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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님 Jul 18. 2022

어쩌다 핵인싸가 쭈구리가 되었나

#수험생활 19

“뭐야, 햇님이언니 완전 핵인싸였는데 왜 이렇게 됐어?”


쫄보처럼 댓글도 닫아놓고 정체를 숨긴 채 혼자 글을 끄적거리고 있다고 말하니 대학 동기였던 바미와 수리가 보인 반응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그 몇 안 되는 사람들에게도 작가명이나 계정을 알려주지 않았다.


남편도 내가 인싸란다.

작년에 회사 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에는 집합 금지 인원 제한이 있었는데, 오기로 한 동료들 수가 이미 제한 인원을 초과하였다. 그래서 그중 유일한 여성이었던 대리님 한분에게 먼저 식사를 준비해드린 후에, 내가 근처 카페로 모시고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우리 둘은 두세 시간 카페에서 수다를 떨고 대리님을 지하철역에 배웅까지 해드렸다.

사실 대리님과 나는 그날 ‘처음 만난 사이’ 었다. 남편은 처음 만난 사람과 무슨 할 이야기가 있냐며 신기해했고, 남편과 같은 내향인인 바미와 수리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상황이라며 기겁했다.


수험생활을 하는 동안 내향적인 성향이 더 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mbti 검사를 하면 여전히 ‘E’의 성향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나 정말 인싸였던 거니?



다낭에서, 고온다습한 날씨에 지친 남편이 쭈구리처럼 엎드려있다.

요즘 종종 쭈구리 같은 내 모습을 발견한다.

이를테면 선생님이 사례형 문제 답안을 잘 썼다고 말씀해주셨을 때 난 얼음이 되어버렸다. 분명히 기분이 좋았는데 고작 내가 한 반응은 “네?”였다. 예전 같았으면 “아휴, 다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죠.”라고 능청스러운 대답을 했을 텐데. 학원에서 입 한번 뗄 일이 없이 혼자 다니다 보니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건다는 것 자체가 당황스러웠던 탓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쩌다 칭찬에도 기쁘게 반응하지 못하는 쭈구리가 되었을까?



공인노무사 시험과목 중 하나인 ‘인사노무관리론’에서는 종업원의 ‘자기 효능감(self-efficacy)’을 높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문구가 자주 나온다.

‘자기 효능감’은 반두라(A. Bandura)가 사회인지이론(social cognitive theory)에서 제시한 개념으로,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을 조직하고 실행하여 원하는 결과를 기대한 만큼 얻어 낼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기대 또는 신념을 의미한다.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은 긍정적인 자아상을 촉진하고 목표 중심적으로 행동하여 높은 성취 수준에 도달하는 반면,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부정적인 자기 평가가 주를 이루어서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고 목표 지향적 행동이 부족하다.

출처 : 상담학 사전

자기 효능감을 증진시키는 방법 중 하나로는 ‘작은 성공(small success)’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작은 성공 경험이 자기 효능감을 높이고, 자기 효능감이 높아지면 성공할 확률도 높아진다. 결국 성공이 성공을 부르는 셈이다.




일을 그만두고 전업 수험생활을 한 지 3년이 지났다. 이는 곧 사회와 단절된 지 3년이 지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진 채로 지낸 것은 아니었다. 사람의 정체성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형성되기도 한다. 관계 속에서 역할을 부여받기도 하고,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을 때 성취감, 만족감, 행복 등을 느끼기도 한다. 언제나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종종 현명한 아내나 효심 깊은 딸과 며느리, 좋은 친구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작은 성공들에서부터 느끼는 행복은 이 지루한 수험생활을 견딜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능력, 역량을 발휘하거나 스스로를 갈고닦는 노력을 하며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지난 3년간 ‘자아실현’과 관련해서는 ‘작은 성공’을 경험할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공인노무사가 된다고 해도 내 인생이 확 달라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자아실현을 위한 과정 속에 있을 ‘작은 성공’들 중 하나일 테니(‘작다’고 해서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 자체가 자아실현의 완성이 될 수는 없다는 의미일 뿐이다.)


이미 수험생활의 끝에 합격의 경험을 했던 선생님들도 말씀하신다. “합격이 행복을 보장할 수도 없고, 합격하지 못한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라고.

하지만 그 뒤에 꼭 함께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 노력에 의해서 무언가를 성취해낸 경험은 앞으로의 인생에 있어서 큰 자산이 된다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여러분들도 그 자산을 꼭 얻어내길 바랍니다.”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자산이 바로 ‘작은 성공’의 경험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자기 효능감’이 아닐까?


에게도 이 시험의 합격이 ‘자기 효능감’을 높여주는 ‘작은 성공’이 되길 바란다.

올해에는 쭈구리 탈출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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