한 존경과 그를 배신한 죄책감이 있었던 것이다. 남자들 간의 속마음이 진하게 표현되는 대목이라 감동적이었다.
사진출처 : en.wikipedi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