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meme)정치와 타이포그래피의 도전
흔히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들 한다. 내가 직접 내 손으로 살아가는 사회의 구조를 다듬고 만들어갈 대표를 뽑는 일이니만큼 과연 그 열기는 실로 대단하다. 선거철이 되면 요란한 선거 차량들이 골목 곳곳을 누비고, 눈 닿는 곳마다 후보의 한마디를 담은 현수막이 걸린다. 온라인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다. 굳이 선거 관련 뉴스를 찾아보지 않아도 될 정도다. SNS 피드에서 사람들의 탄식이나 환호로 어떤 후보가 어떤 행보를 보였는지 대강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바로 얼마 전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치렀다. 투표 결과는 박빙이었다. 역대 최저 투표차로 대통령이 결정되었다. 덕분에 오후 7시 시작된 선거 방송을 새벽 4시까지 지켜보았다. 생각해보니 유튜브나 넷플릭스나 애플 TV처럼 OTT 서비스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은 요즘 TV를 이렇게 오래 붙잡고 있던 건 오랜만이기도 했다. 이 말을 뒤집으면 지상파 3사 방송국(MBC, KBS, SBS)에게 있어 선거 개표 방송은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광고로 수익을 챙길 절호의 기회. 그 때문인지 몇 년 전부터 이들은 개표 방송 차별화를 꾀하며 새로운 그래픽 테크닉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단순하게 후보자의 사진을 활용하던 과거와 달리 후보들의 다양한 동작을 미리 촬영하여 CG에 입히는 일은 어느새 표준이 되었다.
이들 중 가장 돋보이는 방송사는 SBS다. 이들은 지난 대선부터 ‘투표로'라는 얼굴 없는 3D 캐릭터를 앞세워 적극적으로 개표 방송을 브랜딩하고 있다. 또 이와 별개로 다양한 콘셉트의 영상을 기획, 제작해 다소 밋밋하고 지루할 수 있는 개표 소식 안내에 활용한다. 그중 올해 화제가 되었던 영상은 영화 ‘매드맥스’와 에스파의 ‘넥스트 레벨’을 패러디한 영상이었다.
영상 속 3D 렌더링으로 빚어진 후보들이 광대한 사막을 튜닝한 자동차나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다 중간중간 ‘넥스트 레벨' 포인트 안무를 춘다. 이들의 매끄러운 듯하면서도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에서 심즈로 다양한 유명인을 만들어내는 유튜버 ‘심즈 아무나(AMUNA)'를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이중 삼중으로 상징적 이미지가 맥락이 사라진 채 중첩된 결과물은 인터넷 짤(meme) 문화를 그대로 답습한 결과물이다.
짤 문화를 경유하여 대통령이 될 후보를 춤추게 하며 위치를 전복시켜 쾌감을 선사하는 것, 패러디를 통해 선거를 극화하는 것 그리고 짧은 시간 내 생방송에 내보내도 될 만큼 높은 퀄리티의 영상을 제작해 내 이 농담에 진심임을 어필하는 것. 이 모든 장치는 웃음을 자아내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이 웃음을 통해 SBS는 인터넷 문화를 이해하는 시청층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사람들은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트위터 유저들은 이 영상에서 중도 사퇴한 후보에게 ‘중도 사퇴'라고 써진 신문지가 날아가 붙게 한다거나, 폭발사고를 삽입해 그가 사라지게 만든 부분을 짚어내며 CG팀의 고생과 분노를 짐작하는 웃음과 함께 재확산 시켰다. 이러한 반응은 또다시 허핑턴 포스트 같은 미디어에 포착되어 기사화됐다. 방송사에서 인터넷 문화를 적극 답습하는 이유는 ‘버즈(buzz)'를 만들어내는 능동적 시청자의 존재 때문이다. 광고를 팔기 위해서는 시청률과 화제성이 매우 중요한데, 이 능동적 시청자들은 두 가지를 모두 가져다준다.
영상을 보고 어쩔 도리 없이 웃으면서도 나는 많은 것이 ‘망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었다. 나는 정치인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정책을 어떻게 고민하고 있으며 사회 구조에 대해서는 어떤 비전을 가졌는지 궁금했다. 양극화를, 기후위기를, 외교를, 차별과 배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궁금했다. 가까이로는 저런 영상을 만드는데 비정규직으로 동원되어 소진되어 버리는 디자이너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지 궁금했다. 그러니까 나는 웃기 전에 일단 제대로 된 정치인이 보고 싶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요란 벅적했던 선거 기간 동안 그런 모습을 보기는 힘들었다. 유력 후보들조차 선거 유세 기간 인터넷 문화를 답습하며 화제를 만드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 당선 된 윤석열이 가장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주었다. 그의 선거 홍보물에는 ‘정권 교체’ 외에는 아무런 메시지도 없다시피 했다. 그걸 강조하기 위해 ‘어퍼컷 제스처’를 한 자신을 스스로를 밈화 하고, 공약을 하나도 담지 않은 특산물 홍보물을 공개 모집하고, ‘왜’와 ‘어떻게’가 빠진 7글자 공약을 내세웠다. 특별히 더 ‘망한’ 지점은 그가 철저하게 우익 인셀 남성 중심의 인터넷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선거판을 상대로 한 트롤링(trolling)이나 다름없었다. 유력 후보라는 그의 위치를 등에 엎고 트롤은 과대대표되어 왜곡된 여론을 형성했고,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이들은 주권자로 고려조차 되지 못한다는 모욕감과 답답함을 느껴야 했다.
