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남성들의 멋부림
아이패드로 조선시대 그림들을 베껴 그리다 보면 눈으로만 감상할 때는 보이지 않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특히 남성들이 얼마나 의상에 신경을 썼으며 멋을 부렸는지가 보인다. 물론 평민이나 노비로 보이는 사람들의 행색은 갖춰입긴 했으나 평범하다. 하물며 노비인지 제대로 갖춰입지 못해서 짠한 모습들도 있다. 그러니 남성들의 멋부림은 그럴 여유가 있는 부유한 양반층에 한정된 이야기이다.
양반들의 멋부림을 볼짝시면, 들고 다니는 부채에는 색이 있는 끈을 매달아 사용에 편리함을 줌과 동시에 멋스러움을 더해 악세사리 소품으로 사용했음을 볼 수 있고, 또 긴 담뱃대에도 장식을 하여 멋을 낸 것도 있다. 도포에는 붉은 색 계열의 세조대(細條帶, 도포끈)를 허리 보다 올려 매어 도포의 풍성함을 잡아주면서도 멋스러움을 더한다.
그러나 남성의 멋내기 중에서 가장 압권은 갓이 아닌가 싶다. 갓에는 갓을 고정하는 검정색 끈이 양쪽에 달려 있어서 턱 아래에서 묶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풍속화를 보면 이 갓에 진귀한 보석류를 이어 만든 줄을 매달아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이 많이 등장한다.
있는집 남성들은 여성들 못지 않게 머리 치장에 공을 들였음을 역사 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상투를 튼 후 고정하는 동곳은 금, 은, 옥 등의 보석을 쌌고, 상투를 튼 후에 삐져나오는 머리카락을 막기 위해서 쓰는 망건에는 이마 가운데 부분에는 보석류의 풍잠을 달고, 양쪽 귀 근처의 관자에도 보석을 달아 장식을 했다. 갓을 쓰면 감춰지는 부분들이지만 안이 비치는 갓의 특성 상 상투와 망건에 사용한 보석이 슬쩍 슬쩍 비쳐나오니 이만 저만 멋진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게다가 갓에도 보석류를 길게 줄로 매달아 걸을 때면 살짝살짝 흔들리게 했을 것이니 남성들의 악세사리로 이만큼 멋진 것이 없었지 싶다. 거기에 흰색이나 옥색의 도포에 빨간색의 세조대를 허리 보다 올려 묶어 긴 세조대 끝에 매달린 술이 걸을 때마다 찰랑찰랑 흔들렸을테니 멋도 멋도 이만한 멋이 없었을 터이다.
신윤복의 그림 중 <청금상련>을 보면 이런 남성들의 멋부리기가 아주 잘 묘사되어 있다. 그림 중 서있는 남성을 보면 길게 늘어뜨린 갓끈과 가슴 부근까지 올려서 맨 세조대를 볼 수 있다. 신고 있는 신발도 두가지 색을 써서 마치 투톤으로 만든 여성용 구두를 보는 것 같다. 또 한 사람, 앞에 앉아서 기생의 거문고 연주를 듣고 있는 남성을 보면 당시 갓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볼 수 있다. 갓끈을 돌돌 말아 귀에 걸고 있다. 이것이 당시의 유행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때론 길게 늘어뜨린 갓끈의 흔들림이 불편하여 이렇게 말아서 귀에 걸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김홍도의 그림 <나들이>에도 갓끈을 말아 귀에 건 모습이 등장한다. 일가족이 어딘가로 가고 있는 중이다. 어머니와 한 아이는 소를 타고 있고, 아버지는 다른 아이를 업고 그 뒤를 따르고 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갓끈을 돌돌 말아 귀에 걸고 있다. 아이를 업고 걸을 때마다 갓끈 흔들리는 것이 불편했는지 이렇게 말아서 귀에 건 것 같다. 아마도 도포도 걸을 때 불편해서 허리까지 올려 묶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긴 갓끈도, 긴 도포도 아이를 업고 걷기에는 불편하니 이렇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단지 나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아버지 등에 업힌 아이에게 눈길이 멈춘다. 갓의 챙이 넓다 보니 뒤에 업힌 아이가 아버지 등에 착 달라 붙지를 못하고 갓에 걸려 엉거주춤 등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불편해 보인다. 갓을 좀 앞으로 기울여 써서 뒤의 아이에게 불편을 주지 않았으면 좋았으련만 폼에 살고 폼에 죽는 조선시대 남성으로써 뒤의 아이에게까지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가 보다.
나는 사극을 볼 때면 여성들 한복의 우아함에도 매료되지만 남성들 한복에도 감탄한다. 이런 디테일한 멋부리기가 대단히 화려하면서도 격조가 있기 때문이다. 일찌기 우리 한복의 우아함과 멋스러움을 알았지만, 요즘 점차 한복의 멋스러움이 세계에 더 알려지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