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만 해도 비가 너무 많은 날에 산책을 나가고 싶을 때는 십여 년 전 구매했던 아쿠아슈즈를 신고 나갔다. 하지만 아쿠아슈즈는 발바닥에 쿠션이 없어서 오래 산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올해 장마철이 시작될 무렵 남편은 내게 크록스 신발을 하나씩 사서 신자고 하였다. 비가 내리는 날 산책을 나갈 때 크록스를 신고 나가자는 취지였다.
물건을 살 때마다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 이 집 마누라는 다른 건 몰라도 먹는 것에 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은 하면서도, 남편과 단 둘이 커피숍에 들어가는 것도 돈이 아까워서 연중행사로 추진할 정도다. 그런 마누라가 남편의 말을 듣고 덜컥 크록스를 살 리가 만무했다.
"아이휴, 집에 크록스가 두 개나 있는걸요. 당신 발에 조금 크긴 하겠지만, 일단 한 번 신어봐요~"
큰 아들이 병원에서 근무할 때 신었던 크록스가 우리 집 신발장에 두 개나 들어 있는 걸 떠올리며 마누라가 말했었다. 그리고 어제는 호우주의보가 내리길래 큰 아들의 크록스를 남편 발에 장착시키고 드디어 크록스 첫 산책을 나가게 되었다. 발볼이 넓고 발등이 높아서 자신의 사이즈보다 언제나 5mm 큰 신발을 신는 남편이지만, 크록스의 특성상 큰아들의 신발은 남편 발에 너무 커 보였다. 마누라는 크록스는 생긴 게 원래 이런 거라며 남편의 발걸음을 응원했다.
나는 며칠 전 어머니 여름 신발을 하나 사려고 쿠팡에서 주문했던 검은색 니트 운동화를 신고 따라나섰다. 다른 사람의 반품 상품이 조금 더 저렴해서, 어머니 발에 안 맞으면 내가 빗물놀이용으로 신으려는 계획을 가지고 구매했던 제품이었다. 무지외반증이 있는 어머니에게는 며칠 후 한 사이즈 큰 걸로 인디언핑크 색상으로 다시 사다 드렸다.
남편은 조금 덜럭거리는 크록스를 신고, 나는 때가 타도 티가 나지 않아서 마음 편안한 검은색 니트 운동화를 신고 진천 농다리로 향했다. 농다리 앞에 주황색 조끼를 입은 안전 요원들이 출입 금지 통제를 하고 있었다. 비는 잠시 그치고 있었지만, 농다리 돌의 상판의 바로 아래까지 하천의 물이 불어나 있었다. 산에서 빗물에 쓸려온 흙들이 하천을 따라 이동하며 하천은 온통 황토물로 뒤덮였다.
출입금지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안전 요원들의 등장 이전에 농다리를 건너 저수지 쪽으로 들어갔던 관광객들이 몇몇 있었던가 보다. 다시 농다리를 건너야만 이편 주차장 쪽으로 나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안전 요원이 농다리 쪽으로 걸어가더니, 물이 차오른 농다리 가운데서 관광객들과 몇 마디 말씨름을 하였다. 출입 통제 지침을 무시하고 농다리를 건너간 사람들이 안전 요원 조끼를 입은 아저씨와 함께 안전하게 돌아왔다.
하천 범람의 위험으로 농다리를 건너지 못한 우리 부부는 한 번도 둘러본 적 없는 반대편을 평소보다 천천히 걸었다. 먹구름 뒤에서 태양의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아서 나무 그늘이 없는 이쪽 편도 걷기에 나쁘지 않은 날씨였다. 비 오는 날이 아니면 가보지 않았을 이쪽 편의 탐색을 적당히 마치고, 우리는 농다리에서 이십여 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백곡 저수지로 다시 차를 몰았다.
저수지 근처에 다다랐을 때, 깔끔한 외관의 4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펜션 사업을 병행하는 베이커리 카페의 간판을 보자 남편은 한 마리 참새가 되었다. 우리는 저수지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카페의 3층에 앉아 식빵을 뜯으며, 오랜만에 둘이서 마주 앉아 비 오는 날의 풍경을 감상했다.
다리가 길쭉길쭉하고 앳된 한 무리의 젊은 여성들이 물에 빠져 흠뻑 젖은 채로 몸을 웅크리며 재빨리 펜션으로 걸어갔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서 이야기하던 젊은 외국인 남자들이 낡은 승용차에 우르르 올라타더니 차를 몰고 사라졌다. 중앙아시아에서 일하러 온 근로자들 같았다. 카페 뒤편에 붙어있는 펜션에서는 수영장에서 비를 맞으며 공놀이를 하는 청춘 남녀의 깔깔대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청춘의 모습들은 어느 장소에 있어도 한 폭의 그림 같아서 비 오는 날의 수채화를 연상케 하였다. 그대로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카페에 오래 앉아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 빵과 차를 다 먹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찰하러 나간 사이, 나는 카페에서 호젓하게 비 내리는 호수의 정취를 만끽하였다. 남편을 찾아 카페에서 나오자 빗소리가 거세졌다. 우리는 나지막하게 환호성을 지르며 댐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건넜다. 비록 우산은 썼지만, 이제야말로 제대로 빗놀이를 즐길 타이밍이었다.
댐의 아래로 산수공원이 내려다보이고, 베트남 근로자들이 우중에도 체육대회를 소란스럽게 진행하고 있었다. 엠프와 마이크와 진행자와 오십여 명의 사람들과 음식 등이 갖추어진 큰 행사로 보였다. 초록의 잔디구장에서 축구공을 패스하며 그들 언어로 경기하는 동안 빗줄기는 더욱 굵어지고 있었다. 지붕이 있는 스타디움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경기를 지켜보며 큰 소리로 뭐라고 말을 하고, 몇몇은 아랑곳하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도 같았다. 그 어느 편도 아닌 우리는 맨발로 땅 위에 서서 잠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화로웠다.
댐 위로 펼쳐진 길은 아주 작은 알갱이 돌들이 깔려있는 흙길이었다. 남편은 덜럭거리는 크록스를 벗고 나는 새로 산 니트 운동화를 벗어서 손에 들었다. 맨 발 위로 쏟아지는 비를 맞고 서서, 우리는 시답잖은 몇 마디 말을 주고받으며 킬킬거렸다. 검은 먹구름이 하늘에서 거세게 비를 쏟아부었다. 빗방울들이 땅바닥에 모를 심듯이 쑥쑥 박히다가 튕겨졌다.
백곡저수지와 맞닿은 산 위로 옅은 회색빛 운무가 신비롭게 피어났다. 호수 위로 내리는 빗물이 음악이 되어 나를 잠시 과거로 데리고 갔다. 수채화 같은 추억 속에 아련한 청춘의 내 모습이 빗물 속에 흔들리고 있을 때였다.
"당신은 좋은 남편 만나서,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삶을 살고 있네~"
비 오는 날의 수채화 같은 삶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비 오는 날의 수묵화 같은 풍경을 눈앞에 두고 걸으며 인생의 모든 것이 아름답다는 것을 새삼 되새긴 건 맞았다. 젊을 땐 파스텔 톤의 수채화가 감성적으로 다가오더니 나이가 들면서는 수묵화의 멋스러움이 더 운치 있게 다가오기도 하는 걸 보면, 인생은 그때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하다. 현재는 추억을 소환하고, 추억은 다시 우리를 '지금'이라는 삶으로 소환한다.
그나저나 장마철도 중간인데, 남편 발에 맞는 크록스를 한 켤레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것이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