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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자 Mar 11. 2023

나의 직장상사 이야기

문과생 생존기

동기가 떠났다. 대외적으로 집이 멀다는 이유로 그만두었다. 한시간 조금 넘게 걸리니까 멀기는 멀었다. 나라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혼자만 열시에 출근하고 다섯시에 퇴근했었다. 수시로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는데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그런데 진짜 이유는 대표와 맞지 않아서 남몰래 고생했기 때문이다. 대표가 사무실을 비우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목소리가 크고 에너지가 과해서 옆에 있으면 두통이 재발했다. 퇴사하기 전날 밤에 한시간 넘게 통화했다. 서로 위로하며 각자의 결정을 존중했다. 그는 국제변호사라서 문제 없을 것이다. 그래도 섭섭했다. 인연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심적으로 의지했던 것 같다. 솔직히 대표는 행정고시에 합격했던 이력 때문인지 자기 자랑이 심하고 자기중심적이다. 대부분의 직장상사가 그런 것일까. 동기는 떠나며 대표의 소시오패스 경향과 가스라이팅을 주의하라고 조언했다.

조선소에서 일했던 경험 때문인지 배를 보면 반갑다.

지금 같이 일하는 팀장은 특이한 사람이다. 영화 연출을 전공하고 교육 컨설팅을 하다가 조선소에서 일했다. 배짓사 동료로서 처음부터 친근했다. 요즘에는 사무실에서 형동생으로 지낸다. 대표가 들을 때마다 호칭에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아직까지 문제는 없다. 둘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예전처럼 프로젝트도 관계도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그는 인생의 굴곡이 심해서인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을 해준다. 똑같은 말을 반복해서 들으니까 지겨울 때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다. 칼같은 성격이라서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도움을 주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람은 쉽게 손절하는 것 같다. 동기가 떠난 후에 그나마 직장에서 의지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런 회식은 가끔씩 괜찮은 것 같다.

며칠전 조선소에서 같이 일했던 상사가 자기 밑에서 일하자고 제안했다. 충치 때문에 사랑니를 뽑고 사무실로 가는 길에 전화를 받았다. 사랑니를 발치한 후에 마취가 풀리고 통증이 몰려와서 심신이 취약한 상태였다. 순간적으로 눈물을 찔끔 흘렸다.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주셔서 감사했다.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박스를 사들고 찾아뵈었다. 반갑게 손잡고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나누었다. 팀장이었던 상사가 임원이 되었고 신입이었던 나는 마흔이 되었다. 평생 한분야에서 일했던 분이라 배울 점이 있었다. 연봉이나 복지 같은 조건도 들었다. 오년전 쯤 다른 상사의 제안으로 이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첫 이직이었다. 그때는 조선소에서 조선소로 옮겼는데 십년 동안 일했던 곳과 문화도 환경도 너무 달라서 힘들었다. 당시에 아버지 병수발을 핑계로 휴직했고 아버지와 이별하고 모든 의욕을 잃었다. 다시 조선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내와 상의한 후에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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