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인아 Sep 10. 2021

동물다운 동물의 이미지를 찾아서 - 1

나는 왜 보고서를 디자인하다 캠페인을 기획하게 되었는가...

이 글은 동물권 행동 카라의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의 디자인 작업기입니다.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한 디자인을 위해 많은 분들과 협업하며 제 인식도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평소 귀여운 동물 이미지를 보다가 어딘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던 경험이 있거나, 동물이 등장하는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면 이 가이드라인의 일독을 권합니다. (다운로드하기 https://www.ekara.org/report/ekara/read/13679 )


1.마크니와 나


나의 반려고양이 마크니가 우리 집에 입양 온 결정적인 계기는 주둥이에 있는 태극무늬였다. 음과 양의 조화를 절묘하게 이룬 이 멋진 무늬 때문에 평소엔 관심도 없던 턱시도 고양이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원래는 '디자이너의 집에 어울리는 고양이'인 카오스나 벵갈을 고려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하지만 마크니를 임시보호처에서 만나기로 한 날, 나는 실망감을 감추느라 애써야만 했는데 실제로 본 마크니는 정말 못생겼었기 때문이다. 마침 마크니 옆 자리의 좀 더 귀여운 고양이가 연신 냐옹 거리며 내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마크니를 입양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계속 머리를 굴렸다. 마크니는 당시 2살, 내가 데려간다면 앞으로 10년은 족히 더 나와 함께 살 친구였다. 그래서 내 맘에 꼭 드는 고양이를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은연중에 나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털평’을 하며 인테리어 소품처럼 고양이를 고르는 건 구린 일이라는 걸. 그때 나는 ‘구린 말을 어떻게 안 구리게 하지?’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답을 찾지 못했고 구린 말도 할 수 없었던 덕분에 다행히도(!) 나는 마크니와 함께 살게 되었다. 자신의 미래가 결정된 순간인데 관심이 있기는 한 건지, 마크니는 특유의 뚱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크니(11세 추정)


마크니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운 고양이다. 우리를 만나게 해 준 마크니 주둥이의 태극무늬도 멋지지만, 반양말을 신은 발도, 나에게 들이미는 엉덩이도, 쓰다듬을 때마다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귀도, 감으면 없어지는 눈도, 작은 콧구멍도, 누운 포즈도, 앉은 포즈도, 선 포즈도, 걷는 포즈도, 뛰는 포즈도 다 귀엽고 멋지고 사랑스럽다(이 세 가지 감정이 동시에 올라온다). 그리고 엄청 수다쟁이인데, 감정표현이 확실하고 바라는 바도 정확히 전달할 줄 아는 천재다. (진짜 내가 집사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마크니의 털은 유독 비단결 같이 곱고 포근하다. 얼마 전에는 사진 정리를 하다가 집에 막 왔을 무렵의 마크니의 사진을 오랜만에 보았다. 마크니의 모습은 9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그대로였다. 변한 건 내 시선이었다.


마크니와 함께 하며 타임라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스쳐 지나가는 동물 사진도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이유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지만 ‘힐링짤’로 자주 등장하는 몇 유명한 동물 계정은 보는 게 불편해서 타임라인에 뜨지 않도록 뮤트 시켜 두기도 했다. 왜 누구나 좋아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에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걸까? 동물권 행동 카라의 동물 출연 미디어 가이드라인 책자 “어떠한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를 디자인하며 그 이유를 배울 수 있었다. 



2. 미디어 속 동물들은 자주 해를 입습니다


사단법인 동물권 행동 카라(KARA,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는 동물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동물들의 복지와 권리를 대변하는 다양한 현장 및 정책 활동들을 해온 비영리단체다. 2020년 카라는 미디어 산업에서의 동물권 현황을 조사했다. 먼저 미디어에 등장하는 동물의 모습, 미디어를 만들어가는 현장에서의 동물권, 그리고 동물이 등장하는 미디어를 소비하는 인식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내게 온 의뢰는 이 연구의 보고서 격이 될 책자였다. 카라는 누구나 접근하기 쉽도록, 너무 딱딱한 연구보고서처럼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것은 완벽히 보고서용으로 만들어진 원고와 조사 결과 데이터들이었다. 


보고서 내용은 꼭 알려져야 할 중요한 현실을 담고 있었다. 제작현장에서 동물들은 낯선 환경에서 장시간 기다리며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고, 촬영을 위해 구매되거나 포획된 동물인 경우 촬영이 끝나고 버려지기도 했다. 모니터링단을 꾸려 유튜브 영상을 모니터링한 결과에서는 '고양이를 못 자게 해 보는 영상', '미로에 갇힌 강아지' 등 동물학대가 우려되는 정황이 다수 확인되었고 동물을 신기한 오락의 대상이나 희귀한 소품, 살아있는 먹거리로 취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댓글은 8%에 불과했다. 유튜브는 조회수, 좋아요 수가 바로바로 반영되는 플랫폼이다. 결국 소비자인 시청자/관객이 이런 영상들을 즐기기만 한다면 동물 학대 영상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를 바로 증명하듯 시민 대상 인식 설문조사에서는 83%가 반려동물 관련 영상을 시청했고, 가장 큰 이유는 귀여워서(46%)였다. 


보고서에 실린 미디어 제작 환경에서의 동물권에 대한 설문 응답 내용(동물권 행동 카라, 2020)


카라의 요구대로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했다. 글과 숫자 중심의 내용이 많은 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동물 이미지를 시각 요소로 활용해야겠다는 판단이 들었고 이는 곧 '동물을 대상화하지 않는 이미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는 곧 지금까지의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난 새로운 동물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문제는 그에 시간이 든다는 점이었다. 이 시간의 단위는 (흔히 디자인이나 창작에 주어지는) 며칠, 몇 개월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동물을 대상화하지 않는 관점을 길러야 하고, 요구해야 하며, 실험하고 토론해야 하는 일이며 영원히 결론이 나지 않는 일일 수도 있다. 내게는 1.5개월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동물권 행동 카라는 2002년부터 이런 일의 기반을 만들어왔으니,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2편에서 계속...) sceneryoftoday.k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