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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라지 Jul 16. 2024

그 여름의 노래방

나는 그리스에 가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리스의 역사와 문화, 철학과 정신에 대해선 아주 조금 아는 게 있는 것도 같다. 아마 서양철학을 공부하면서부터 갖게 된 알량한 지식일 게다.


뒤늦게 서양철학을 공부했다곤 하지만, 그날 밤 노래방에서 떠오른 베르그송의 철학을 공부해 본 적은 없다. 베르그송을 언급한 다른 철학자들 사이에서 간간이 그의 철학을 접해 보았을 뿐, 직접적으로 베르그송의 작품을 제대로 파고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불현듯 그날 밤 내 머릿속엔 베르그송의 이름이 떠올랐었다.


그날 저녁은 비가 내렸다. 폐경기 여성들의 전화를 받고 우리와 아주 가끔 만나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나누었던 남성 친구가 또 다른 남성 두 명을 대동하고 치킨집에 나타났다. 각 팀이 서로 다른 데서 술을 마시다가, 두 팀이 한 테이블에서 모이게 된 것이다. 비록 폐경기 여성들이긴 해도 여전히 여성으로 남고 싶은 여자 세 명이 낯선 남성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없이 이어갔다.


어젯밤 방송에서 신선한 기름으로 튀겨낸 옅은 미색의 후라이드 치킨을 보다가 치킨이 먹고 싶었는데, 그것과 대비되는 짙은 갈색의 치킨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치킨집 사장님도 우리와 얼추 비슷한 연배로 보였다. 그녀도 폐경기를 겪다 보니 기름을 교체하는 걸 깜빡 잊어버렸을 수도 있다. 물질의 구매 가치를 정신적 향유보다 진중하게 생각하는 내 입으로만 거무튀튀한 치킨이 연신 들어갈 뿐, 다른 신체들의 입 속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서양 철학 전공자들에겐 고대 그리스 철학의 "덕(virtue, 혹은 arete)"에 관한 논의는 중요한 연구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한 이유로 그리스에 가본 적은 없으나 고대 그리스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덕(virtue, 혹은 arete)"에 관해선 덕분에 나 역시 제법 읽고 들은 게 었다.


구태여 동서양을 막론하고 "덕"의 기원을 따지고 들 필요도 없이, 본시 "덕"이란 지배 계급의 논리의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뭇 민중들을 다스리기 위한 정치적 논리는 언제나 종교와 도덕과 관습을 통해 "순종하는 인간형"을 배양하는 것이었을 테니 말이다.


우리는 그렇게 "덕"을 함양하는 인간으로 교육받고 자랐다. 육체의 쾌락을 좇지 말고 정신의 쾌락을 추구하며 중용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자고로 교육받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고귀한 품성이라고 배웠던 것 같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 시대를 경험했던 우리 세대는 더욱 그러했다.


그런 시대적 배경과 똑같은 교육 풍토 속에서 성장했지만, 나는 정신적으로 저항만 하다가 늙어버린 사이에 그녀들은 몸으로 사회의 관습에 도전하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녀들이 노래방에서 자신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즐거움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고, 낯선 남자 두 명은 기겁을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 마디로 그녀들은 "덕성스럽게" 놀지 않았다. 노래방에서 그녀들은 그리스인 조르바였으며,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디오니소스의 환생이었다.


폐경기 여성들의 신체 능력에 대해 사회적 통념을 가지고 있었던 남성들의 머릿속에 그날 밤 어떠한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을지는 알 수 없지만, 여성 1은 귀걸이 한쪽을 분실했으며 여성 2는 왼쪽 네 번째 발가락 골절상을 입었다. 여성 3(me)은 목감기로 노래 한 곡도 완주를 못했으나, 깐깐한 총무의 사명은 어김없이 다했다.  


베르그송은 우리의 기억을 '습관-기억'과 '이미지-기억'으로 나눈다. '습관-기억'은 습관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노력의 반복에 의해 획득된 것이라고 하였다. 신체의 모든 습관적인 운동처럼 동일한 순서와 동일한 시간을 점유하는 '습관-기억'의 대표적인 예로 베르그송은 '암기'를 들었다. 예외성이 없는 여성 2의 노래방 향유 태도는 '습관-기억'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여성 1의 향유는 베르그송의 '이미지-기억'을 연상케 한다. '이미지-기억'은 어떠한 습관적인 특성도 갖지 않은 채 매 순간 상이한 기억들을 구성하는데, 베르그송은 '이미지-기억'의 대표적인 예를 '독서'라고 하였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미친 듯이 자기의 신체를 사용하여 즐기는 여성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그 여성들이 메노포즈 여성들이라니, 그날 밤 그 자리에 있던 남성들은 어쩌면 운이 좋았는지도 모르겠다. 돈을 주고도 못 볼 광경을 목도했으니 말이다. 무작정 움직이는 신체와 돈을 받고 움직이는 신체에는 '자유'와 '구속'이라는 엄연한 명제의 차이가 존재하는 법이므로, 그들은 신기한 체험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며칠 뒤 여성 1의 분실된 줄로만 알았던 귀걸이는 그녀의 집 욕실 귀퉁이에서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여성 2의 부러진 발가락이 잘 붙어서, 여성 1과 여성 2가 태항산 트래킹 여행을 무사히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성 3은 또 이번 여름에도 늙은 부모님을 핑계로 어디로도 떠나지 못하고 청주 근처만 뱅뱅 돌고 있다. 언젠가 여성 3은 해방된 인간의 원형이며 혁명적으로 아름다운 인류(人類) 조르바를 탄생시킨 그리스에 꼭 한번 가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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