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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을 위협하는 나무

뿌리 얉은 나무 바람에 뮐쎄...

by 우 재

오늘 아침 산책길이었다. 오늘은 좀 길게 걷자하고 산책 코스 중 1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코스를 걷고 있었다. 마침 나리와 백합이 한창이라 금빛 백합꽃이 피는 집 근처로 방향을 잡았다. 워낙 색이 예뻐서 매년 그 꽃을 보려고 일부러 그 집 앞을 지나 산책을 한다. 아직 그꽃은 봉우리만 맺혀 있었다. 며칠 더 기다려야할 것 같다.


그런데 그 근처에서 굉장히 시끄러운 소음이 들렸다. 몇 대의 트럭이 도로 위에 세워져 있고, 연둣빛 야광 조끼를 입은 남자 몇 명이 키 큰 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크레인을 탄 남자 한 명이 높이 올라 전기톱으로 나뭇가지를 잘라 아래로 떨어뜨리면 아래에 있던 남자들이 나뭇가지를 분쇄기가 실린 트럭으로 옮겨서 나무를 잘게 분쇄했다. 분쇄된 나뭇가지들은 한 해 동안 썩혀져 내년 봄 정원용 거름으로 팔리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오늘 아침 부러진 나무를 가지치기 하는 모습
5월 20일 날 아침에 본 모습. 큰 줄기가 부러져 집 앞을 덮쳤다.
KakaoTalk_Photo_2025-06-30-15-31-54 003.jpeg 며칠 전 본 모습. 쓰러진 큰 나무 줄기가 집 앞의 벽을 파손시켰는지 파란 천막과 나무판을 둘러놓았다.



안그래도 며칠 전 마침 그 키 큰 나무가 있는 집 앞을 지나다가 벽에 파란 비닐을 덧대어 놓은 것을 보았다. 지난 5월 20일, 내가 사는 오하이오주 애크론에 심한 바람이 불었다. 그 다음날 아침 산책길에 보니 키 크고 둥치가 굵은 나무들이 여러 그루 뿌리채 뽑혀 쓰러져 있었다. 다행히 집을 피해 넘어져 주택에 피해를 주지 않은 곳도 있었지만, 오늘 아침에 본 집처럼 지붕 위로는 넘어지지 않았지만 넘어지며 집 한켠에 피해를 준 곳도 있었다.


20250519_081218.jpg 나무의 둥치가 꺾였다.
20250520_073843.jpg 쓰러진 나무가 인도까지 덮쳤다.
20250520_080906.jpg 쓰러진 가로수가 바로 옆의 한 주택 정원을 덮쳤다.



학창시절, 세종대왕 통치기에 발간된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뿌리 깊은 나무 바람에 아니뮐새..." 라는 구절을 배운 기억이 난다. 나무가 자라면 자연히 둥치도 커지고 뿌리도 깊어지는 줄 알았다. 그러니 뿌리가 깊으면 웬만한 바람에는 끄떡도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미국에 살면서 보는 나무들은 키와 덩치에 비해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가 많았다. 쓰러진 나무들을 보면 저 키와 덩치에 어떻게 저 뿌리로 버텼을까 싶은 나무가 대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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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기름지면 나무들이 뿌리를 밑으로 내리지 않고 옆으로 뻗는다고 하더니 그래서 그런건지, 뿌리 깊지 않은 나무들이 센 바람에 훌렁훌렁 넘어져 있는 것을 보면 무서웠다. 실제로 뉴스에서도 바람에 쓰러진 나무가 자동차를 덮쳐 차가 찌그러져 있고, 큰 나무가 지붕 위로 넘어져 집이 풍비박산 난 사진들을 종종 보았다.


이렇게 뿌리 채 뽑힌 경우도 있지만, 굵은 가지가 찢어져 나무의 속살이 소고기 찢어놓은 것 처럼 결대로 찢어져 쓰러져 있기도 한다. 큰 나무의 잔가지들이 심한 바람이나 비나 눈으로 인해 부러져 무수히 떨어져 있기도 한다. 그러니 바람 부는 날은 산책 중에도 자꾸 위를 쳐다보며 경계심을 갖게 된다.


이렇게 쓰러진 나무들을 치우는 것은 온전히 집주인의 부담이 된다. 쓰러진 가로수야 시에서 치우겠지만 오늘 아침에 본 집처럼 트럭 몇 대와 남자 4명이 와서 쓰러진 나무를 치우고, 부러진 가지들의 끝을 정리하고, 다른 위험성 있는 가지들도 쳐내려면 아마도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안그래도 인건비가 비싼 나라인데 거기에 트럭 여러 대가 왔으니 그 집 주인은 꽤 큰 돈을 지불했을 것이다.


종종 이런 바람으로 인한 피해와 별개로 정원의 거목을 자르는 집도 있다. 처음에는 무슨 사연으로 수십년을 함께 한 나무를 자를까 하고 안타까워 했는데, 나중에 잘려나간 나무를 보면 나무 안이 썩어 언젠든 쓰러져도 무방하다 싶은 나무들이 많았다. 그런 것이 지붕 위로라도 쓰러지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 문화에서는 마당에 나무를 심지 않았다. 마당은 맨 땅으로 남겨놓고 사방 둘러 담장 가로 꽃이나 나무를 심되, 나무도 키 큰 나무를 심지 않았다. 지붕 높이를 넘어가는 나무는 심지 않았다. 맨 땅으로 여름의 햇살이 쏟아지면 땅은 뜨겁지만 대청 마루를 관통하여 뒷동산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마당의 뜨거운 열기와 대류현상을 일으키며 찬바람을 일으켜 한 여름에도 덥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처럼 산이 많지 않다. 동쪽에 애팔레치아 산맥, 서쪽에 로키 산맥과 같은 큰 산이 몰려 있고, 가운데는 산이 별로 없다. 내가 사는 애크론의 애크론은 "땅이 높다"는 의미이다. 산 보다 땅이 높다. 그래서 밸리는 발달해 있지만 땅 위로 솟은 산이 없다. 그러니 바람 불어오면 방패막이가 되어줄만한 지형이 없다. 그런 지형이고 보니 집을 짓는 방식과 집의 방향을 잡는 것을 우리처럼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평평한 땅과 너른 정원에 모두 잔디를 깔고, 아름드리 나무가 심겨있는 집도 많다. 그래서 보기는 좋다. 그러나 종종 센 바람이 부는 지형적 특성상 키 큰 나무가 갑자기 위협적인 흉기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로 인한 피해액은 고스란히 집주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래저래 주택을 보유하고 유지관리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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