이러한 인터넷 문화의 도입을 표면적으로는 소통을 위한 행보로 읽어낼 수도 있다. 일반 시민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나는 이러한 현상을 공통적으로 거대 권력이 인터넷 문화를 전유(appropriation) 한 것으로 읽는다. 젊은이가 정치의 주체로 호명되기보단 겉치장에 이용당하는 현실을 떠올려보면 이런 '요즘 젊은이들의 말'의 선거 정치적 용도는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니 인터넷 문화로 상징되는 ‘젊은 언어’는 그곳에 있지만 이들의 삶이 더 나아질만한 구조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 ‘젊은 언어’의 과실은 정치인들의 몫이고, 현실의 문제는 파편화 된 체 정치적 안건으로 떠오르지 못한다.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미지를 생산하는 주체들은 이 인터넷 문화의 당사자일 확률도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전유보단 참여로 이해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한 발짝만 떨어져 자신들이 생성한 이미지를 둘러싼 정치와 구조를 살펴보는 건 어떨까? 그 이미지들이 결과적으로 어떤 효과를 가지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말이다. 다양한 도구들로 누구나 쉽게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된만큼 나는 이 책임이 직업인으로서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모든 이미지 생산자들에게 해당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논의가 시작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는 이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수준에조차 가 닿지도 못했다는 점이 특별히 우울한 지점이었다. 트롤링에 대응하느라 대부분의 에너지가 소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낙담만 하고 있을 생각은 없다. 동시에 내 시야에 들어오는 다른 사례들이 있으니 말이다.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이들의 움직임을 보고, 전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증폭시키는 일일 테다. 능동적 시청자들이 그랬듯이 말이다.
첫 번째로 이야기하고 싶은 사례는 젊은 정치인 에이전시를 표방하는 ’뉴웨이즈’다. 뉴웨이즈는 다가오는 지방 선거를 위해서는 지역구별 20~30대 후보들을 모아 소개하고, 이들의 정책을 살펴볼 수 있도록 콘텐츠를 정리하여 제공한다. 후원을 이끌어 내기 위한 캠페인도 진행 중이다. 후보들을 ‘플레이어’로 지칭하는데서 아이디어를 따와 ‘Play new scene’이라는 후보 홍보 캠페인을 진행 중인데 나이키 같은 스포츠 브랜드의 톤 앤 매너를 떠올리게 하는 점이 흥미롭다. 그러니까 20-30대에게 친숙한 마케팅 언어를 활용하여 젊은 정치인의 필요성을 어필하는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녹색당 마포구의원으로 출마한 이숲 후보다. 그 역시 젊은 후보로 뉴웨이즈에 소개되기도 했다. 기후정의 의제를 가장 앞에 세운 이 후보는 쓰레기가 배출되지 않도록 업사이클링 선거 도구를 만드는 등 정치인으로서 자신의 관점을 드러내는 행동을 한다. 그 실천은 그가 활용하는 이미지에 반영된다. 그래서 이 후보가 활용하는 이미지는 단순하거나 손때가 묻어 있다. 깔끔하고 똑떨어지는 그래픽 언어를 활용하는 뉴웨이즈와 비교하면 정 반대의 접근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 번째 사례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홍보물들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국회가 20년이나 지지부진하게 미뤄 온 차별금지법을 이제 더는 나중으로 둘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활동한 기간도 길고, 다양한 연대체의 활동을 모은 곳이기 때문에 위 두 사례가 특정한 통일된 시각 언어를 사용한다면, 이 사례에서는 훨씬 다채로운 시도들을 살펴볼 수 있다. 와중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시위나 단식 같은 전통적인 운동의 언어에서 비장함을 빼고 즐겁고 역동적인 활동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활동을 홍보한다기 보다도 차별금지법이 도입할 새로운 세상의 상을 홍보하는 것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차별과 배제 없이 다양함이 인정받는 세상 말이다.
이렇게 세 가지 사례를 두고 생각해보니 2017년 대선이 끝나고 쓴 글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팬덤 정치를 흥미롭게 보면서도 당시 대통령 당선인 지지자들이 생성하는 이미지에서 문자의 자리가 없음을 지적했었다. 여기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됨을 관찰한다. 주류 선거방송용 영상이나 윤의 캠페인에서 타이포그래피는 극도로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거의 장식에 불과했지만 뉴웨이즈, 이숲 후보, 차별금지법제정연대의 사례에서는 타이포그래피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 전면에 등장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의 건강한 정치적 참여를 위해서는 투명하고 명확한 정보의 제공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 너무나 복잡한 맥락을 가진 다양한 개인이 얽혀 구성된 곳이라는 점이다. 이 복잡함과 다양함을 어떻게 투명하고 명확하게 전달할 것인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나는 디자인과 정치는 이 쉽지 않음을 기반으로 하여 만나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쉽게 보이려 하지 말고,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말하면서.
이 원고는 타이포그래피 및 시각문화 프로젝트 The Type의 소식지 <T45>(2022년 5월 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